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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부장의 선택 (막 15: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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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 3시와 제6시, 그리고 제9시에 기도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제 9시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했던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새벽기도라고 하는 정해진 기도시간을 통하여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하여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할 부분들, 또 능력을 힘입어야 할 부분들, 다른 이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야 할 부분들을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하여 나누고 있습니다. 그 외의 시간에도 기도는 가능하지만 규칙적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바쁘다는 말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분위기를 대변하듯이, 분주한 하루하루의 일과는 차분하게 기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던 요소가 새벽기도회라고 하는 사실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교회 성장학자들에게서도 인정받았던 부분입니다.

이렇듯 규칙적인 기도 시간은 성도의 삶에서 그 중요성이 남다릅니다만, 유대인들의 삶 속에서도 하루 세 번의 기도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세 번의 기도 시간이 중요한 때마다 연결되어진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첫 번째 기도해야 할 시간인 제 3시(오전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제 6시(정오)에 온 땅에 어두움이 시작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제 9시(오후3시)에 운명하시면서 6시간에 걸친 십자가에서의 고난의 삶이 끝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시는 동안 7번 말씀하셨습니다. '가상 7언'이라고 하는 그 말씀 가운데에는 조롱하는 강도와 자비를 간구하는 강도에 대한 긍휼하심으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선언하시기도 했고, 십자가 밑에서 눈물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향하여 '저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며 아버지께 용서해 구하기도 하셨습니다. '목마르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34절에 보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절규하시기도 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의미의 이 절규는 오늘 우리의 마음,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가끔씩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면 이런 표현을 하곤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것일까? 내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가?' 이렇듯 자조섞인 고백을 하지만 우리는 그가 믿음이 없어서 하는 고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고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가오면 우리의 신앙은 때때로 위협을 받거나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삶의 고비가 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은 우선적으로 내 신앙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며 겸손히 뒤돌아 보게 되지요.

지난 주, 아내가 종합 검진을 받고 자궁근종으로 대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아내는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나봐...' 그 이야기를 듣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제 앞을 가렸습니다. '여보, 당신이 부족한 것이 뭐가 있겠어. 있다면 아마도 내게 있을거야.....'

사실 아내는 지난 20년 동안 목사의 아내로 살아오는 동안 개척교회의 고단함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성장한 이후의 분주함과 다사다난함 속에서도 성도들과 한번도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사역을 하다보면 속상한 일이 많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가끔씩 집에 들어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오히려 제가 화가 나고 속상한 일들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아내는 다 받아주었고 스스로 다 감당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평안의교회 성장의 절반은 사모님 몫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역시 공감하고 있답니다.


이제 우리는 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총독 관저에서 군병들의 조롱과 모욕을 당하셨던 주님, 대제사장과 빌라도를 오가며 책임회피적 재판에 끌려다니셨던 주님,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여러 차례 쓰러지셨던 주님, 채찍을 맞으며 다시 일어나며 십자가에 달리기 까지의 주님의 모든 모습을 지켜보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재판의 경호에서 십자가 형까지 책임을 지고 집행했던 백부장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을 가까이에서 상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성도들과의 만남도 많지만 실은 세상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많은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목사의 삶이 어떤지, 성도의 생활이 어떤지, 교회가 어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또 평가합니다. '그 목사는 틀렸어. 그 교회 드나드는 사람들은 영 아니야. 그 교회는 우리 동네에 있으나마나야...' 이런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나는 아직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나중에 나간다면 반드시 저 교회를 갈거야. 그 교회는 우리 동네에 꼭 필요한 존재야.' 라는 고백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실 두려운 것은 백부장의 고백입니다. 백부장의 의미는 세상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주변에서 여러분을 바라보는 그들의 고백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 작은 그리스도의 삶을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고 나눠주고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은 알게 모르게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이 사람은 이름뿐이구먼...'

어느 부대에 젊은 군목 한 분이 새롭게 부임을 하자 사단장께서 참모들을 대동하고 환영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육군 중위가 사단장의 환영 파티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부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딱 한 사람, 군목은 예외였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라고 대우를 했기 때문이지요.

군인의 꽃이라고 하는 사단장이 잔을 내밀어서 '우리 부대에 부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받으시지요' 하며 잔을 건내자 젊은 목사님은 몸둘 바를 몰랐고 사단장이 따라주는 술을 감격스럽게 마셨어요. 그러자 사단장은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오신 목사님은 너무 너무 멋있는 현대적인 목사님이십니다.'

그날의 파티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1차가 끝났고, 초청된 이들의 대부분 돌아간 다음 사단장과 주요 참모들만 남아 2차가 시작되었는데 , 술이 몇 잔 돌고 나서 사단장은 의외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이번에 온 목사도 돌팔이 인것 같다.......' 저는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어요. 보는 자리에서는 현대적이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부추기지만 사실 그 말은 사탄의 사탕발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가는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유혹을 이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병이라면 반드시 감당하고 승리해야 할 믿음의 과정인 줄로 믿습니다.

백부장은 말합니다. '이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가까이서 주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었던 그는 체험을 통해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너무나도 가까이서 알게 되었기에 그의 고백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람을 상대하면 '파티 매너'만 가지고서도 충분합니다. 언제나 밝은 모습, 상냥한 인사, 그리고 괜찮은 매너로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에 어려움이 없지요. 파티는 1-2시간이면 끝나기에 부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다 보면 이것 저것 다 드러나게 되기에 '파티매너'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 살면서도 사실은 우리의 모든 삶을 다 내어놓게 되어 있어요. 그런 가운데에 결론이 납니다. '그 사람은 처음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까 별거 아니구만' 그러나 반대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통치 않았는데 살아가면서 점점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의 인격에 감화감동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 속담에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했는데 그런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교회를 대표하고 주님을 대표하는 작은 그리스도인이 되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러분들은 작은 그리스도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한가지 과제를 마음속에 가져야 합니다. 나와의 교제 이후, 그의 입술을 통해 고백되어지는 말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라는 증언을 열매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입니다. 교회를 와도 등록을 하려고 하지 않지요. 그저 여기 저기 소문난 교회를 떠돌아 다니면서 귀동냥만 합니다. '목사님, 나에게 신경쓰지 마세요. 내게 신경 안 쓰셔도 제 신앙생활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거예요. 낮에는 이 교회, 밤에는 저 교회, 새벽은 또 다른 교회를 떠돌이 처럼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졌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자신을 공개하기가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두려운 것입니다. 빛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좁은길 보다는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넓은길이 쉽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대표하는 백부장, 그의 입술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증거하게 하셨던 오늘의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땅에서 30여년을 사시는 동안 모든 이웃들에게 인정받으셨던 주님이셨습니다. 특별히 3년 6개월의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주님은 수많은 이들에게서 도전과 공격을 받으셨지만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습은 십자가상에서 까지 변함없이 이어졌고, 마침내 백부장의 고백을 통하여 결론처럼 아름답게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

오늘의 백부장의 고백이 우리의 삶에 큰 도전이 됨으로 빛과 소금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시고, 부족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작은 열매 하나 하나가 주님께 큰 영광이 됨을 기억하면서 변함없는 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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