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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신앙 (막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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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섬김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이 성숙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도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섬김이란 영어의 'service'라는 단어로 '받들어 모시다' “받들어 섬기다” '봉사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정리한다면 진정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곧 섬김이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앙이야 말로 성숙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그가 이 땅에 계실 때에 많은 사람을 섬기러 오셨고 또 섬기다가 가셨기 때문입니다. 섬김이란 자기는 죽고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최고의 섬김의 자리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앙이 성숙된 신앙이며 성장된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은 죽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최고의 섬김의 자리였습니다.

1. 섬기기 위해 낮은 자리로 내려가라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섬기신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3장 4-5절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생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들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생님이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섬김을 부탁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15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섬김의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섬김의 모습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섬김이 없는 신앙은 진정한 신앙도 아니며 성숙한 신앙은 더욱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은 직접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섬김은 종의 자세로 내려가지 않고는 섬길 수 없습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수건을 두르고 먼저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것은 '나 우선 중심의 사고'에서 '너 우선으로 중심의 사고'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잘되어야 하고, 내가 잘 살아야 하고 내 가족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남을 절대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나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인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입니다. 성경은 “여리고성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나 부자요 세리장이었다”고 했습니다. 나 우선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살았기에 내가 잘되어야 하고 자기만 생각하면서 살았기에 남의 것을 토색하고 불의했습니다. 그러던 삭개오가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성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만나 보기 위하여 나갔더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위에 올라갔고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고 “오늘 밤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삭개오는 예수님과 깊은 대화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구주로 고백을 했습니다. 변화된 삭개오가 예수님께 가장 먼저 한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주여! 남에게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삭개오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후 삭개오가 비로소 “나 우선 중심”에서 “다른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나 우선 중심”으로 살아갈 때 토색하고 불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중심의 사고를 극복하십시오.

2. 은사대로 봉사하라

문제는 “어떻게 섬기느냐”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남을 섬기면서 섬김이 즐거워야 합니다. 즐겁게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은사로 섬겨야 합니다. 은사라는 것은 관심 분야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섬길 때에는 다음 네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참가했던 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둘째, 봉사하고 난 뒤 기분이 더 좋아지는가? 셋째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정과 잘 맞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섬길 수 있습니다. 용서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고 “오늘밤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주와 함께 죽을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 로마병정들이 칼과 창을 가지고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무기를 보자 겁이 나서 다 도망갔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다던 베드로까지도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 바다로 찾아 가셨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17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로 가십니다. 갈릴리 바다는 때로는 디베랴 바다라고 부르기도 하며 때로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갈릴리바다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질문하십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 아십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또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 같은 질문을 할 때 베드로는 근심하며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베드로까지도 용서하시고 갈릴리 바다를 찾아 가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배신하고 도망쳤던 베드로에게 새로운 사면까지도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용서의 마음이 없이는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3. 섬김의 시작 나눔

섬김은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야 합니다. 즉 나눔(share)이 섬김의 시작이란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눔으로 섬김은 더욱 깊은 성숙의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보면,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물을 허비했고 심지어 자신까지도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물질도 나누었으며 자신까지도 고린도 교인들에 주었다는 것입니다. 섬김은 곧 나눔입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2장 6-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하였다고 했습니다. 섬김은 어머니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두개의 빈 컵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빈 컵으로는 또 다른 빈 컵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컵에 있는 물을 나눌 때 다른 컵에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눔이 섬김의 시작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줍시다.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봉사합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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