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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시대, 새사람, 새능력 (행 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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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때 우리 민족의 삶은 국가의 주권을 상실한 완전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광복절은 그 치욕스러운 삶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왜 과거 우리나라는 그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저에게 세가지 이유를 들라면 첫째 우리나라 지도자들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개혁을 단행하고 개화하고 근대 무기로 무장하는데도 조선은 쇠국정책으로 척화비를 세우며 문을 닫고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시대의 흐름과 국제정세를 읽고 대처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천주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 왔을 때 천주교만 핍박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입니다. 당시 집권세력들은 기독교가 양반과 상놈의 평등을 주장한다며 공자의 제사를 반대한다고 새 시대의 개화된 인물들을 처절하게 죽였습니다. 시대를 변화시킬 만한 인물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만약 병자 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 세자만 죽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역사는 달라졌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소현 세자가 청나라에서 마담샬 신부로부터 서양 문물을 전해 들었고 천주교인들과 함께 귀국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다면 세상이 바뀔 뻔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70일 밖에 안되어 갑자기 죽었습니다. 우리 역사로 볼 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분이 왕이 되었으면 우리 민족의 판도는 달라졌다고 생각이 됩니다.
한 가지 더 이유를 생각한다면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에 우뚝 설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이미 조선은 붕당으로 힘을 다 상실하였고 일본이 처들어 왔을 때도 친러파와 친일파로 국논은 갈라져 결집된 힘이 없었습니다. 내부의 분열의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결국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대를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는 우리 민족은 힘없이 일본의 속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기술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제 정보 통신사회로 발견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 정세가 과거와 같이 정복전쟁은 아니지만 경제에 의해 문화에 의해 무역에 의해 정보에 의해 정복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저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과 동시에 대한 민국 국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대한 민국 국민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으로 볼 때는 영적인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로 거대한 타락한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준비된 사람이 되어 새 시대에 쓰임받아야 합니다(1).
어떤 청년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산에 들어 갔습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검술을 연마했습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 가있었기 때문에 시대가 변한지를 몰랐습니다. 원수를 찾아가 아버지를 죽인 외나무 다리에서 결투하자고 했습니다. 이미 세상이 바뀌어 상대는 권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청년은 외나무다리에 섰습니다. 칼을 뽑아 10년 동안 연마한 검술로 일격에 원수의 목을 날리려고 했지만 상대는 이미 접근하기도 전에 총을 뽑아 쏘아 버렸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연마하여도 필요 없습니다. 구두가 나와서 그것이 대중화 되고 있는데 여전히 고무신을 만들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이 총포로 무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칼싸움하다가 망한 것이 아닙니까? 일본이 망한 것도 결국 무엇입니까? 미국은 원자 폭탄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대포를 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기술 산업 사회로, 정보 통신 사회로 무섭게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대도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 때입니다. 성전 예배가 끝이 나는 때입니다.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째 되는 날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새로운 땅 새로운 시대가 출발되었음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부터 50일 째 되는 날로서 가나안 땅에서 첫 수확을 거둬들인 것을 기념하는 감사절기입니다(민9:11. 28:26)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십계명을 받은 날이고 교회가 탄생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의 안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칠칠절). 회당에서 예배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율법에 의해 모든 행동이 규제받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은혜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새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새시대를 이끌어 갈 새 사람을 준비기키고 있는 것입니다. 새 시대 이 은혜의 시대 주인공들은 누구입니까?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누구입니까? 1장 13-15절에 나와 있습니다. 120의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 시대, 은혜의 시대가 시작되는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아 새시대의 주인공으로 쓰임받은 사람들은 120명의 성도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새 시대가 올 것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기다리며 기도하며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구약은 성부 하나님의 활동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 시대입니다.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낼 줄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그 메시야가 오셔서 인간을 구속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구속을 이루신 예수님께서는 그 구속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교회 시대를 이끌어갈 성령 말입니다.

