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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따로 세워 보내라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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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창립 16주년을 맞이하면서 두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여러분에게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의 꿈을 주신 것입니다. 꿈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꿈이 없으면 사람은 동물처럼 삽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외로워도, 병들어도, 실패해도, 절망해도 누구에게도 그 꿈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목표를 주시고 열정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외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온누리교회입니다. 16년 동안 하나만 생각하게 하시고 한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둘째, 16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교회를 지켜주셨습니다. 16년의 역사는 그리 긴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2가정으로 시작되어 오늘처럼 많은 성도가 꿈을 갖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는 몸부림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사실, 우리가 꾼 첫 꿈은 미숙했고 막연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어느덧 16살이 된 청년처럼 골격도 분명해지고, 변성기와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비전이 매년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으로 되고, 2천/1만 비전을 주시고, 5백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내게 하시고, 지역 곳곳으로 들어가서 그 꿈을 이루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나 놀랍고 감격스럽습니다. 온누리교회의 영향력은 한국 사회로, 세계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창립 주일’이란 무슨 뜻입니까? 창립을 맞이했다는 것은 처음에 가졌던 꿈, 처음에 가졌던 흥분, 열정,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순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갈수록 때가 묻습니다. 타협할 줄 알고, 적당히 넘어갈 줄도 알고, 포기할 줄 압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꿈이 퇴색됩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처음 열정, 꿈, 순수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복이 저와 여러분 마음 속에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온누리의 꿈
 
그러면 우리가 가졌던 처음 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셨던 그 교회, 사도행전적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꿈 때문에 온누리교회가 생겼습니다. 성령받은 젊은이들과 평신도가 움직이는 교회,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는 교회, 세상에 영향력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이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자기를 포기하며, 생명을 던져 복음을 전했던 ‘바로 그 교회’입니다.

우리 나라에 많은 목회자가 있지만, 두 분이 생각납니다. 6.25 이후 교회를 시작해서 ‘3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를 걸었던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그 표어를 걸고 민족복음화의 꿈을 가졌던 분이십니다. 또 한 분은 제게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주신 분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 대학가로 뛰어 들어가 복음을 전했던 CCC의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그분의 표어는 ‘민족의 가슴마다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입니다. 목회자는 많이 있어도 이런 목표를 갖고 계신 분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을 한 사람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이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봉사하게 된 자기 민족이 오히려 율법에 얽매여서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비참한 운명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서 9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에 대한 아픔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준곤 목사님이 외치었던 그 민족 복음화의 열정이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의 두 번째 꿈은 세계 선교입니다. 그는 그 꿈을 위해 자신의 학문과 지위를 버렸습니다. 그의 탁월한 학문은 누구에게나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학문을 포기했고, 명예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고향을 떠났고,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떠났고,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매맞는 것과 병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해야 한다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그를 로마와 땅 끝으로 가게 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큰가 작은가는 화제가 될 수 없습니다. 덜 유명하면 어떻고 사람이 적으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한 영혼만 구원할 수 있다면 내 학문, 내 소유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이 우리 순이요, 공동체요,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봉사 없이 선교 없다
 
사도행전 13장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사도행전에는 유명한 교회가 두 개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태어난 교회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를 중심으로 구성된 대형 교회입니다. 그리고 회심한 유대인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면에서 조직이 있었던 교회요 세련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봉사와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이 교회가 핍박을 받아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불똥처럼 튀어나가 생겨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대형 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안디옥이라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성령받은 사람이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전도 중심의 교회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거장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금식을 많이 했습니다.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고 선교를 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안디옥 교회에서 발견하는 첫 번째 메시지는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정말로 선교를 하려면 1만명의 사역자가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먼지가 없어야 합니다. 주차장은 아름다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고서 선교는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안디옥 교회는 먼지 하나 없이 청소가 잘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새신자를 잘 돌보았을 것입니다. 화장실도 깨끗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기고, 교회를 섬겼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봉사 없이 선교는 불가능합니다. 왜 선교에 실패합니까? 선교사가 봉사의 훈련, 섬김의 훈련을 받지 않고 선교지에 갔기 때문입니다. 양보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자꾸 싸웁니다. 정말 필요한 선교사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선교사입니다.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하고, 죽으라면 죽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습니다.

