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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통찰력은 최고의 전문가를 만든다 (골 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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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은 최고의 전문가를 만든다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도 바울이 옥중(獄中)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갇혀 있는 자가 자유로운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환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두 번째는 물질적인 것이나 육적인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에 초점을 맞춘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세 가지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①환경을 뛰어넘는 기도, ②영적 축복을 추구하는 기도, ③타인을 위한 기도, 이런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수준 높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수준 높은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 기도가 곧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가 곧 통찰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 영역에 임하는 통찰력을 얻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식과 통찰력을 구하자!
본문의 바울의 기도를 세 가지 단계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식의 중요성, 통찰력의 중요성입니다.9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식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반(反)지성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이성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만 됩니다.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정확한 순종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기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가 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하나님의 기대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도 어쩌다가 기도의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상하게 중언부언하고 기도의 힘을 잃어갑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이런 조언을 합니다. ‘흘러 넘치는 성경말씀을 읽으라!’ 하나님 말씀을 읽다 보면 거기에서 우리의 기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적인 보충을 받습니다. 기도는 일종의 기름하고 똑같습니다. 불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기름도 중요하지만 장작이 꼭 필요합니다. 장작이 공급되어야만 기도라는 기름이 지속적으로 탈 수 있습니다. 지식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사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하면 통찰력입니다. 우리에게 성경말씀이라는 계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자체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두컴컴하면 이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iIlumination! 하나님의 조명이 있어야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수백 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덤덤하게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인가 그 말씀이 가슴 깊이 박히고 눈물이 나면서 깨달음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땅을 살아갈 때 필요한 능력은 통찰력이 있는 지식, 또 다른 얘기를 하면 깨달음이 있는 지식입니다.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실 때 깨달음이 있습니다. 깨달음 있는 한 가지 지식이 우리 인생을 뒤집어엎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깨달음을 주시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삶의 영역 가운데 대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통찰력을 주십니다. 월드컵 이후 한국의 프로축구팀, 대학축구팀, 중학교&8228;고등학교축구팀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팀들의 훈련의 초점이 체력강화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같으면 공 갖고 차는 훈련을 많이 했겠지만 요즘은 체력이 강한 선수가 최고의 선수라고 하고 바벨 들고 푸샵하고 10㎞ 20㎞씩 뛰는 일을 많이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까지는 우리가 기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체력에 기반을 둔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체력에 기반을 둔 전략, 조직력도 체력에 기반을 둔 조직력이 되어야만 비로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가 이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까? 히딩크 감독이 바꾸었습니다. 체력이라는 한가지 단어가 이전까지 모든 무게중심을 그쪽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합니다.

대가는 정확한 진단을 합니다. 그래서 한 단어로 집중하게 만듭니다. 말이 복잡하다는 것은 사실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가는 한 단어로 집중하고 또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하나를 풀면 나머지 모든 문제가 다 풀립니다. 왜 대가가 중요합니까? 이런 통찰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통찰력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삼일교회가 한국 교회에 준 통찰력 중의 한 가지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청년’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장년들이 살아야지 교회가 부흥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년이 몇 명이고 장년이 몇 명이냐고…… 하여튼 머리 속에 온통 장년 장년 장년입니다. 주일학교는 염두에도 없습니다. 저희는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살고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청년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한국 교회를 젊게 만들고 능력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가 ‘예배’라는 단어입니다. 지금부터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부흥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두 가지 싸움이 있었습니다. GBS-그룹 바이블 스터디냐, 아니면 PBS-일 대 일 관계냐 그것을 가지고만 논쟁이 벌였지 예배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리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결국 모든 논의의 중심이 예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되느냐에 대한 논쟁이지 예배를 무시하는 세력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 쉬프트입니다.

