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공과 승리의 비결 (빌 04:4-7)

첨부 1


사람들은 성공사례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업의 성공사례, 결혼의 성공사례, 목회의 성공사례 등이 보급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흔한 성공사례 들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성공에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공과는 거리가 먼 실패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최근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고 있는 책 중에 성공하는 길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스티븐 코비 교수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으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연구하여 그들이 성공 하게된 과정들을 살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로 하여금 성공하게 만든 일곱 가지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들은 자기 삶을 자기가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의 우선 순위를 살펴 중요한 일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나와 네가 함께 이기는 방법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상대방의 말을 먼저 잘 듣고 다음에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더불어 함께 일하는 팀웍을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째는 균형 잡힌 자기 쇄신을 위하여 심신을 끊임없이 단련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바라고 있는 성도는 이런 성공의 책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지적하는 중요한 부분들을 취하여 실천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에나 성공을 하거나 승리를 하는데는 비결이 있습니다. 아무렇게 나 살면서 성공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 비결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는 정성과 열정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정성과 열의를 다하면 성공하게 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맹자는 말했습니다. 정성껏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하나님)이 도와서 성공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무한한 열정을 품고 있는 일은 거의 성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달란트와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이 달란트와 은사를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공은 땀과 수고를 통해서만 이룩됩니다.

둘째는 신념입니다. 큰 일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은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그 물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신념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아프리카의 성자가 된 것입니다. '나는 안돼' '할 수 없어' '나 같은 게'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인내와 끈기입니다. 끈기는 꾸준히 쉬지 않고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성공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낙심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소망을 이루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롬5:3-4) '칠전 팔기'는 곧 인내와 끈기를 말합니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쳐도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용기를 가집시다. 성공의 비결은 인내와 끈기임을 잊지 맙시다.

