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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기도 (요 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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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3년여의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제자들을 따로 모으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와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르침을 마치신 후 마지막 기도를 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 17장을 성경학자들은 복음서 중 ‘지성소’라고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7장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모두 다 마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이루어놓은 일을 놓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모든 사역을 완성하고 나서도 기도하시는 이유는 이미 이룬 일을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 ‘기도’

기도는 없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지고, 주어진 일을 믿음으로 아뢰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성취하신 일을 믿고 구해서 받는 일이기 때입니다.
기도는 공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일을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비밀, 능력의 비밀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기도 가운데 행하시고,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더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삶의 비밀도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행할 것은 없습니다. 이미 주께서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없는 삶은 온전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저 육신의 일일뿐입니다. 기도야 말로 우리 신앙생활의 지성소입니다.

예수님은 세가지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리고 제자들과 제자들을 통해서 구원받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의 소원과 우리를 향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배울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유는 예수님의 소원과 바람이 우리의 소원과 바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중요하고 급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분별이 되어서 정말 중요하고 우선시 해야 할 것들을 알게 됩니다. 처음 시작은 자신의 필요로 인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자신에게 급하고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반드시 급하고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우선 순위가 분명해 집니다. 그래서 먼저 구할 것들을 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먼저 기도를 해야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핵심은 이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시면서 남아있는 제자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의 안전에 대해서 마음을 쓰십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은 바로 이 제자들이 보전되어야 세상을 구원하고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고난이 있고 환란이 있지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다가 나중에라도 실족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내 믿음이 이렇게 약한데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고, 힘이며, 방패이십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런데 왜 가룟유다는 지키지 못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3년동안 왜 그를 변화시키지 못하셨을까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이 문제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시험거리이지만 초대교회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었습니다.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을 전할 때 가룟 유다는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기도할 때 베드로는 일어나서 말합니다. ‘가룟유다의 경우는 예수님이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맛디아로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는 예수를 잘 믿다가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중도에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저는 멸망의 자식’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을 팔 자로 되어 있는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징계와 심판의 도구로 쓰실 때 결코 선한 자를 취해서 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을 징계 하실 때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단 한번도 선한 자를 심판과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자신이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비판하고 징계하는데 쓰임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 중에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악인을 그냥 두시는 이유 중 하나는 악한 날의 쓰임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고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대적하겠지만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3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에서는 환란이 있고, 핍박이 있어 때로는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헌신을 할 때도 고난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속이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정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으면 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결코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환란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환란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환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말씀 중 하나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 것으로 기뻐하자면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것으로 기뻐하라고 명하신다면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을 가지고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오히려 울고 탄식할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세상의 기쁨과 육신의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으로 저희 안에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의 기쁨입니까?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안에는 이미 주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어떠할 지라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헌신과 희생을 하는 질고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기쁨의 사람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슬프거나 불행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심각해 해야만 하고 기쁨과는 거리가 멀고, 이 땅의 고통스러운 일들이 경건이라고 잘못 이해합니다.
참된 경건은 기쁨입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항복하게 되는 이유는 형통함과 성공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도 형통함과 성공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뻐해야 할 때조차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늘 염려와 근심과 평강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의 삶입니다.
그런데 절망과 낙심을 해야할 상황과 핍박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기뻐하고 평강을 누리고 감사하는 우리를 보고 세상은 놀라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을 이기고, 환란을 이기는 비밀 중의 하나가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기쁨의 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안에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샘을 열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기쁨을 구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마다 이 기쁨의 샘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합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지치고 힘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능력을 주고,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기쁨이 회복됩니다.

악의 세력 물리칠 있는 능력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니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은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소속은 하늘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상도 칭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가 적당히 살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자는 곳에 모두 가고 하자는 일을 모두 함께 하면 ‘예수 믿으면서도 째째하지 않고 통이 커서 좋다’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어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지금도 핍박이 따릅니다.
또 하나님께 속하는 순간,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순간 사단도 우리를 주목하고 자신의 리스트에 우리의 이름을 올리고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을 싫어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더 싫어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러분, 실제로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단과 귀신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21세기에 무슨 귀신이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있고, 믿지 않는 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고, 귀신을 물리치고 쫓아내신 것은 과장되거나 거짓된 행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요’.
사람하고는 싸우지 마십시오. 사람을 향해서는 오래 참고, 관용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의 시험을 무시했다가 망신 당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그분을 따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자신은 넘어질 일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밀까부르듯이 그를 청구하여서 결국 베드로는 넘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경고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두루 다니고 있다’.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강한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단을 과학과 지식과 이성으로 이기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성적인 사람이 더 쉽게 넘어갑니다. 세상의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사단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단에게 사로잡힌 경우가 많습니다.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예수님의 보혈과 능력과 말씀입니다.
사단은 강하지만 하나님은 만유보다 더 크시며 사단을 이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인들 중에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자마다 안전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지키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검으로 믿고 나아갈 때 견고한 진이 파괴됩니다. 또 무시로 성령안에서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을 사단은 가장 무서워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7∼19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달라는 기도로 마무리 하십니다.

세상의 거룩한 씨앗

우리는 ‘거룩’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얻고자 거룩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경건과 거룩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거룩입니다. 거룩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을 얻고, 성공을 얻기 위해서 거짓되게 행하고, 타협을 해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리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거룩에 있습니다.
사단은 거룩한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한번만 타협하고 그릇되게 행동하면 세상을 얻게 해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거룩을 그릇되게 이해하면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세상의 죄악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를 지키는 것은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될 때 세상이 새로워지고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을 지는 몰라도 거룩의 능력을 가지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고 그리스도인들이 많아도 거룩을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집니다.
예수님이 거룩할 때 제자들이 거룩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은 제자들을 위하는 것이고 제자들의 거룩은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거룩함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거룩한 씨앗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거룩을 잃지 마십시오.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시고, 핍박을 감수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의 인정 받기를 먼저 구하기 전에 예수님의 바람과 소원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담대하십시오.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승리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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