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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 (요 0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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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 (요한복음 1:35-42)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가 죄가 있거나 인간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대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이 있고 놀랍습니다.
이 세례를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주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머리에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머물면서 예수님의 놀라운 구원 사역이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귀가 열리고, 귀신들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바로 요단강에서 성령 세례를 받고 나서부터 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3년 동안의 놀라운 사역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사역보다 중요하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두 번째 시작은 제자를 뽑는 일이었습니다. 세례 받고 난 후 예수님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 열두 제자를 뽑는 일을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양육하시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일과 사역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무엇을 계획할 때 일을 먼저 합니다. 처음엔 일이 잘 되는 것 같은데 곧 딜레마에 빠집니다. 일은 생기고 만들어졌는데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이 없습니다. 성급하게 일부터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사역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고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관점은 사람이 먼저였습니다. 사역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의 대부분을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소수 정예를 선택해서 집중하셨습니다. 선택의 원리와 집중의 원리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싶어했고, 안수를 받고, 기적을 목격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대중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소수인 열 두 명에게 집중적으로 시간을 보내시고 관심을 갖고 훈련을 시키며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소수에 집중하라

교회가 할 일은 소수 정예를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일입니다. 제자 훈련이 없는 교회는 나중에 절망과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을 키운 교회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 만큼 그에 따른 일을 충분히 감당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울 것은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준비하라, 사람을 키워라,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배울 것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선택된 소수가 하나님 손에 붙잡혔을 때 그들이 역사를 바꾸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원리, 철학, 방법대로 한 영혼을 소중하게 양육하고 키워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온누리교회가 QT와 일대일을 하게된 동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영혼의 소중함,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때문입니다. 대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영혼 하나 하나가 양육받고 관리 받아야 한다’고 하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정신을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을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아웃리치, 제자양육, 지도력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를 선택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두 사람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준비된 사람도 선택하시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드레와 베드로를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35절에서 38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님이 제일 먼저 만난 제자는 안드레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예수님이 처음부터 키운 제자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였습니다. 그의 의상은 가죽 털옷과 허리띠였습니다. 안드레는 스승 세례 요한과 같이 험한 음식을 먹고 험한 장소에서 험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옆에서 같이 도와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훈련된 이 사람을 제일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훈련된 사람, 준비된 사람 중에서 선택하십니다.

본문 35, 36절을 보니 세례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은 세례 요한과 함께 섰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줄을 잘 서야 됩니다. 아무데나 있으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관계에 있을 때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웃리치, 복음 전하는 곳, 선교하는 곳, 성경공부 하는 곳에 따라가 계속해서 그 분위기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주님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가 많아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십시오. 세상과 더불어 사는 시간은 가능하면 줄이십시오.

오직 예수님만이 관심의 대상

37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많아집니다. 의리나, 자기 의지적으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안드레가 스승에게 배운 것은 예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관심은 자기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주장, 철학,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진정 세례 요한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는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예수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했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계속 들었고,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온누리교회에 와서 하용조 목사의 제자가 되었다면 실패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온누리교회가 여러분의 우상이 되어도 실패를 한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단이나 교파, 건물, 제도, 방법, 사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잠을 자나 걸어가나, 누우나 서나, 밥을 먹으나 무엇을 하나, 세례 요한의 관심은 예수였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닮아가는 겁니다. 그들의 관심은 예수였습니다. 두 제자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제자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산은 줄 수 있지만, 사람을 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은 자신이 데리고 있고 싶습니다. 정말 아끼고 좋은 사람은 다 자기 곁에 두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에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로 기꺼이 다 넘겨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온누리교회 자체가 우상이 된다든지, 사람이 우상이 될 때 우리는 예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예수님만 생각하고, 예수님이 기뻐한다고 하면 그것을 우선 순위로 생각해야 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님은 ‘누구를 찾느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당신이 누구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의 스승이 말한 그 분이 과연 메시야인가 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가 그렇게 기대하던 메시야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 분이 사는 곳을 가보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마태복음 8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정한 거처가 없으셨습니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잠자는 곳이 집이요, 밥 먹는 곳이 집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거처한 곳은 화려하거나 편하고 멋있는 곳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좋거나 볼만 하면 와 보라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보이기가 부끄럽고 초라하면 오라고 말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와 보라’고 하셨습니다.
영국에 존 스터트라는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석학이 한 분 계십니다. 제가 영국에 2년 반 정도 있었을 때, 그 분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분의 초대를 받은게 영광스러워 제 아내와 저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갔습니다. 그 분은 독신으로 조그마한 집의 3층에 집사와 살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 분은 어떻게 사나, 이 분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있나’하는 궁금증과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온 저녁식사는 햄버거와 주스 한 잔 이었습니다.
이 분의 관심은 먹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은 간단히 먹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중요시 했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식사를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와 보십시오. 우리집이 화려하지 않고 가진 것은 없지만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따듯한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위로와 격려의 말을 받는다면 그것을 음식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사는 곳에 와 보라”