성령이 임할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고별사에서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승천하시기 전에도 말씀하였습니다.(행1:5-8) 이것은 우연히 있었던 일이 아니고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해 주었습니다.(욜 2:28-32) 이 새시대의 주인공은 바로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0일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40일 승천 승천 후 10일 오순절)

오늘 이 시대는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새 시대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재림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저 흘러 듣지 마십시오. 그 때는 분명히 오고야 맙니다. 우리에게 오는 새시대에 쓰임받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월하게 세계 선교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적인 준비, 영적인 준비, 덕으로서의 준비, 체력의 준비 등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기 위해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성령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4)(be의 문제)
새 시대를 이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옛 사람이 아닙니다. 그 새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의 사람입니다. 삼성이면 삼성맨을 만드는 것입니다. 엘지면 엘지맨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이면 현대맨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의 사람, 권력의 사람, 사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그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3).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받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토네이도 같은 바람을 경험하면 일평생 일어 버리겠습니까? 불의 혀같은 것을 경험하면 잊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 즉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새 시대 성령의 시대를 이끌 사람은 바로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모습으로 성령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2절을 보십시오. 청각적인 증거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습니다. 바람이 분 것은 아닙니다. 실제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소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정도였습니다.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숨쉬다' 또는 '바람 불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성경에서 바람 또는 입김이 작용할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흙으로 사람이 만들어질 때 아직 모양뿐, 생명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생기를 그 코에 붙어 넣으실 때에 비로소 생명이 생기게 되었고(창 2:7), 겔 37:5,6에서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서 살게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생기가 무엇일까요? 겔37:14절을 보십시오. 바로 성령입니다. 성경에서는 바람이 작용하는 곳에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새시대가 시작됩니다. 오순절에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고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에 필요한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바람으로 임하셨습니다. 이들이 새생명 운동을 일으킬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새생명 운동을 일으킬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사람 말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3절을 보십시오. 시각적 증거입니다. 성령님께서 불의 혀같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불은 (1) 뜨겁게 하고,(2) 태우고,(3) 밝게 합니다. 불과 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① 어름같이 차던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②우리 속의 죄를 태우고, ③우리 마음을 밝혀 성경 말씀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새 생명 운동을 일으키뿐 아니라 성령의 사람은 어름같이 차가운 인간들의 마음을 뜨겁게 변화시키고 죄를 태우고 마음을 밝혀 성경을 깨닫게 하는 일꾼으로 사용되게 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2제자가 120명의 성도들이 바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 죽음과 공포 분열과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 새생명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변화의 주인공들이 된 것입니다. 시대를 살리는 주인공들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만 살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로마와 이방 여러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시대를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오고 오는 시대 속에서 성령의 사람을 사용하시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 운동을 일으키는 주인공으로 쓰임받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 부흥사 가운데 김익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황해도 안악이란 곳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는 예수님도 믿지않고, 시골 장날이 돌아오면 술을 먹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붙잡고, 돈을 뜯어내고, 때리고, 폭력을 하는 깡패 두목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경찰들까지도 김익두 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 문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소안론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고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그의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을 하고 엎드려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고 전도인이 되고 신학교를 들어가 공부를 하여 평양 신학교 제 3회 졸업생이 되고 목사가 되어 장로회 제 9회 총회장이 되기도 했고 가는 곳마다 부흥회를 인도하여 28만명에게 전도를 하고 150개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안악산골의 깡패 김익두가 어떻게 이러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마음이 변회를 받아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고 엎드려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앙리 뒤낭이라는 유명한 은행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당시 세계를 석권하던 유명한 장군, 나폴레옹 황제를 한 번 만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꿈은 자기의 사업, 자기의 기업체을 더욱더 크게 키워보고 싶은 그런 욕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을 만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나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불란서 등 전지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보니까 얼마나 많은 불쌍한 환자들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숨져가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목도한 이 사람은 다시 자기의 꿈을 바꿨습니다. 지금까지의 큰 기업체를 이루겠다는 꿈에서 눈앞에 나타난 비참한 불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와야겠다 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만 바라보던 사람, 물질 만 바라보던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많은 사업가들에게 열심히 호소를 해서 부상병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돕는 일에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분이 곧 적십자사를 처음 주창한 분입니다. 그분은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한 사람의 꿈은 세상에서 잘 살기를 위해서, 더 풍요한 생활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아야겠다는 것이었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서는 그리스도 사랑으로 그들을 돕겠다고 하는 꿈으로 바뀌어졌을 때에 마침내는 당대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후에 전세계적으로 적십자가 없는 곳이 없이 다 들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뒤낭 한 사람에 의해 적십자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사람으로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4-13)
