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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어버린 영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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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눅 19:1-10)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영어 성경에는 Jericho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향기'란 뜻입니다. 여리고성은 이름처럼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일찍이 여호수아 2장 1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정탐군을 보낼 정도로 이미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장 18-22절을 보면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물을 고쳐달라는 요청합니다. 여리고성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여 토산이 익지 못하고 기한 전에 떨어지므로 물을 고쳐달라고 할 때 엘리사가 소금을 뿌려 좋은 물로 만든 곳이 여리고성 입니다. 성지순례 때 이곳을 들렀더니 여리고는 사막의 오아시스로 주변의 사막에 비하여 종려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고 과일 열매가 풍부하여 오렌지와 무화과 열매 등 많은 과일이 싼 값에 살 수 있어서 풍성한 과일파티를 가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을 가진 삭개오(Zacchaeus)
이 성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했습니다. 삭개오(Zacchaeus)라는 이름은 '순결'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름은 가졌으나 그는 순결하지 못하고 부정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그의 직업과 그의 재산정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부정축재자였음을 알리기 위함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마19:24)”고 했습니다. 부자는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기에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갈망도 없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란 자신의 직업을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지역마다 적절한 세금을 부과하고 누구든지 이 돈을 책임지는 사람에겐 그 지역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보통의 경우는 그 이상의 세금을 거둠으로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시에 ‘죄인’하면 창녀와 세리를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려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있었으나 고독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죄인이라고 상종치 않았고 돈은 있었지만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병은 고독입니다. 킬케고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사람 속에 쌓여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낍니다. 만원 전철 속에서도 고독과 외로움을 느껴 철로로 뛰어 내려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가 부쩍 늘었습니다.

2. 삭개오가 만날 수 없었던 이유
삭개오가 예수를 만날 수 없었던 이유는 첫째로 그의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3절 하반부에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키가 작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키가 작다는 것은 ‘믿음의 키’가 작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나의 믿음의 키가 작으면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삭개오의 키가 작은 것도 문제이지만 상대적으로 먼저 온 사람들의 키가 큰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먼저 온 사람들의 키가 커서 나중에 온 삭개오가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고 할 때 가로 막았습니다. 이것을 나는 교회의 문턱이 높다고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에 익숙하기에 주일날 교회 나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전도를 받아 처음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 얼마나 교회의 문턱이 높은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이 가리워져 주님이 보이지 않게 하신적은 없으십니까?

3. 난관의 극복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게 되자 뽕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4절에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목적 하나를 가지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는 삭개오는 체면을 버렸습니다. 겉 껍데기를 벗어 버렸습니다.
인격이란 말을 영어로는 ‘personality’라고 합니다. 이것은 가면이란 말에서 왔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면 겉의 가면을 쓰는 것입니다. 결국 인격은 가면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가면이나 체면이나 형식을 쓰고 있는 동안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더니 예수님의 얼굴이 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이 삭개오를 향해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5절에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뽕나무 밑에 계신 예수님이 삭개오를 벌써 우러러 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삭개오에게 머물렀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갈망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한번 만나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갈망의 결과가 되시길 바랍니다.
한번만 보기를 원했지만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시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6절). 이것이 갈망의 결과입니다. 그날 밤 예수님과 깊은 대화와 교제를 통하여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18장에는 두 사람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의 기도이고 또 한사람은 세리의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은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만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갈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자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갈망도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도 덤으로 주시는 분입니다.
4. 삭개오의 변화
삭개오는 새로운 삶을 예수님께 약속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하고 결단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말을 들으시고 “오늘 이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삭개오의 변화는 첫째 토색한 것을 4배로 보상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남은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구원은 3단계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첫째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에 대한 철저한 뉘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회개의 단계입니다. 둘째는 현재의 돌아섬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토색한 것은 4배나 갚겠다고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셋째는 미래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제일의 목적은 잃어버린 삭개오 같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10절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9장 13절에는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했으며, 마태복음 10장 6절에는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제자들을 파송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은 잃은 것을 찾는 일에 관심을 둔 책입니다. 15장 4절에 “잃어버린 양”을 찾았고, 15장 8절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고, 15잘 32절에는 “잃은 아들”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잃은 것을 찾아 기뻐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004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전도에 최우선을 기울일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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