“내가 사는 곳에 와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교파나 건물, 교인 숫자나 헌금, 프로그램 등 외형적인 모습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사랑입니다. 헌신과 희생하는 모습, 아무리 어려워도 비전을 잃지 않고 희망을 갖는 모습, 서로 격려하고 부족함을 도와주고 서로 축복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교회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집에 ‘와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떳떳하게 ‘우리집에 오십시오. 내가 사는 곳에 와 보십시오.’ 이렇게 말할 때 거기에 정말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안드레는 훈련된 사람이었고, 준비된 사람이었고,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인가를 알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스승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예수님을 따른 사람입니다. 이 분이 최초의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제자는 베드로입니다. 40절에서 42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안드레는 메시야를 만났다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형님에게 찾아갑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감격과 축복을 먼저 형과 나누었다는 사실에서 가족 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저희 교회에 한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원래 암전문의였는데 어떤 계기가 있어 성령을 체험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아세아 연합신학원 교수가 되어 처남과 같이 주의 일을 합니다.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시편 113편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족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이 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같이 모여서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안드레의 특징은 베드로를 데려온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 자기보다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사람을 데려왔다는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물고기와 보리떡을 가져온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늘 자기는 큰 사람이 아니지만, 자기보다 큰 사람을 데려오고 자기는 기적을 베풀지 않지만 기적을 베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안드레의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형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형제라도 자기보다 많이 가지고 힘이 커지면 대개 마음 속에서 경쟁심이 생기고 질투하는 법이지만 안드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베드로가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시몬이란 흔한 이름을 가진 보통 남자입니다. 시몬은 ‘우유부단하고 불안전한’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인 베드로를 예수님은 자기 제자로 삼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의 현재를 보지 않고 미래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현재를 봅니다. 그리고 평가를 하고, 결정을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잠재력, 그 안에 있는 미래의 영광, 그 사람이 변할 것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사람을 그대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갈등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의 실제 모습은 별 것이 아닙니다. 과격하고 다혈질적이고 우유부단한 보통 남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는 눈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은 앞으로 나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사람이다. 지금은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반석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자마자 ‘너는 게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페트로스’ 베드로라 합니다. ‘너는 시몬이 아니고 게바, 베드로다’ 라고 그 사람의 미래의 잠재력을 보신 겁니다. 그 사람의 변화될 모습을 보시고 그를 축복하고 제자로 받아들이신 겁니다. ‘너는 베드로가 될 수 있어. 너는 더 이상 시몬이 아니다. 네 인생은 바뀌어 질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 네가 나에게 순종하고 내 제자가 되어 나를 따르면 네 인생은 변할 것이다. 네가 알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인생이 이제부터 네 생애에 전개될 것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사람이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아브람은 한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은 온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사래가 사라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런 잠재력을 예수님이 보신 것입니다.

미래의 문을 열어라

부모님은 자기 자녀의 이런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하고 양육받고 훈련되고 거듭나고 변화 됐을 때 내 자녀가 가져야 할 세계, 세상, 살아가야 할 길, 그것들을 부모님이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서도 예수님과 같이 이런 비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현실을 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부모와 환경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합니다. 미래의 창문을 닫고 스스로 절망합니다. 절망은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환경이 만드는 것도, 부모가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민족을 변화시키기 위해 태어났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꿈을 여러분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 안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나이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돈 없다고 일 못하지 않습니다. 돈이 일하는 것이 아니오, 건강이, 명예가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내 미래가 열립니다. 그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 바이블넷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07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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