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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기도 (요 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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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하신 중보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로 공생애를 마감하고 계시면서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예수님이 떠난 다음에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쳐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책망하거나 섭섭해하시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사랑으로 하는 기도

그것이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 때는 기뻐하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범죄 가운데 있을 지라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중보기도는 믿음만 가지고는 하지 못합니다. 중보기도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계속 기도합니까? 우리가 가장 많이 기도하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대상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가장 많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섭섭한 일을 해서 야단치고 싶을 때는 먼저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고나면 야단치고 싶은 마음보다는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아 있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남아있는 제자들을 단순히 심리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평안하라, 담대하라, 그리고 기뻐하라’는 말은 그냥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실제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을 위한 조처

그래서 예수님은 남게 될 제자들의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을 위해서 하나님께 부탁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7장 11, 12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신 동안에는 자기의 사람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도록 다 지키고 보전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더이상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이들을 보전하여 주시고 지켜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적인 조처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제자들을 무턱대고 그냥 떠넘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제자들을 위해서 자기가 할 일을 완전하게 하시고 온전하고 당당하게 부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혼란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과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필요한 모든 조처를 부족함 없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우리를 부탁하시기 까지 했습니다.
6절에서 8절을 보십시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이 기도를 보면 예수님은 이미 필요한 일을 다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니은 하나님께 제자들을 맡기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보장하실 수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다시 한번 제자들을 맡깁니다.
이렇게까지 하신 것을 보아도 성도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아무도 끊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겼는데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겨진 우리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얼마나 완전하게 일하셨냐면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어 저들이 아버지를 압니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이름은 단순히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라고 이름을 알려주면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성경에서 ‘이름’은 ‘본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고 나를 안 자는 하나님을 알았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알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생은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아는 일, 그리고 그분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영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참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정말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고 믿으면 이 말씀을 가지고 판단하거나 토를 달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도 지키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면 악한 일입니다.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쉬워집니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평가했던 말씀은 혹시 예수님이 실수로 하신 말씀은 아닐까요?
하나님께 제자들의 상태를 보고드리면서 ‘저희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실수하고 넘어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하시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고 있습니까? 사실이 아닌 것을 잘못 보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려지는 기도의 응답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미리 보고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되어질 모습을 보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현재의 상태를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소원과 열매를 보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자녀가 순종하지 않고 가출하고 반항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저를 지키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중보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미리 보고 그려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이루어진 것처럼 기도하십시오. 자식이 방황하고 있으면 이미 방황을 끝낸 것을 미리 보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무너져 있습니까? 미리 회복된 것을 그리며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넘어지고 배신하는 제자들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기도하시지 않습니다. ‘이 믿음 없는 인간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은 엉망일지라도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온전케 하실 것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깎아내리지 않고 세우고 계십니다. 중보기도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도의 대상을 깎아 내리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현실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해놓으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 완전하게 의탁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맡기면서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것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을 다하고 난 후에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 2).
자녀도 자신의 것이라고 하니까 지키기가 힘든 것입니다. 돈과 건강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지키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장래와 지식과 사업도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 드린 것,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만이 영원히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은 모두 세상에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붙들고 건강과 장래와 미래를 붙들어도 우리 손에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손에 맡기면 담대해 집니다. 예수님은 마음 놓고 맡기십니다. 남의 자식을 맡기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얼마나 잘지켜주시겠습니까.

거룩한 씨앗

요한복음 17장 9절의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이 세상을 포기하고 제자들만을 편애하는 듯이 보입니다. 특별히 제자들을 위해서 중보하는 것은 그들이 남은 씨앗이기 때문에 이들이 잘 보전되어야 구원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실패했다면 우리의 구원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는 것은 우리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은혜를 나누고 사랑을 실천하도록 먼저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신 이유는 그들만을 택하고 세상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축복하시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먼저 부르셨으면 가족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고, 이웃과 직장에서 그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믿지않는 가족,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중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이웃이 지옥갔다면 우리가 천국가서 편하기만 할 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맡기시는 또 다른 이유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0절을 보십시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시지 않고 우리의 믿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시고 믿는 자에게 자신의 영광과 이름을 두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내가 영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이들이 실족하는 날 그들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거두지 마십시오. 이들이 실족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지켜주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기도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기도할까요? 기도는 하나님과 악마도 듣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의 영혼도 듣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내용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듣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정욕을 다해서 욕심껏 기도하면 마귀도 듣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리고 내 영혼도 듣고 교만해 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진리와 약속과 말씀을 붙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도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까지 주셨는데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이미 주신 것을 우리는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걸하거나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이 해놓으신 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기도하십시오. 욕심과 정욕으로 기도하지 말고 사랑과 약속으로 기도하십시오.
요한복음 17장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킨 결과가 하나됨입니다. 우리가 하나되는 것을 위해서 할 일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입니다.

기도의 결과 ‘하나됨’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 4:5).
하나님의 일은 하나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은 하나되는 것을 깨는 것입니다. 분열은 사단의 일이고 육신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자기 마음대로 해서 얻은 결과가 질투, 다툼, 깨어짐입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공동체가 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부터 15절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 3절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도록 예수님은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나가 됩시다’가 아닙니다. 하나됨을 지키는 비결이 ‘기도의 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된 것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가정이 하나되지 못했습니까? 여러분의 공동체가 갈등으로 아픔이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된 것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미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늘에서는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마련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지 않은 것은 아무리 기도하고 애써도 얻지 못합니다. 40일 금식기도 아니라 4백일 금식기도 해도 안됩니다. 안되는 것은 안됩니다. 기도는 은혜의 열쇠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씨름해서 받아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것

왜 하나님이 기도해서 무엇인가를 받아가라고 하실까요? 선한 일과 노력을 해서 받아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왜 기도해서 받아가라고 하실까요? 기도가 은혜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은혜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우리의 삶가운데 역사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안전합니다. 환난과 핍박과 시험에 빠질지라도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도 합니다. 주 앞에서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위해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축복을 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되게 해달라고 하십시오. 그럼 그 하나됨 속에서 모든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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