미래 우리가 한국 교회에 던질 수 있는 단어는 ‘강점’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강점으로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강점으로 일할 때에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강점! strength라는 단어! 그것이 우리를 뒤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입니다. 어떤 것 하나를 붙드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 전체가 다 바뀔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히딩크가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감, 영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월드컵 시작하기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다!!!’ 며칠 전에 그런 얘기했을 때 다 웃었지요? 리더모임 할 때 보니까 안 웃었다고 우기던데 분명히 웃었습니다. 그때 그 웃음은 농후한 비웃음에 가까웠습니다. (성도들 웃음) 지금은 어떻습니까? 다들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우승을 할 것이라고 예견을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기에 나가는 국민들이나 선수들은 우승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16강이 목표인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우승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승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젊은이에게 애정이 많습니다. 제가 젊은이들을 분석해 보니까,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또는 76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살았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정말 한번도 승리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전국민적으로 열광을 하는 승리의 체험이 뭔지를 모릅니다. 승리가 뭔지 모릅니다. 승리가 뭔지를 모릅니다. 우리의 찬양 가운데 ‘이것이 진리야♬’ 라는 찬양이 있는데 이번에 이 젊은이들에게 ‘이것이 승리야’ 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준 것 같습니다.

승리를 체험해야 승리가 뭔지를 압니다. 승리가 뭔지 모르니까 승리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매력 있는 구호 중의 하나가 평등이라는 단어입니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평등은 진리가 아닙니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기회의 평등일 뿐입니다. 사람은 다 같지 않습니다. 생긴 것부터가 같지 않습니다. 체력이 다릅니다. 능력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실 때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다 다르게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그 기회 속에서 승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무조건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답입니다. 평등주의라는 말은 무조건 시기심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시기심을 평등으로 가장하고 있습니다. 잘 보십시오. 우리에게 평등이라는 말은 정말로 그런 고상한 의미의 평등이 아닙니다. 말은 평등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시기심, 질투심이 평등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나올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을 얽어매고 1등 짜리를 죽이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2류 3류들만 뛰어다닙니다. 그러고는 속시원해합니다. 사촌이 뛰어다니면 배가 아프다고 하고……

저는 이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승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패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패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사회가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패배한 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배에 대한 응징이 있어야만, 패배가 무엇인지 깨닫게 만들어야만 사회가 발전됩니다. 패자에 대해서 너무 관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패배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서 전쟁에서의 패배는 무엇입니까?냉철하게 생각해서 전쟁에서의 패배는 죽음입니다. 전쟁의 져 본 민족만이 전쟁의 패배가 무엇인지 압니다.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는 패배는 죽음입니다. 경제에서의 패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파산입니다. 한번 파산 당해 본 사람과 부도 당해 본 사람은 경제적인 punishment가 얼마나 강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경제위기 이후 그 처절한 아픔이 뭔지를 알았지요. 얼마나 위기 생활에 놓이게 되는지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당해 보아야 압니다. 영적인 싸움에서의 패배는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타협해서는 안 되고 죽을 때는 죽어야 되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패배는 처절한 것입니다. 승리를 배워야합니다. 하나님 의지하면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 통찰력을 가지고 매순간마다 승리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지난주간에 연세대 의대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이후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대에 자동차를 연구하는 팀이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이 팀원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우리 팀에서 연구한 것이 세계 최고의 논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같이 연구하는 학생 중에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교수님이 우리를 격려해 주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구나.’ 라고 하면서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비싼 돈 들여 가지고 학생들을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답니다. 이 대학 저 대학가서 다 얘기를 나누면서 ‘진짜 최고지?’ 그때 가서야 믿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고네!’

우리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묘해요. 우리 안에 있는 강점들을 모르고 나가서 보아야만 인정하는 그런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비교적 미국을 안방 드나들듯이 왔다갔다하는 그런 목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자주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의 강점이 무엇인지 미국의 강점이 무엇인지 한국의 약점이 무엇인지 미국의 약점이 무엇인지 압니다. 제가 10년 안에 미국을 능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진짜 이길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 얼마나 멍청한지 아십니까? 돈 계산도 잘 못합니다. 20불 짜리 주고 1불50전 짜리 사면 그것을 계산 못 해 가지고 몇 번을 합니다. 거스름 돈 받으려고 하면 10분 걸립니다. 그런 바보들을 왜 못 이깁니까? 그들에게는 인종차별이라는 원초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동서갈등 정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초적으로 교만합니다. 쥐뿔도 없으면서 머리 속에 교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편견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dynamics, 가슴의 불도 없습니다.

