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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감사하라 (골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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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찻길이 자동차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에는 교통지옥이란 표현들을 흔히 씁니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 중 퇴계로 길에 서 있었습니다. 차선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의 행렬은 심한 체증으로 말미암아 좀처럼 빠져나가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른편의 운전기사는 신경질을 부리며 얼굴을 창 밖으로 내밀더니 누군가를 증오하는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웬 놈의 자동차가 이리도 많아서 우리 같은 놈 일당도 못 채우게 하노! 자가용차 반으로 줄여야 해 !” 그런데 우리를 태운 택시 운전기사는 빙긋이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님, 저는 이러한 때 가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사생활하면서 언제 따로 시간 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차는 막힐 거고 신경질 낸다고 차가 빨리 빠질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하고, 손님을 모셨으면 전도도 하지요. 손님, 예수 믿으세요?” 나는 그의 말을 더 듣고자 대답 대신 빙그레 웃음을 보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잇습니다. “저는 요, 운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돈 벌면서 전도하고, 어떤 때는 손님들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요. 그리고 금년에 우리 딸이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예수 믿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한 것뿐이에요.” 여의도의 00교회에 나간다는 그 기사의, 웃음을 머금은 환한 얼굴을 되 뇌이면서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인 하이든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들은 하이든이 아주 어렸을 때 그의 음악적 재능을 인식하고 하이든이 6살 되던 해에 그를 근처의 읍내로 음악훈련을 위하여 보냈습니다. 2년 후에 그는 비엔나에서 소년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 이후 9년 동안 비엔나에 있는 명성 높은 성 스데반 성당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변성기가 찾아온 1749년에 소년 합창단원으로서의 안정된 생활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당에서 해고당했으며, 곧이어 17세에는 비참한 알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개인 교습과 비엔나 세레나데 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하루하루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한다. 나는 또한 나의 작품들을 통하여 나의 사명을 다했으며,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위의 환경은 수시로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이러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시118:28) 영국의 종교가요 유명한 기도의 사람 윌리암 로우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죤 밀러는 말하기를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정하여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100달러씩을 주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첫날, 마을 사람들은 몹시 의아해하면서도 멈칫대며 그 돈을 받아 갔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현관 앞에 나와서 돈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돈 받는 일은 마치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 기간이 끝나고 돈을 나누어주던 사람은 다른 날과는 달리 그냥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우리 돈은 어디 있는 거요?' 왜 오늘은 100달러를 안 주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비와 햇빛과 공기를 무상으로 주는 데도 감사치 않다가 비가 조금만 안 오거나, 많이 와도 사람들은 하나님임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구원의 메시지와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의 머리에 귀한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기념하여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를 잊고 삽니다. 아니 감사는 고사하고 오히려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더 많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가 부족한 우리의 삶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개인, 감사하는 가정만이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26:13) 세계적인 극적가인 버나드 쇼는 모든 책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꼭 하나 갖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것은‘욥기’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욥이 곤욕과 질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데서 욥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의인 욥은 너무도 참혹한 일을 당했습니다.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회식을 할 때에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욥의 소들과 나귀들을 약탈하고 종들을 살해해버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뒤이어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들과 종들을 불살라버린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너무도 황당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또 다른 비보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갑자기 욥의 낙타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다는 것과 회식하던 욥의 자녀들이 태풍으로 집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상상할 수 없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배가 파선되어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이른 로빈슨 크루소는 노트에 두 칸을 그린 후 한 칸에는 좋은 것을 기록하고 다른 칸에는 나쁜 것을 기록했습니다. 크루소가 외로운 섬에 던져진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익사하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인간사회에서 추방된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굶어죽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옷이 없는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옷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한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크루소에게 방어도구가 없는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야수들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할 상대가 없는 것은 나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파선된 배를 해안 가까이에 보내주셔서 그가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크루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열거한 다음 이 세상에는 부정적인 일이든 긍정적인 일이든 너무 비참해서 감사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크루소는 어떤 상황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고 보고 좋은 면에 대해서 감사한 것이다. 욥은 주신 분도 여호와, 취하신 분도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하여 감사한 것입니다. 크루소가 아무리 나쁜 형편 속에서도 장점을 찾는 ‘장점감사’를 드렸다면 욥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원점에서 다시 그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원점감사’를 드렸습니다. ‘장점감사’든 ‘원점감사’든 다 ‘만점감사’다. 요즘처럼 힘든 세상에서 그대는 어떤 감사를 드리며 사는가?