넷째는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은 백열전등을 발명하기까지 수 없는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해도 포기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웠을 뿐이다.' 실패 없는 인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극복하면서 성숙 하고, 인간의 역사도 실패를 극복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고자 했던 일마다 실패했던 불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래도 위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내일의 삶을 가꾸어 나가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노예해방을 선언,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링컨은 어느 날, '당신이 위대해진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실패를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정상의 자리에서도 결코 교만하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는 검소했고 소탈함을 보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는 성공의 비결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다섯째는 될 수 있는 대로 꿈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꿈꾸는 데는 수고도 돈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 큰 이상을 하나님의 품으로 가져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또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나폴레옹 힐은 성공한 사람의 특성 17가지를 집약했습니다. (1) 긍정적인 사고방식 (2) 분명한 목표 (3) 봉사하는 마음 (4) 자기훈련 (5) 자신 있는 태도 (6) 신념의 활용 (7) 낙천적인 마음 (8) 솔선수범 (9) 열심과 인내 (10) 주의력집중 (11) 협동 (12) 실패를 배우는 마음 (13) 창조적인 환상 (14) 소신과 결단 (15) 시간과 금전의 관리 (16) 건강과 건전한 정신관리 (17) 국제정세의 파악과 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공한 사람은 이 17가지에 앞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선되지 않고는 그 무엇을 해도 실패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 성공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가 성공을 꿈꾸고 도전합니다. 가끔 티이부이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영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성공하는 삶의 비결이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실패하는 것은 실패의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시중에 나가보면 성공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자세와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커밍 워크라는 사람은 성공의 요인을 4가지로 요약해서 말했습니다. 첫째 머리가 좋아야 한다. 둘째 지식이 좋아야 한다. 셋째 기술이 좋아야 한다. 넷째 태도가 좋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성공적인 삶에 93%이상 결정적인 요인을 주는 것이 바로 태도이라고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 삶의 자세가 우리의 삶을 결정짓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타고나고 지식과 기술은 세상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삶의 태도를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다르릴 수 있습니까?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아무리 지식이 있고 기술이 좋아도 자세와 태도가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성공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에서는 내뜻을 내소원을 이루어내는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건물을 소유하고 얼마의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주님의 뜻을 이루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고 주님의 역사를 이룰때 그것이 바로 성공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자세입니다. 신앙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입니다. 어떤 자세를 갖는가? 이것이 어떤 삶을 사는가? 신앙은 과정이 중요합니다. 좋은 과정이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많은 경우에 삶의 실패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낙심하는 태도와 이웃과의 화평하지 못하는 관계의 어려움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가 되어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기와 어려움 속에 있었지만 그는 성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귀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1. 항상 기뻐하십시오
본문 4절“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여기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여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이 진지하게 ‘기쁨“이란 동의어를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성경에서는 같은 말씀을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요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깊이 명심하기 위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형편은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항상 완전하게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엇습니다. 바울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금 빌립보 교회는 교회분쟁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집사님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집사님이 서로 싸우면서 어려움이 잇었습니다. 그런데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기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건당이 좋지 않아서 기쁨이 사라진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녀들의 대학이나 직장의 진로문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기뻐하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린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인간관계의 상처로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TV를 보고 신문을 보면 우리의 마음을 낙심시키고 우울하게 하는 소식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지난한주간 공부하느라고 총신대기숙사에 들어가 있으면서 신문 티이부이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금요일 집에 와서 좀 새로운 소식이 있는가 하고 신문을 들쳐보고 뉴스를 보아도 온통 비리와 부정과 좋지 않는 일들 소식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주변을 보고 환경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낙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삶의 이런 일은 비단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2천년역사자체가 항상 우리를 어둡게 하고 낙심케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삶이 우리를 낙심시킬지라고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뻐할 수 있는 많은 이유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중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는 생후 4개월이 되면 웃고 6개월이 되면 하루 300번씩 웃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를 양육하면서 그 웃음 때문에 얼마나 행복해합니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여기 바울은 그 이유를 “주안에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이미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안에서 라고 서로 교체하면서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오늘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사탄 안에 있습니다.사탄은 자기 안에 있는 자의 삶에 두려움과 외로움 낙심 염려를 주지만 주님은 자기 안에 있는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땅에서 예수님 믿고 누리는 가장 복이 무엇입니까? 연합의 복입니다.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찾아와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되어진 생명의 연합의 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복되고 좋은 삶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비유를 하시면서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가지인 우리는 본체인 포도나무에만 연합되어 있으면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햇빛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본체에만 연합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본체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내 안에 누가 있습니까? 생명의 주님 때문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저는 그리스도 때문에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봅니다. 요즈음 어떤 취미에 빠져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기쁘게 삽니다. 축구매니아는 축구 때문에 기뻐합니다. 등산매니아는 등산 때문에 기뻐합니다.인터넷매니아는 인터넷 때문에 기뻐합니다. 비록 다른 것이 없거나 불편하여도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내가 지금 환경적으로는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믿음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 있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생명의 주인 만유의 주인이시오 능력이신 주님이 나와함께 있으면 됩니다. 주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든 사람에 대해서 관용하십시오
본문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 두 번째로 우리가 성공하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관용입니다. 관용이란 말은 한단어로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합적인 의미의 단어입니다. ‘양보하는’‘은혜스러운’‘온화한’‘참을성있는’이라고 하는 여러 뜻을 다 포함합니다. 관용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의 권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과 양보를 하는 은혜스로운 삶의 태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라고 합니다.

나를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관용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관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 모든 사람이란 나를 핍박하는 사람,반대하는 사람,공격하는 사람도 포함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셨습니다. 원수까지도 관용했습니다. 바울도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관용했습니다.

여러분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비수를 품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에 비수를 품고 살게 되면 내가 제일 손해입니다. 나를 위해서 빨리 그 비수를 버리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 미움이나 원망이나 분노로 인해서 썩어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용량이 동해바다처럼 넓혀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저런 쓰레기들이 들어와도 결코 요동치지 않습니다. 마음이 좁으면 쉽게 작은 것들 하나로 상처받고 그래서 요동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에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2장 6절 이하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자기를 가장 낮은 자로 여기는 종의 마음인 것입니다. 왜 인간관계가 깨지고 어려운 삶을 살아갑니까? 대부분 우리의 자존심이 문제입니다. 자존심이란 주 밖에 있을때의 나의 엣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나를 높이려고 합니다. 나를 왕으로 대접받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이 젊엇을때 일입니다. 하루는 이웃마을의 친척 아저씨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늦게까지 놀고 저녁까지 맛있게 얻어먹은 그는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에 골목길에 나왓습니다.불빛이 없는 캄캄한 밤에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배웅나왔던 아저씨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고개 숙여 부딪히지 않게”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심결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가다가 골목길의 통나무에 머리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길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머리를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후 벤쟈민 프랭클린은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삶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야 고개를 숙여. 부딪히지 않게”왜 부딪힙니까? 왜 싸웁니까? 왜 마찰이 생기는 것일까요? 고개를 숙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섬기려고 하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접하려고 하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려고 하면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섬김받으려고 하고 대접받으려고 하고 사랑받으려고 하면 상처받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과 삶이 관용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용서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화해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화해하기를 바랍니다. 뒤로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관용의 삶을 말씀하면서 5절 하반절을 보면 ‘주께서 가까우시느니라’고 합니다. 여기 가깝다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가깝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갈 죽음의 순간이 가깝다라고 할 수 있고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재림의 순간이 가깝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이지만 만일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할 때 가장 안타까운 죽음이 무엇일까요? 바로 관용하지 못한 채 죽은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용서하면서 관용하면 살 수 있을까요? 용서를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진정 주님의 용서를 경험하셨습니까?