왜 못 이깁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못 이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미국을 10년 안에 능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능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미국하고 원수졌느냐고, 한 맺힌 일이 있느냐고 합니다. 왜 타깃을 미국으로 잡느냐 하면 자기 자신들이 세계에서 1등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등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국이 2등 되면 미국 얘기는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1등하고 경쟁합니다. 1등이라고 하니까 경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찰력을 가지고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있는 강점을 발견하고 우리 안에 있는 강점들, 잠재력을 발견하고 주님 안에서 다시 일어서는 믿음의 축복된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자, 전문가를 키우자!
두 번째, 통찰력을 갖고 난 다음 한 기도가 무엇이냐고 하면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의 영지주의자들, 거짓 선생들은 영적 지식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적 지식이 무엇이냐 하면 삶과는 접목되지 아니한 탁상공론입니다. 밤낮 앉아 가지고 여기에 비밀스러운 지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비한 지식이 있다고 합니다. 속되게 말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주는 지혜는 실제적인 지혜, 구체적인 지혜, 삶을 변화시키는 지혜입니다.
괜히 밥 먹고 할 일 없는 놈들이 쓸 데 없는 논쟁을 벌입니다. 심심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주고받고 주고받고…… 앉아서 그런 일만 합니다. 자기들만 그런 일을 하면 말도 안 합니다. 괜히 멀쩡하게 일하는 사람 불러다가 같이 한번 논쟁해 보자고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이것은 민족 성장의 장애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면 나타나게 되는 특징이 구체성이라니까요! 악한 마귀가 역사하면 역사할수록 나타나는 현상이 뭐냐 하면 추상적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종인지 아닌지는 기도를 들어보면 압니다. 기도가 살아있고 구체적이면 그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잠자고 있는 사람은 알맹이 하나도 없는 건더기 하나도 없는 그런 기도를 합니다. 내용이 없습니다. 악한 마귀가 역사하면 추상화되어 버립니다.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습니다. 어떤 지혜를 구했습니까?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고 구체적인 지혜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9)” 솔로몬이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IQ 150되는 지혜를 주십시오. 머리 잘 돈다는 칭찬을 듣게 해 주세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이 많은 백성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재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백성들을 잘 통치할 수 있는 통치력을 주십시오. 정치력을 주십시오.’ 그런 기도입니다. 만일 학자였다고 하면 연구할 수 있는 연구능력을 주십시오. 학생이라고 하면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그 공부할 내용을 잡게 해 달라는 내용 아닙니까? 목회자라면 설교를 잘 하게 해 주십시오. 목회를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 얘기 아닙니까? 학자라고 하면 학자의 insight를 얻을 수 있는 연구주제를 주십시오. 의사라면 환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 구체적이잖아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이야기입니다.

참된 영적인 능력은 일상생활에 능력을 줍니다. 성령의 능력은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장1절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홀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브살렐이 나옵니다. 브살렐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기름 부은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기름 부은 바 되었더니…… 방언 했다고 나옵니까? 특별히 이상한 짓을 했다고 나옵니까? 아니었습니다. 공교한 일을 연구해서 탁월한 전문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면 전문가가 됩니다. 누구나 다 전문가가 됩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아픔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충만하다는 반푼이들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령충만하다고 하는데 대학은 다 떨어지는 놈들을 만들어 놓고 밥벌이도 못 하는 놈들을 만들어 놓는 것이 성령충만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면 연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남들을 이끌어갑니다. 연약한 자를 섬기는 자로 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수(眞髓)아닙니까?