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참된 지자(知者)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强者)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존슨은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음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아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감사하는 데서 자라가고 완성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의 영성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은 감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 하는 평가는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 아닌지,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든지 슬픈 일이 있든지, 일이 잘 풀리든지 안 풀리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이요 최고의 믿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축복이 있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에비 로빈슨'이라는 트럭 운전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시신경을 다쳐 시각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낙심하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으며,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저녁만 되면 자기 집 잔디밭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늘 감사기도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신경이 회복되어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3개월만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의 기도가 이와 같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독실한 크리스천인 한 농부가 지방의 유명인사들과 향께 초청을 받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는 으레 하던 대로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한 유명인사가 하는 말이 '허허, 구식이군요, 요즈음 교육받은 사람은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저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늘 감사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농장에도 식사 전에 기도하지 않는 이들이 있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유명 인사는 '아, 그래요, 그것 참 지각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군요.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묻자, 농부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돼지들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감사할 줄 알 때 사람다워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가 신묘막측하기 때문에 만드신 하나님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병상 7계명'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중에 6번째는 믿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고, 7번째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질병으로부터 빨리 회복되기 원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져야 하고 믿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라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독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규정된 시간보다 더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엉터리 비누가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물에 둥둥 뜨는 비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고 이 일로 회사가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최고 책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화부터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프록터'사장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화부터 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묵상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감사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의 영감이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의 영감이 임했습니다. '목욕탕에서는 물에 뜨는 비누가 훨씬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 만들어진 이 비누를 '아이보리'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비누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이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원리는 감사할수록 풍성해지고, 감사할수록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감사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감사함으로 받는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영혼은 성령 충만한 영혼입니다. 바울의 서신을 읽어보면 감사는 성령 충만한 삶의 열매입니다(엡 5:18∼20).

인간의 영혼마다 질이 있습니다. 상품에 질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질이 있습니다. 책에 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마다 질이 다릅니다.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닙니다. 어떤 책은 읽으면 우리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우리 마음이 평화롭고 온유해집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파괴적이 됩니다. 저질의 책은 우리의 영혼을 황폐케 만듭니다. 영혼의 질 가운데 가장 탁월한 영혼은 감사하는 영혼입니다. 감사하는 영혼을 만나면 그 영혼의 질이 탁월함을 느낍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질이 좋은 사람입니다. 질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질도 좋아집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감사로 가득 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사는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의외로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만 해도 하나님은 감동을 받으십니다. 또한 사람들도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의 핵심은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10명의 한센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고침 받은 9명의 한센병자들도 감사하는 마음은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사는 불행을 멈추고 기적을 창조하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고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그래서 스펄전은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한다고 당장 환경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우리 자신이 바뀝니다.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인생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감사의 계절에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됩시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감사하는 영혼의 질은 탁월합니다. 감사하는 영혼이 되어 이 세상을 주님의 향기로 가득 차게 합시다.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 감사하는 삶이 바로 신앙의 생명이요,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생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 믿음은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의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헛된 우상에게 무릎 꿇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대 감사제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개, 소, 당나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격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둘째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는 철학, 정치, 예술, 학문이 살아 숨쉬는 문명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셋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변변한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으나 플라톤으로 인해 위대한 철학자로 부상했습니다.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봉건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쌓이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쌓입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만큼 믿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만큼 기쁨이 생기며, 감사하는 만큼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만큼 능력을 가지게 되고, 감사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복을 주실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오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기를 원하십니다(단 12:3).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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