기도 없이 기적 없다

왜 이렇게 하지 못합니까? 섬기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을 잘 하고, 말 잘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 선교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말없이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가는 곳에는 열매가 있습니다.
지난 번에 우에다에 교회를 세우는 일로 일본에 갔다가 고베동부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150-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입니다. 그 날이 마침 토요일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교회 장로님들이 반바지를 입고 나와서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청소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청소하는 것, 어린 아이를 섬기는 것, 장애우를 섬기는 것, 새신자를 섬기는 것, 병원에 가서 심방하는 것, 장례식에서 섬기는 것, 바로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공동체가 만들어졌을 때 그 사랑이 흘러 넘쳐서 선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선교사를 아무리 보내도 싸우고 돌아올 뿐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발견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금식을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허름한 옷을 입으면 어떻습니까. 찬양을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든 기도하고 금식하고 눈물을 흘리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기도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교회, 금식하는 교회라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선교는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역은 탈진합니다. 좌절합니다. 기도와 금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역은 시기와 질투, 경쟁을 합니다. 그래서 일이 되는 것 같은데 편안함이 없고, 기쁨이 없고,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불편합니다. 눈물의 기도, 금식하는 기도, 심장을 떼어내는 봉사와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세 번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성령님이 말씀하지 않아서 입니까, 우리가 듣지 않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내 생각과 주장이 많기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봉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걸레를 들고 닦고, 심부름을 하고, 남이 보지 않는 데서 형제의 아픔에 동참해주고,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는 교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이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용조 목사를 온누리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하시면 여러분은 저를 그곳으로 보내 주겠습니까?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것은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교회입니다. 가장 아끼는 것,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로 세우라’는 것은 ‘구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 전도를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로 가는 것은 특별한 부름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따로 세움을 받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르심

(calling)’이라고 합니다. ‘부르심’이 확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굉장히 힘듭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있겠습니까마는 힘이 들 때 이겨낼 힘이 없는 것입니다. 부르심이 분명하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부르심이 확실하지 않으면 시험에 잘 듭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선교지에 갔는데, 사역이 너무 힘들고 먹을 것도 없어서 굶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하나님, 선교지에 까지 보내셨으면 먹을 것을 주시던지 일을 잘 되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나는 너를 보낸 적이 없다.” 부르심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1972년 신학교에 다니면서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그 때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가 되면 선교지로 가리라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하고 연예인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연예인을 전도하는 것도 선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간을 다쳤습니다. 목회를 포기하고 영국에 갔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와 온누리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 계속 맴도는 것은 선교에 대한 짝사랑입니다. 선교사님을 파송할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온누리교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바로 ‘선교’입니다. ‘주님, 이 온누리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는 헌신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부흥을 주셨습니다. 수 많은 영혼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5백 여명의 선교사가 떠났습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떠남’의 영성

얼마 전에 우리 교인 한 분이 제게 ‘목사님이 요즘 타락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7년 된 교인은 떠나라고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하더니 요즘에는 안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요즘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커지는 것이 좋았나 봅니다.
교회에 온지 7년이 되어 떠난 분들 중에 훌륭한 분이 참 많습니다. 오늘 낮에 세미나를 했는데 조문상 선교사님이 선교지로 떠난 이유가 7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온누리교회에 온지 7년이 되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선교지로 갔다고 합니다. 라채광 집사님도 어느 날 제주도로 병원을 옮겼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7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영길 장로님도 그랬습니다.

온누리교회의 영성은 ‘떠남’에 있습니다. 갈 데 없는 분은 떠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나십시오. 대형교회가 되기 위해 온누리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립 16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십시오. 우리의 영성은 순종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지역,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 순마다 선교사를 연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가지 못하더라도 선교사들을 기도로 도와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온누리교회입니다. 16주년을 맞이하면서 처음 정신, 처음 비전, 처음 흥분,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사람, 비전, 물질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으면 우리의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1999년 12월에 제 간에 암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다음 해 2월 7일에 미국에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회복이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10개월 만에 재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12월 30일에 2차 고주파 간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송구영신 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요양차 한달 반 정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였고,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많은 성도 앞에서 설교하다가 10명 앞에서 설교하려니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 무척 귀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더 와도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 교회가 개척을 시작하는 날, 제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에다라는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아직까지 교인은 공식적으로 한 명도 없습니다. 10월 28일에 입당예배를 드립니다. 지금 마지막 공사중입니다.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들은 제가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저도 참 이상합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말입니다

우에다 공사 현장에 가기 전 8월에 검사를 해보니 암이 또 생겼습니다. 지금 고백하건대 이번에 세번째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일본에 갔습니다. 열흘 동안 동경, 오사카, 우에다, 후쿠오카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큐슈 지역에 가 보았는데 그곳은 3만명 당 교회가 하나였습니다. 평균 출석 교인은 26명이었습니다. 일본은 잘 사는 나라이지만 교회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다섯 번째 교회는 큐슈에 세워질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지금 건강을 관리할 때인데 왜 이렇게 하는가? 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라는 뜨거운 마음을 주시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수술을 했든 하지 않았던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마음은 교회를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이 마음을 주십니다. 쓰러져도 이 일을 하고 싶고, 병들어도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사명이요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제가 못하면 여러분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이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누리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요 갈 길입니다. 나이는 묻지 마십시오. 건강도 묻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길 외에는 갈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민족이 사는 길이요, 세계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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