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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직분을 맡을 사람 (딛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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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에 저희 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임직자들을 선출하는 공동의회를 모이기로 되어 있습니다. 공동의회는 교회의 최고의 의결기관입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총회' 라고 하는데 우리 교단에서는 장로교 의회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회' 라고 말합니다. 오늘밤에 소집되는 공동의회에서 두 분의 장로님과 두 분의 안수 집사님에 대한 신임을 묻게 되며, 20명의 안수 집사님과 15명의 권사님을 선출하게 됩니다. 교회가 이렇게 일꾼을 세워서 앞으로 10월 기념행사 때에 축제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잔치를 드리려고 할 때에 마귀가 먼저 알고 시험 들게 합니다. 그래서 직분을 세울 때에 우리가 먼저 기도를 많이 해야 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임직자들을 세울 때에 시험 들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모든 궤략을 알고 방어하는 차원에서 말씀을 붙들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오늘 밤 우리가 세우려고 하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은 교회에서는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할 그런 분들입니다. 한 나라가 편안하고 잘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와 지도층에 있는 분들의 의식이 건강하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그 집에서 기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집에는 큰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또 큰 집에는 기둥들이 많아야 합니다. 만약 집은 크지만 기둥이 약하면 그 무게 때문에 기둥이 부러지게 되고 무너집니다. 작은 집은 기둥이 작아도 되지만 큰 집에는 큰 기둥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일꾼들을 세울 때에 이런 원리를 따라서 일꾼들을 세워야 교회가 든든하게 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 섬에 있는 교회들을 부탁합니다. 바울이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 교회의 질서를 세우고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라고 합니다. 일꾼은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도 일꾼을 기둥이라고 하고 또 집에서도 일꾼을 기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에도 일꾼들을 가리켜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양 지역의 어떤 교회는 대략 성도의 수가 250명 될 때에 교회를 아파트 단지로 옮겼습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교인들이 많이 오게 되었습니다. 750명 정도 교인들이 모이게 되었을 즈음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교회가 분열되었고 목사님이 그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의 성도는 늘어났는데 교회를 세워야 할 기둥들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집이 크게 되려면 큰 기둥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큰 집 즉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영적인 큰 교회가 이루어지려면 그 교회를 받들어 지켜야 할 큰 일꾼들이 많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천 명은 천 명을 지킬 수 있는 기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천 오백 명이 되는 교회로 이루어지려면 그 보다 더 많은 기둥감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

그러면 교회에서 기둥의 자질은 어떤 분인가? 먼저는 성도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기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집의 얼굴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옛날 집들 중에서 큰 집을 본다면 맨 처음에 무엇을 봅니까? 기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둥이 곧아야 집이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일꾼을 세우게 되면 성도들이 먼저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 우리 권사님, 우리 집사님들은 기도를 많이 하시고, 충성하시고, 헌신하시고, 봉사하시기를 요구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둥을 보고 집을 아는 것처럼 교회의 일꾼들을 보고 교회를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지도력은 본을 보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본을 보이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성도가 많이 생깁니다. 만약에 목사가 실족하면 목사 때문에 많은 영혼이 실족합니다. 교회의 장로님이 잘못하면 그 장로님 때문에 많은 영혼들이 상처를 받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아무나 지도자가 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도자는 그만큼 책임감도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책임과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직분을 받는 것만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만약에 일꾼이 된다면 그 교회가 당하는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책임이 얼마나 큰 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의 부족함은 심각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 직분 자들은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아트라크라고 하는 분이 '미래의 기입'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더는 첫째 일을 잘 해야 하며 두번째로 리더는 지도력을 높은 지위나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고 책임으로 인식하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떤 직분을 맡았을 때에 그 지위를 높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에 맞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 책임을 다 하기 위한 사람이라야 진정한 리더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리더는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지도자의 말은 진실하다고 믿어줄 수 있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

두 번째, 기둥은 짐을 지는 것이 기둥의 역할입니다. 기둥은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기둥이 약하면 지붕이 내려앉습니다. 기둥이라고 하면 짐을 받들어 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둥이 약하면 집이 무너집니다. 교회의 직분을 세우는 것은 교회의 무거운 짐을 지라고 직분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어떤 대접이나 받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짐을 질 수 없는 분에게 짐을 맡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교회에서 직분을 원하면서도 짐을 지는 것은 싫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모든 직분은 짐을 지라고 세우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영광과 존경은 책임과 의무를 다한 자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짐을 지는 사람은 반드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일꾼이라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데 어떻게 힘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고 일을 하려는 일꾼이 있다면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무겁고 숨이 가쁠지라도 힘을 다하고 땀을 흘리는 자라야 옳은 일꾼이 되는 줄 믿습니다. 호흡이 가쁘다는 것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때는 그만큼 영적인 기도의 영역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숨을 가쁘게 쉰다는 것은 산소를 더 많이 들여 마셔서 우리의 몸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야만 이 짐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짐을 지는 분들은 땀을 흘리며 힘들게 일하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큰 일을 할 때에 먼저 짐을 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가대를 대접하고 교사를 대접하는 일들을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수고하는 교역자들을 알아주고 대접할 줄도 아는 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직분자가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세 번째로 기둥은 교회가 어려운 때에 목숨 걸고 그 교회를 지킬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교회는 수많은 교인보다도 목숨 걸고 헌신하는 몇 사람의 성도에 의해서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둥의 위치가 어떤 것입니까? 기둥은 그 집과 운명을 같이 합니다. 그 집의 운명이 다할 때까지 그 기둥은 자기 위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교회의 일꾼들은 적어도 안수 집사님 이상이 되시는 분들은 이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장로님이 되시고 집사님이 되셨으면 이 교회와 평생을 같이 하셔야 합니다. 직분자는 멀리 이사가도 이 곳이 나의 교회요, 교적을 이 곳에 두고 평생 섬겨야 될 줄 믿습니다. 저는 평신도들이 멀리 이사가면 이사간 집과 가까운 교회에 나가라고 요청합니다. 그렇지만 직분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직분자들은 교회의 기둥이기 때문에 옮길 수가 없습니다. 기둥은 제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제가 파키스탄 카라치에 갔을 때에 한인 교회의 이** 장로님은 마산 **교회에서 장로 임직을 받자마자 공중 기도 한 번도 못하고 대우 그룹의 카라치 대표로 7년 동안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장로님을 보고 '장로님은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니까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로 임명할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시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장로님은 어디에 가도 '나는 마산 동강교회의 장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 교회의 기둥의 역할을 자세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게 되고 헌신 봉사하게 되는 그 분들은 물질과 눈물과 땀이 베어 있는 그 교회를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쉽게 떠날 수 있지만 교회를 위해서 눈물과 땀을 흘린 성도님들은 그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꾼들은 헌신 봉사해야 합니다. .

