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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은 모험이다 (마 14: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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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모험이다(마 14:22-2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믿음이 없이 세상에서 도덕적이고 훌륭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세상적으로는 허물이 많고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회개하여 믿음을 소유한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욱이 믿음 중에도 큰 믿음을 소유할수록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는데 여기에서 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험적인 결단과 행동을 단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미지근하게 또는 내 생각과 계산대로 내 뜻대로 행해 나가는 사람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그 행동에 있어서 모험적으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서를 볼 것 같으면 그는 하나님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아니하고 순종했습니다. 또 백세 때 난 외아들 이삭을 잡아 제사로 드리라고 했을 때에도 무엇으로보나 불합리해 보이지마는 모험적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훗날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열두제자 가운데 수제자인 베드로를 보십시다. 그는 원래 불학무식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아니하고 배도 그물도 다 집어 던지고 모험적 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물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해야겠지만 주님의 명령이 먼저 나를 따르라고 할 때는 용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한 번은 제자들만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풍랑이 일어나는 저편에서 흰 그림자가 물위로 걸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줄 알고 더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유령인 줄 알았던 그 물체는 다름아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과 공포에 쌓여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내니 두려워말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심한 풍랑 속이라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바로 듣지 못했지마는 베드로만은 제일 먼저 주님의 음성인 것을 알아 들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심한 풍랑의 물결을 헤치고 걸어 오시는 주님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주님! 만일 주시거든 나로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하고 애원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베드로의 용감함을 보시고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 베드로는 자기의 생각과 계산으로는 바다에 빠질 것 같았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뛰어 내렸더니 예수님과 같이 바다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얼마 못가서 그는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던 눈은 요동치는 물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던 귀는 물결 소리만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물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왈칵 겁이 나 그만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신구약 성경에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물 위를 걸어본 사람은 베드로밖에 없습니다. 모세나 엘리야 같은 사람도 홍해나 요단강이 갈라진 다음에 걸었지 베드로처럼 물 위로 걷지 못했습니다. 이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불학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성격이 급하고 과격하여 실수한 적도 있었지만 주님의 명령이라 할 때는 목숨 걸고 덤벼드는 모험적 행동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은 모험적인 신앙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신앙은 모험일까요?

① 신앙은 감각과 계산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져보고 이치에 맞으면 행동하겠다고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한 행동은 믿음없는 사람도 다 합니다. 계산을 해보고 합리적으로 맞으니까 한다는 것은 계산이 들어 맞은 것이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영적인 행동은 우리의 계산과 이성을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의 감각으로는 하나님도 우리 속의 영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과 공기가 있지마는 우리의 눈에 안 보이듯이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므로 인간의 감각과 계산을 초월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거기에는 반드시 모험이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는 적당히 믿어야지 너무 열심히 믿으면 망해!'하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려면 모험적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위험과 고난이 와도 생명까지 내걸고 덤벼드는 신앙적 모험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이 예배당을 지을 때 단 백만원도 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백이면 백사람 다 너무 무리라고 말했지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믿음으로 확신이 왔기 때문에 밀고 나갔더니 이 큰 예배당을 무사히 짓게 되었습니다. 또 무엇하려고 이 큰 예배당을 망우리 구석에다 짓느냐고 반대하는 이가 많았지만 짓고 나니까 지금 이 예배실도 차고 넘쳐 현재 2부로 예배드리는 것을 앞으로는 3부로 드리게끔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물론 그동안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모험적인 신앙이었기에 우리 주님은 기뻐하셨고 축복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의 만용을 부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시험하기 위한 것도 안 됩니다. 모험적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에 있어서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라 믿어질 때에 좌우를 분별하지 말고 계산을 따지지 말고 해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할 때에 거기에 위대한 신앙과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내 머리로 계산해서 움직인다고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로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 다른 제자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모험적으로 단행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훗날에 순교를 당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진정 위대한 신앙의 모험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뜨뜻 미지근하고 타산적이고 감각적입니다. 쉬운 예를 든다면 우리가 바둑을 둘 때 급수가 높은 사람하고 두면 그 사람이 왜 바둑을 그 자리에 두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죽는 자리 같지만 그 급수가 높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옳습니다! 우리가 바둑의 급수로 따진다면 인간의 급수는 초보자의 급수입니다만 하나님의 급수는 우리가 말로도 표현할 수도 없는 급수인 것입니다.
구약 이사야서 55장 8절과 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신앙이 그토록 순수하고 모험적이었던 반면에 가룟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원래 예수님의 신임을 받던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귀한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으려고 할 때 가룟 유다는 왜 허비하느냐고 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계산적으로 생각해 볼 때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다녀 보아야 아무런 소망도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은30에 팔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계산적인 사람은 근심도 앞당겨 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내일 염려는 내일 하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도 내일의 걱정을 앞당겨 하지 말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험적으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는 피곤과 실의에 가득차서 물가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짜증도 나고 화도 났겠지만 그는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겠나이다'하고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이요, 예수님은 한낱 목수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목수가 전문적인 어부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같으면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순종하고 모험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이 되어 나올 때 앞에는 홍해가 물결치고 뒤에는 추격군사의 말발굽 소리로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손을 들어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킬 때 그 험한 바닷물이 갈라져 무사히 건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해도 때로는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오도가도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절망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만 해 나간다고 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떠한 기적이라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40년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강가에 발을 적시며 믿고 들어설 때에 그 강물은 갈라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지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던 제사장들과 같이 죽음이라도 각오하는 모험적인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고난과 고통과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나갈 때에 주님도 기뻐하시는 것이지 안일무사주의는 신앙의 성장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갖고 왕에게 나갔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같은 모험과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오락삼아 장난삼아 신앙의 생활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순교를 당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목베임을 당하고 어떤 이는 불에 타죽고 또는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들어가 죽기도 하고 무서운 참형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신앙을 지켜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시간에 주님을 믿는 신앙을 어떻게 하나님께 보이시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부모나, 처자식, 물질, 명예,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십시요! 우리가 주님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모험적으로 따라 나서면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는 행복한 삶과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굶주릴 각오를 하고 헐벗을 각오를 하고 죽을 각오를 하면 오히려 배불리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한 웨슬레(J. Wesley)는 '하나님 외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백명만 있다면 이 영국을 다 뒤집어 놓고 세계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아합왕 때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었을 때 엘리야를 대접한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종을 섬기기 위해 자기는 굶주리는 모험적인 행동을 해서 그 흉년이 다하기까지 굶주리지 않고 무난히 지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여러분! 지금 이 땅은 아름다운 땅, 살기 좋은 땅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아직까지는 신앙의 자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거 일제 시대와 공산당의 치하를 생각해 볼 때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신앙으로 철저히 살아야 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어떤 위협이 닥쳐와도 순교할 각오를 갖고 모험적으로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어지는 것을 분명히 믿고 절대로 안일한 신앙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험적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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