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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을 씻겨드립니다 (요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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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우리 에스더가 하는 말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발을 주무르라고 시킨대요.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어 가는 여자 선생님인데, 아이들이 발을 주무르면 피로가 많이 풀릴 수도 있겠지요. 또 아이들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렇게 해야 선생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서로 하려고 한대요. 저도 어렸을 때 황당한 선생님의 심부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수업시간 빠지고 선생님 집에 가서 청소를 한다거나, 선생님 처가에 심부름을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일 하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선생님이 그런 걸 다 시켰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꽤 많았어요. 그래도 학생들은 그게 선생님이 자기를 더 사랑하는 표시라 생각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지요. 하여튼 못된 선생들이 많아요. 선생들이 그런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선생의 권위와 힘이 거의 절대적이지요.

여기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발 주무르라고 시키는 선생님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선생님입니다. 무엇이 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제자들의 발을 씻기도록 했을까요? 1번, 제자들의 평가에 의해 선생님의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어서이다... 요즘에는 세상이 바뀌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너무하군요. 차라리 승진 안하고 말지. 2번, 제자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감동을 주기 위해서이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이군요. 그런데 그런 선생님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3번, 제자들은 신분이 높고 선생님은 출신성분이 낮기 때문이다... 옛날 신분사회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선생의 권위는 존중되었습니다. 4번, 선생과 제자의 역할에 혼동이 일어났다... 어쩌면 가장 이해가 되는 대답일지 모르겠군요.

오늘날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에 의하면 선생님의 발을 씻기는 것은 제자의 역할이 아닙니다. 우리 에스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발 주무르라고 시킨 것 정도야 애교로 보아줄 수 있지만, 그것도 썩 마음에 드는 행위는 아니잖아요? 어깨를 주무르라고 시켰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겠지만, 발을 주무르라고 했다고 하면 이마가 찌푸려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몸 중에서 발은 특별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발이 갖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발은 더러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의미합니다. 발은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거나 맡길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요즘 여자분들은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지 않고 많이 다니지만, 옛날 어르신 앞에 맨발로 갔다가는 버르장머리 없다고 호통을 맞을지 모릅니다. 발은 부끄러운 부분이고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사야가 성전에서 본 스랍은 두 날개로 발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린다는 의미지요.

자, 그런데 이 부끄러운 발을 누구한테 내밀면서 씻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종에게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고대 사회에서 손님이 오시면 그 발을 씻기는 것이 종의 일이었습니다. 종에게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왜요? 종은 생각이 없어요. 방위도 생각이 없는데, 종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종은 방위처럼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손님의 발이 더럽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이것이 발이다 하는 생각도 해서는 안 돼요. 아예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안심하고 발을 씻기라고 내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의 일입니다. 제자가 종이 아닌 이상 제자에게 선생의 발을 씻기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이런 일을 보고 무슨 일이라구요? 매우 희귀한 일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이 아닌 것이지요. 이 일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왜 예수님은 그런 희귀한 일을 하셨을까요? 그분이 하신 일은 모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지침이 되고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되는데, 왜 예수님은 그런 희귀한 일로 기독교의 근간을 삼으셨을까요? 도대체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우선 왜 예수님께서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요한은 증거하기를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런 희귀한 일을 행하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은 얼마큼 사랑했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사랑을 고백할 때 '죽도록 사랑합니다.' '하늘만큼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힌 사랑의 표현이 여기 있네요.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면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듣는 사람이 무슨 소리인지 멍하다가 그 의미를 알게 되면 뿅 갈 거예요.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분량의 모든 것으로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해야 할 분량이 있다면 그 분량의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도 온전한 사랑의 몇 퍼센트가 될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늘만큼 사랑한다고 해도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을 합친 것 만큼에 비하면 얼마 안되네요. 그러나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은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까지 사랑했으니 완전한 사랑이고 사랑의 극치 아닙니까? 그런데 이 완전한 사랑, 사랑의 극치의 표현이 무엇으로 나타났는가 하면,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자꾸 주고 싶어지게 됩니다. '사랑해' 하면서 '백만원만 가져와.' 이러는 것은 가짜지요. '사랑해' 다음에는 '여기 백만원 있어.' 이렇게 돼요. 사랑하게 되면 좋은 걸 주고 싶은 것, 이것은 인지상정이에요.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하는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은 사랑을 고백할 때 무엇을 주었습니까? 꽃다발을 갖고 왔거나, 아니면 예쁜 목걸이를 선물로 주었거나, 하여튼 뭔가 좋은 것을 주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최고의 사랑의 표현은 발을 씻기는 것이네요. 여러분, 또 사랑을 표현해야 할 일이 있으면 꽃다발이나 목걸이 선물보다 발을 씻겨 주세요. 진짜 뿅 갈 거예요. 남들과는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가족 간에는 사랑의 표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겨주고, 아내가 남편의 발을 씻겨 줘 보세요. 다 큰 자녀들의 발도 씻겨 줘 보세요. 또 자녀들이 부모의 발을 씻겨 드리세요. 오늘 저녁에는 부부가 서로 발을 씻겨주도록 하겠습니다. 부부가 함께 오시지 못한 분들은 따로 짝을 지어 서로 발을 씻겨주도록 하구요.

