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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고난 (마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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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을 피하고 싶어합니 다. 심지어 내 고난이 줄어든다면 다른 사람이 고난을 받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단과 사이비가 넘치는 것도 고난을 피하려는 인간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가장 큰 고난인 죽음을 피하지 못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고난을 '통해서' 축복을 주시고, 약함을 '통해서' 강함을 주 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 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이나,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의 길을 홀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은 인생이 걸어야 할 모든 고난의 길을 예수님이 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초적 문제 인 의식주부터 죄의 문제까지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쉽고 가벼 운 멍에 아래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마치 어미 소가 끄는 멍에 아래 있는 송아지처럼 주님과 함께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고난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십자가의 죽 음을 통해서 생명이 오고,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풍요가 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부요와 풍요 속에 두시기 위해 감당하신 많은 고난 중에 어떠한 원초적 고난을 짊어지셨는지 우리 함께 살펴봅시다.

첫째, 머리 둘 곳 없으신 예수님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여우에게 굴을 주시고, 새에 게 둥지를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최고로 좋은 안식처인 에덴동산을 만 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은 집은 고사하고, 잠시 쉴 수 있는 임 시 거처도 없으셨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나빴는지,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표현하 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하물며 거리의 노숙자들조차도 지하철역이나 공원 에 '머리 둘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최소한의 휴식처와 잠자리마저도 없었 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만 '머리 둘 곳'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자마 자 구유에 누워야 했고, 애굽으로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이처럼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처를 주기 위해서입니 다. 부요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가난을 짊어지셨고 그 은혜로 우리가 부요케 되었 습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 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고 말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참새와 제비조차도 보금자리를 얻습니다(시 84:3). 그 리고 예수님은 땅의 안식처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식처까지도 예비해주십니다(요 14:2-3). 우리가 지금 누리는 집과 물질은 예수님의 고난의 결과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는 욥의 고백처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내 힘과 노력으로 이루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머 리 둘 곳도 없이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셨기에 주어진 이 은혜에 감사함으로, 우리도 하나님 의 집인 성전을 기쁨으로 세우는 사순절을 보냅시다.

둘째, 목마르신 예수님 성경에서 예수님이 목마르신 장면은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수가성 여인과의 만남에서 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입니다. 두 곳 모두에서 예수님의 목마름은 영적인 목마름 과 연관됩니다. 죄로 인해 목마른 인간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목말라하시는 것입니다. 죄 인된 인간은 이것을 알지 못하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생수를 담지 못하는 터진 웅 덩이처럼 목마른 존재입니다(렘 2:13).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지옥의 고통이 곧 목마름 의 고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24). 예수님은 영 육의 목마름뿐만 아니라, 지옥의 목 마름까지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 목마름이 얼마나 컸던지 십자가 위에서 구세주 예수 님은 내가 목마르다(요 19:28)고 외치셨습니다.

우리 대신 이러한 목마름을 감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목마른 자들에게 모두 나오라고 초 청하십니다(요 7:37-38). 예수님은 생수를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와 더러움도 씻어 주십 니다(슥 13:1). 더 큰 은혜는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값없이, 돈 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 다. 하나님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말씀합니다. 탐욕과 출세와 쾌락은 대 가를 지불할수록 우리를 더 목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값없이 주어 질 뿐만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이 은혜를 안다면, 생명수가 없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배고프신 예수님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배고픔의 고통을 모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고파도 기적을 일으켜서 진수성찬을 드셨을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우리 처럼 배고프셨고, 굶주림의 고통과 서러움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이 '이 른 아침에 성으로 오실 때에 시장하셨다'(마 21:18)고 기록합니다.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12:1). 게다가 예수님은 사 람들을 고치시고, 돌보시느라 식사할 시간조차도 없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 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 라(막 6:31). 생명나무를 창조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분이 왜 이처럼 배고프셨을까요? 예 수님의 배고픔은 인간을 배부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배고픔보다 우리 들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마 15:32). 우리의 배고픔을 이미 아시고 우리를 불쌍 히 여기고 먹이시는 목자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사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 때문 에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뿐만 아니라, 당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놓으셔서 영 원히 우리가 배고프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이 고난의 은혜를 안다면, 우리도 배고픈 이에게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주어야 합 니다. 방학이면 급식을 제공받지 못해서 더 배고픈 소년 소녀 가장과 돌보는 자녀가 없는 독거 노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 위해서 배고프신 예수님을 위해 어려운 이 웃을 돌보며 사랑을 베푸는 사순절을 보냅시다.

안식처가 없고, 목마르며, 배고픈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 초적인 고난의 문제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 함께 그 은혜를 기억 하고 감사하는 사순절을 보내며, 나를 쳐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고난의 은혜를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통하여 예수님이 짊어지신 고난을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만 사순절 기간이나 고난 주간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고통당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사순절을 보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 니다. 아멘.

 (2006-02-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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