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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이 보게된 세가지 (행 0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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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는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극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그 다메섹 도상에서 갑자기 육신의 눈이 안보이게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이상하게도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을 오히려 보게 된 것이 세 가지가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청년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하게 되는 그 유명한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이 본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고 설교가 가능하지만 본서에서는 특히 주님께서 사울에게 영적으로 보여주신 세 가지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울은 그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못 본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 이하에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강한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은 예수님의 광채의 빛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그것을 사울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사울이 또 보게 된 두 번째의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광채를 보면서 갑자기 육신의 눈이 멀어 버려서 간신히 부축을 받으면서 다메섹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삼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안수하여 자기의 멀어 버린 눈을 다시 뜨게 하는 미래의 장면을 기도 중에 보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1절 이하입니다.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과연 바울은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로 인하여 장차 자기가 다시 눈을 뜨게 될 것을 믿음의 영적인 눈으로 보기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고 계신 응답과 축복을 보았던 것입니다. 앞날의 준비된 승리를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희망의 종교입니다. 내일의 꿈을 믿음으로 미리 보면서 달려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울은 미래에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그 소망과 능력과 승리를 믿음으로 기도 가운데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울은 자기의 사명과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당하여야 할 '해' 즉 고난까지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 이하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이것은 영광을 위한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이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루어야할 그의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사울은 이제 자기의 해야 할 희생적인 사명과 그리고 지고 가야 할 고난을 미리서 보았습니다.이상과 같은 세가지가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그러나 이제 보게된 세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빛을 보았고, 둘째로 자기 앞에 준비된 미래의 하나님의 응답과 승리를 보았고, 셋째로 이 땅에서 자기가 치루어야 할 사명의 고난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과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들입니다. 첫째 우리도 사울처럼 복음의 빛을 보았고 알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도 예수를 보았습니다. 복음의 광채가 우리에게도 임해서 우리는 예수를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보화요, 보배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사울도 주님의 광채를 보게 되었고, 이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사단은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를 보지 못하고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영접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이 빛을 보게 된 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입니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을 하자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은혜로 주님의 빛을 보게 된 자들은 사울처럼 나머지 두 번째 세 번째의 것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두 번째는 주님께서 주시는 미래의 승리와 응답과 영광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것들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미래의 승리의 모습을 오늘 미리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내일의 천국의 영광까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면류관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이러한 승리의 내일을 미리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달려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
인의 믿음 생활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사울처럼 영광을 위해 우리가 치루어야 할 우리의 고난의 십자가가 무엇인가까지도 영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영광과 승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십자가의 희생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합니다.그래야 우리는 남은 생애 동안 우리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일해야 하며 또한 어떤 땀을 흘려야 하고, 어떤 일을 감수하며, 어떤 씨를 심어야 할 것인가를 정확히 할 수가 있습니다.

사울의 눈을 삼일간 감기워 놓고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하고 사울에게만 영적 사실을 세가지 보여 주신 것은 바로 사울처럼 예수 믿고 변화되어 이제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되는 자들도 사울이 보았던 이 세 가지를 똑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뜻이 있기 때문에 여기 성경에 쓰여져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본 사람은 『그리스도는 내가 누구인가? 이 땅에서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빛을 보았습니까? 주께서 내게 주실 미래의 승리를 보셨습니까? 그리고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 나의 십자가도 분명히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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