김집사님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남편이 오시지요? 오시면 사랑의 표시로 발을 씻겨 드리세요. 그러면 남편이 '아, 그동안 혼자서 애들 데리고 고생하더니 믿음도 좋아지고 남편 사랑할 줄도 알게 되었구나' 하고 무척 흐뭇해하실 거예요. 김집사님 말고도 그럴 기회를 맞게 되실 분들이 몇 분 더 계시지요? 발을 씻기는 것은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다, 이거 잊지 마세요.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남의 집에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한창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다짜고짜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눈물로 그 발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좀더 복잡한 사연이 되겠지요. 눈물 몇 방울로는 발을 씻기기에 충분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쨌든 이 여인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은 '저의 사랑이 많음이라'였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 그것은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는 행위입니다. 바로 최고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또 하나의 이유는 제자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4, 15절에 보면,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행위는 선생으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선생이 했는데 제자가 안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라고 가르쳐주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지요.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히 기대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발을 씻기는 것은 누구의 일이라고 했지요? 종이에요. 즉 우리가 서로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서로를 종으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종이 되라는 거예요. 아내가 남편의 발을 한번 씻겨주었습니다. 기분이 너무나 좋은 남편이 날마다 아내에게 발 씻겨 달라고 요구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발은 씻겨주는 것이지 씻겨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스스로 종이 되어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내 발을 씻기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종으로 삼는다는 거잖아요? 서로를 종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종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서로 군림하고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관계를 이루라는 것이지요.

어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가졌을 때 상대의 발을 씻겨줄 수 있습니다. 내가 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에요. 주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세상의 가치관을 추구했던 제자들은 누가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늘 싸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방인들이야 권력 가진 사람이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으뜸이 되고 싶으면 종이 되어라. 봐라.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 오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가르쳐도 제자들이 별로 감동을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 주님이 떠나실 때가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몸소 자신이 스스로 종이 되셔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야, 주님이 자기 발을 씻기시는 순간,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어쨌든 그것은 그들에게 나무나 강렬한 기억으로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그 가르침을 따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 애썼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의 말씀, 그 행동으로 보여주신 모범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일을 해 볼 것입니다. 발을 씻기는 분은 종의 형체로 오시기까지 낮아지셨던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씻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한번 생각하시면서 씻기세요. 다시 말해서 주님의 입장과 자리에 한번 서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던 일을 해 보고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서로 발을 씻겨보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또 발 씻김을 받을 때는 그 제자들의 심정을 한번 헤아려 보세요. 지금까지 서로 잘났다고 싸우던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내가 주님의 발을 씻겨 드려도 황송한 일인데, 세례요한은 주님의 신발 끈 묶어드리는 일도 감히 할 수 없다고 했는데, 하물며 주님이 내 발을 씻기신다면 얼마나 송구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일입니까? 주님이 내 발을 씻기신 것처럼 내 평생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는 결단과 고백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 가운데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그 주님이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계셔서 역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마음을 여러분이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제자가 아닙니까? 제자가 선생님을 닮아야죠.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해야지요. 이 밤에 다시 한번 그 주님을 만나셔서 그분의 제자임을 확인하고 인정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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