새 시대 속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새 시대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해 능력을 주십니다. 무슨 능력입니까? 방언입니다. 이 방언은 고린도 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과 다른 것입니다. 기도할 때 주는 신령한 은사의 방언이 아닙니다. 언어 능력입니다. 통역없이도 말하면 다른 나라 사람이 듣습니다. 7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였습니다. 그런데 통역 없이도 그들이 다 알아 듣습니다. 그들이 해야할 사역이 무엇입니까? 1:8절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무슨 능력으로 복음을 전합니까? 언제 언어를 배웁니까?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였습니다. 자기 스스로 학습하여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입니다. 외국어 학습을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알아 듣도록 외국어를 하게 합니다. 통역도 필요 없습니다. 이들이 다 알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탁한 것을 수행하도록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입니다. 저들이 언제 언어를 배워 땅끝까지 전도하겠습니다. 그들은 아직 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아 놓고 신비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에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7)'

성령 충만하여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만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요즈음 새벽 기도 시간의 기도 제목 중의 하나가 영적 능력있는 사람이 되게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볼 때 한심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도대체 영적 권세가 없는 것입니다. 5년 전 실패한 일 지금도 그대로 실패합니다. 그만큼 신앙 생활을 하였으면 사탄이 얼씬도 못할 만큼의 권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작년에도 제가 이런 이야기 드린 것같은데 딸들이 교회에 오겠다고 하면 화내지 않고 대리고 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밥을 못먹어서 저녁을 먹고 심야 기도회에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녁에 집에 갔습니다. 밥먹을 시간은 10여분 됩니다. 밥을 먹고 시간 맞추어 성도님을 모시고 와야기 때문에 급히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작은 딸이 기도회에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바쁘니까 다음에 가라해도 망무가네입니다. 화를 내고 야단을 치고 나왔습니다. 기도가 되겠습니까? 영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탄에게 지고 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능력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성령의 능력을 받읍시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매일 기쁨이 샘솟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슬픔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불가능할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옥문이 열린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장벽이 무너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준 반을 부흥 시킬 수도 있습니다. 내게 주신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라는 말씀이 응답되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6-19)'

한계에 부디치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갖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인간의 한계가 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건강이 없으면 건강을 구하고 재물이 없으면 재물을 구하고 지혜가 없으면 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기쁨이 없으면 기쁨을 달라고 구하고 지식이 없으면 지식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명을 이룰 만한 풍성한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을 받으면 사람들이 다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신비한 능력을 받아 나타내었을 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5-13) 두가지로 반응합니다. 흩어진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신비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1)소동(6)합니다. (2)놀라고 기이히 여깁니다.(7) 미완료형입니다. 계속적으로 정신이 떠난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이상이 여깁니다. 여기까지는 반응이 같은 데 한 부류는 호기심이 생기고 나중에 회개하고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함을 들은 것입니다. 또한 부류는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항상 두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듣는자와 조롱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낙심하지 말고 더 큰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전에는 두려워 도망가고 저주하던 사람이입니다. 이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갈릴리 어부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새 시대를 창조하는 세계적인 사람 역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자신의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초대 교회 지도자로 수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자신의 장모의 병하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니 이제는 앉은뱅이를 말씀 한 마디로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무디같은 구두 세공업자도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사역자가 될 수 있고 20여가지의 병을 짊어지고 다니던 칼빈같은 사람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도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흥사인 무디는 학교교육이라곤 보잘것이 없었으나 그는 강한 성령의 능력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처음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 목사들은 자신의 설교가 끝나고 난 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디가 설교를 마치고 나면 꼭 몇 사람이 그에게로 와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만 했습니다. 나중에 화가 난 무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고 물으니 그들은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은 무디는 그 날부터 성령강림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하며 오랜 기간 기도에 힘쓴 그가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져서 급하게 근처의 친구 집을 찾아가 방을 빌려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문이 터지더니 마침내 그에게 강한 불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불이 너무나 뜨거워 그만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변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우리는 새시대 새사람 새역사의 주인공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여 철저히 준비하여 성령의 사람이 되어 능력있는 일들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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