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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술에 취하여야 합니다 (행 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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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란 제목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란 성령 충만 받은 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성령 충만을 받지 아니한 예루살렘 거리의 수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그들의 상태를 비방하기 위해서 표현한 말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행동은 그들의 눈에 볼 때는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제자들은 본래 배움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며 담대한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행2:7) 그런데 정 반대의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순절 아침에 예루살렘 거리로 뛰어나와서 각 나라의 방언으로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구약의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담대히 외치는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을 까요?

그들의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죽은 후 무서워서 꼭꼭 숨어 있어야 할 그들이 무엇을 믿고 이렇게 용감하게 거리로 뛰어나와서 예수가 살아났고 너희가 죽였던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렸다고 담대히 말하는지 그들의 담대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 포라' 즉 흩어진 유대인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있던 때입니다. 본문의 8-11절에 보면 16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데 제자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전도하는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행2:7-8절에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라고 의아해 합니다.

'어찜이뇨' 이 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에 비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 정상적으로 보이면 그것이 비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새 술이란 알콜 성분이 아주 강한 포도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그들이 그러한다고 단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술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말세에 하나님께서 남종과 여종에게 충만하게 부어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역사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임하심으로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새 술에 취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을 받아야 하고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새 술에 취한 사람, 즉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 삶이 변화됩니다.
성령은 변화의 영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강력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때문에 바람 앞에 등불처럼 되였습니다. 그 때 17세된 다윗이 나가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하면서 사울은 깍아 내리고 다윗은 추어올렸습니다. 화가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당시 제사장이며 선지자인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라마나욧으로 도망가서 숨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나욧으로 군사를 보냈습니다. 사울의 사자들이 라마나욧으로 갔을 때 사무엘 선지자를 중심으로 성령 충만하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사울이 보낸 사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기쁨에 도취되어 사울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냈으나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사울이 세 번째 사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에게도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사울이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가기로 하였습니다.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사울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라마나욧 땅에 들어서자 마자 사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성령에 도취되어 미칠 지경이 아니라 미쳐 버렸습니다.

왕이 벌거벗고 온종일 누워서 예언하며 성령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강력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어 갔다가 다윗을 사랑하게끔 되어졌습니다.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많이 변합니까? 예수 만날 때 즉 성령 받을 때입니다. 그리고 성령 받은 사람을 만날 때 많이 변합니다.

② 비상한 믿음으로 성령에게 의지하고 삽니다
여러분 술 취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말하는 것도 내 맘대로 안됩니다. 움직이는 것도 내 뜻 대로 안됩니다. 술의 뜻대로 움직이고, 술의 뜻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하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세상 술에 취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음란한 것을 생각하고 무절제하고 염치가 없으며 정욕이 발동하고 욕설을 내뱉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여 영의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영의 생각의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롬8:6-7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성령을 의지하고 삽니다. 성령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성령의 뜻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은 성령에 의탁합니다. 성령을 의지하기 때문에 아낌없이 바칠 수도 있고 모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그 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리라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평범하게 살면서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이상하리만큼의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하였습니다.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환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핍박과 환난 중에도 성령이 주시는 '비상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의 비상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큰 축복을 받고 신앙의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는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는 고민하지도 않고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비상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아들을 그에게서 받아 다시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바치고 도로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면 바치고도 도로 받습니다. 야곱이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령에게 의탁되어져 살든지 죽든지 비상한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열왕기상 17:10-16에 나오는 사렙다 과부의 믿음을 봅시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전국에 임한 극심한 가뭄으로 어디서도 양식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외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웅큼으로 빵을 구워먹고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선지자 엘리아가 그 집에 와서 식사를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돈 많은 사람도 있고, 엘리아 한 사람쯤 넉넉히 대접할 수 있는 부자도 그 나라에 많이 있었겠지만 왜 하필 이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냈을 까요? 축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성령이 주시는 비상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웅쿰의 가루로 만든 빵을 엘리야에게 몽땅 드렸습니다.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식사를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그후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여인의 가루통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땅에 비가 내리기까지, 농사를 지어먹을 양식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가련한 여인에게서 마지막 식사를 빼앗으시고 영원한 식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평범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비상한 것입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사람은 비상한 믿음으로 성령께 자신의 모든 것을 위탁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위탁한 사람에게 비상한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③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게 되면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강해집니다. 나가서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됩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새 술에 취하여 거리로 나갔습니다. 가서 주 예수를 전했습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게 되면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보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그의 입은 옷이 보였고 그가 가지고 있는 권세와 물질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새 술에 취하고 나면 그의 영혼이 보입니다. 지옥으로 달려가는 가련한 영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설립자인 웨슬레가 성령의 체험을 강력하게 한후 1746년 6월 25일 존 스미스(John Smith)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제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났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스 목사님은 장차 종교는 있으나 성령이 없고 교회는 있으나 예수가 없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선교하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의 뜨거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새 술에 취하게 되면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갖습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주님의 관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향한 봉사에 자신을 드리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관심은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주님을 향한 최대의 봉사입니다.

미국 휴스톤 감리교회 찰스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교인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등록 교인 중에 20%는 주일예배에 출석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25%는 하루에 한번도 기도를 하지 않고 있었으며 35%는 성경을 읽지 않고 있었고 40%는 헌금을 드리지 않고 있었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고 있었고 75%의 교인들이 교회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었고 85%는 단 한 사람도 전도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의 교인들이 축복받고 천당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교인들의 신앙 사상을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254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있습니다. 세계 전체 인구 53억 인구 중에 기독교인은 30.6%에 지나지 않습니다. 100명이면 70명은 지옥으로 가고 30명만이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목장을 경영하는데 100마리의 젖소 중에서 30마리만 살고 70마리가 죽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얼마나 심각한 노릇이겠습니까? 우리는 선교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지만 주님은 목장의 주인처럼 그 심각성을 느끼시고 오늘 선교에 투자하고 헌신할 일꾼들을 찾고 있습니다.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선교하게 됩니다. 선교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변화를 받습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비상한 믿음으로 성령께 의탁하고 삽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복음의 열정으로 선교하게 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합시다. 성령충만 받고 변화 받아 성령께 의탁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에 헌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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