미국 대륙 서쪽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한 청년이 카드놀이를 하다가 그만 이성을 잃고 권총으로 상대방을 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이 청년은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과거에 성실하게 살았었습니다.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이 청년을 위해서 진정서를 꾸며서 주지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주지사가 감동이 되어서 청년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지사는 사면장을 써서 성직자의 가운을 입고 형무소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청년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을 나는 많이 만났오. 그러나 소용없었어.그러니 조용히 돌아가시오”하고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지사가 말했습니다. “젊은이 내가 가지고 온 것이 있으니 기회를 주시오” 그러자 청년은 “듣기 싫습니다. 당장 돌아가시오”. 결국 주지사를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주지사가 돌아가고 나자 간수가 말을 해주었습니다. “방금 주지사는 사면장을 갖고 당신을 용서하러 왓었소”. 그제서야 청년은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사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살인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습니다” 우리는 한시도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셨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도 남을 용서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일에 기도하십시오
본문 6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염려한다면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는 삶은 성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패배의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염려할까요?

오늘 본문은 이미 믿음의 사람들에게 쓴 성경입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미 빌립보교인들이 염려하면서 살았던 것같습니다. 사실 오늘보다 더 그들은 어려운 삶의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염려하였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염려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혹시 지금 예배드리면서 염려하는 분들이 없습니까? 많은 경우에 염려가 삶의 습관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염려의 견고한 습관을 버리시기 축원합니다. 자식들 등록금 염려하는 부모님들은 없습니까? 세금 낼 것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이 염려하는 이유를 어떤 학자는 ‘부적절감’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적절감이란 어떤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질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돈을 주어야 할 상황인데 돈이 없으면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학생인 경우에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것들 때문에 염려하는 것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어니젤린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란 글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 염려의 40%는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염려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염려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염려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염려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합니다. 염려는 문제해결도 못하고 오히려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위축되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염려가 일어날 때 그것을 나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공부의 염려를 공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돈의 염려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염려를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여기 우리의 부족함과 문제를 염려대신에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 기도하라고 하면서 우선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일,인간관계의 일, 물질의 일,질병의 일, 세상에서 직장을 구하는 일, 결혼의 일, 모든 일들이 염려대신에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저는 모든 일을 기도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말에 ‘시작이 반이다’라고 합니다. 이미 기도하면 그것으로 이미 반은 따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여기 염려의 문제를 말하면서 어떻게 염려의 문제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염려의 문제가 사실은 우리를 기도하게 합니다.염려의 문제로 우리가 더욱 주님 앞에 성숙하게 자라갑니다..바울도 질병의 염려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염려가 있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염려 때문에 기도하였고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청어라는 고기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면 죽고 맙니다. 그래서 어부들은 죽은 청어를 냉동시켜서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렇게 죽은 청어를 냉동시켜서 파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한 청어잡이 어부는 살아있는 청어를 실어와서 팔앗습니다. 살아잇는 청어는 죽은 청어보다 값이 비싸서 더많은 돈을 벌수 있엇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부들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부는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청어를 잡은 뒤에 바다 메기를 몇 마리 넣어가지고 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질문했습니다. “왜 어렵게 잡은 청어를 메기밥이 되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서너마리는 메기밥이 될지 모르지만 나머지 90%의 청어는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우리를 스트레스주고 염려하게 하는 메기같은 요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메기로 인해서 오히려 우리의 삶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될 수 잇습니다. 그 메기같은 사람 메기같은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들을 들으십니다.우리의 간구하는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십니다.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다 읽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먼저 평강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내면에서 자신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용서와 화평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 한해에 나에 대해서 성공하고 타인에 대해서 성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해동안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시는 성공의 삶으로 열매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