그리고 또 비방과 비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둥이 서 있으면 여러 사람이 '기둥감이 좋다' 라고 칭찬도 하지만 비바람도 맞아야 합니다. 이 땅위에서는 위대한 일을 한 것만큼 많은 비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아마도 이 땅위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생전에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브라함 링컨을 보고 하도 못 생겨서 고릴라같이 생겼다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고릴라가 있는데 그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그러한 비방도 다 감수하였습니다.

여러분 지도자에게 비방이 따르는 것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비방을 받는 일이 절대로 없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을 비방 받는 일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배가 앞으로 항진하고 속력을 높이는 만큼 파도와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비방을 받을 때에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격려와 칭찬만 계속 받으면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교만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일꾼은 마지막까지 겸손하라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비난과 공격을 하게 만드는 것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비방을 할 때, 저것은 하나님이 내가 교만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시는 채찍인 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듬어 지고 또 다듬어 지게 되는 줄 아셔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비방을 싫어한다면 영적인 교만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교회 앞에서의 직분자의 위치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요구되어 지는 직분자의 인격은 어떤 것이어야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직분 자는 먼저 가정에서 책망을 받을 일이 없어야 된다고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삶의 터전입니다. 가정은 인격의 장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만큼 여러분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에서 인정받는 남편인가? 인정받는 아버지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격이 건강하면 여러분의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믿음의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가정에서 먼저 인정을 받으셔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장로님이 잘해도 그 부인들의 믿음이 없으면 그 장로님은 바른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인들의 역할이 어떤 부분에서는 남자 분들보다도 더 큽니다. 왜냐하면 부인의 말을 안 듣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대의 중대장이 병사들을 모두 모아 놓고 물었습니다. '너희들 중에 부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라' 그랬더니 한 사람만 남고 전부 오른쪽에 섰다고 합니다. 그 중대장이 남은 한 사람에게 묻기를 '너는 왜 부인의 말을 듣지 않느냐?' 라고 하였더니 대답하는 말이 '우리 집사람이 사람들 많은데 가면 안 된다고 하여 혼자 서 있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남자 분들은 부인의 믿음이 참으로 좋아야 합니다. 부인의 기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비방 받지 않도록 믿음의 자녀들로 키워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 실패한 분이 교회에서 본이 되지 못합니다. 자녀 교육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묻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준 기업을 어떻게 하고 왔는가?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하였습니다. 기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최고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부분이 아닙니까? .

두 번째로는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말합니다. 교회의 심부름꾼인 관리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일꾼은 책망을 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의 성품이 원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만하기 위해서는 첫째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고집을 적게 부려야 합니다. 사람은 고집은 있어야 합니다. 옳은 일에는 고집이 있어야 되지만 매사에 고집만 부리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사람, 자기의 고집을 거둘 줄 아는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급히 분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분을 낸다는 것은 그의 속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인격이 비어 있고 그릇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빈 항아리는 조금만 두드려도 소리가 납니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는 두드려도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그의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말고 폭력을 행사하지 말고 그 다음에 물질 관계도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돈 때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직분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으로 모든 것을 풀어 나가야 합니다. 초대 교회 때에 집사들을 세울 때 사도행전 6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그리고 칭찬 듣는 자들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라야 영의 일, 영의 세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의 일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지혜가 있고 신앙의 인격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죄라고 했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언제 나타납니까? 어떤 문제 앞에 섰을 때에 여러분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편안할 때는 모두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교회가 은혜로울 때는 모두 훌륭한 집사님들 같이 보입니다. 여러분, 구정물통을 아십니까? 구정물통을 가만히 두면 어떻습니까? 위의 물이 맑습니다. 그렇지만 발로 한번 툭 차면 속의 것이 올라옵니다. 여러분, 교회의 시험과 환난과 역경이 다가 왔을 때에 그 때 정말로 믿음이 있는 자인지 아닌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믿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귀하게 생각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에 자기가 사울을 단 칼에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부하들이 '사울 왕을 당장 죽입시다.' 라고 했을 때에 다윗은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 손으로 해하지 않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울을 전쟁터에 나가서 죽게 하시고 마침내 다윗을 높여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교회에 모든 일을 할 때에 바로 이런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며 요구되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은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과 온유함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 가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 가서는 다르게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설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은 목숨 걸고 지킬 수 있는 그런 진정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직분을 세울 때에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우리 교회의 튼튼한 기둥들을 많이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공동 의회가 축제 같은 기분으로 행해지고 또 축하해 주고 축복을 받으면서 일꾼들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더 든든하고 계속적으로 확장되어 질 수 있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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