제가 일전에 부산 고신의대에 갔었습니다. 거기에 친하게 지내는 의사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마취과 선생님이십니다. 그 선생님께 마취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했더니 500페이지 가량 되는 책을 주셨습니다. 보니까 자기도 안 읽었습니다. (성도들 웃음) 제가 앞부분 서론 부분만 읽었는데 거기 보니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취학의 아버지 꼴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에든버러의 제임스 심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마취를 할 수 있을까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에 발견한 것이 클로르포름이라고 합니다. 개구리 마취할 때 우리도 많이 쓰던 것 아닙니까. 저는 이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서 자기 분야의 인사이트를 구하잖아요. 연구분야의 능력을 구하잖아요.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여러분! 특별새벽기도회 때 기도하면서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우리 삶 가운데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더 설교를 잘 하고 성도를 잘 이끌 수 있는 능력, 기술자는 더한 기술을, 학생은 더 잘할 수 있는 공부의 능력, 의사는 더 병자를 잘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구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기도가 구체적이 되어야 하고 기도가 철저하게 되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판판이 깨졌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 안 해서? 하나님 의지 안 해서? 물론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3장19절에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鐵工)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성경은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을 기도 안해서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철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고 하면 칼, 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없으니까 사울 왕과 요나단만 칼을 들고 있고 나머지는 몽둥이 들고 나왔나요? 개싸움 합니까? 몽둥이 들고 가서 싸우니 이길 수가 있습니까? 지금 통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여기에 전문가 없느냐, 철공이 없느냐!’ 그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전문가를 키워내야 합니다. 시대의 해법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기도하고 공부해야지요. 기도하고 연구해야지요. 기도하고 진지하게 살아야 되지요. 기도하고 전문가를 현장에 보내야 합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차범근을 해설 그만하고 감독으로 가야 한다고! 그런데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다. 차범근이 그 정도면 해설 잘 한다고 합니다. 아니, 누가 해설 못 한답니까? 해설 얘기가 아닙니다. 차범근 같은 사람은 해설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감독이 되어서 현장에서 선수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탁월한 사람이 왜 해설을 하고 있습니까? 해설은 신문선과 같은 사람에게 만담 들어도 충분합니다. 가서 선수를 양성해야 합니다. 차범근이나 허정무 같은 사람은 선수 양성을 해야 됩니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위치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한국 축구의 풍토는 계속해서 그것을 경원시하고 1등을 시기&8228;질투하는 그런 사람들이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가다가다 이제 해설자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을 밀어낸 세력들이 결국은 축구를 망쳤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 지금 찍소리도 못하고 있잖아요. 저는 누군지 이름 다 압니다. 그 사람들이 문제라고요. 기술위원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것을 잡아내야 합니다.

잘 보십시오. 지금 아무 말도 못하다가 조금만 문제 생기면 또 벌떼같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할 때 이름을 다 적어 놓아야 합니다. 숭실대의 J 모 교수부터 시작해서 L 씨…… 이런 사람 다 적어 놓았습니다. 분명히 또 나올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또 나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민족의 장애물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전문가를 현장에 보낼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현장에서 생명을 걸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몸이 아프거나 연세가 드신 분들 명심하고 들으십시오. 그냥 죽으면 안됩니다. 그냥 죽으면 안 돼요. 상감청자 기법을 전수하고 죽어야 합니다. 다 전수하고 죽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안타깝습니다. 우리 고려청자의 비취색, 그 아름다운 색깔, 그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왜 전수 안 하고 죽습니까? 화가 안 납니까? 왜 그냥 죽냐고!!! 전수하고 죽어야지요.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영감과 능력, 승리의 기법을 다 전수해야 합니다. 그전에는 죽으면 안됩니다. 죽기 전에 다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 아픈 사람 있습니까? 빨리빨리 전수하십시오. 빨리 전수해야 합니다. 나이 50세 넘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다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저도 목회사역을 통해서 얻었던 영감이 있습니다. 다 전수하고 죽을 것입니다. 새벽의 사람이 되고 부흥의 사람이 되고…… 저기 뒤에 앉아 있는 부교역자들 모두 칼날 같은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시대의 영적 승부사를 만들 것입니다. 변화시켜야 됩니다.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전에는 안 죽을 것입니다. 청년들 이 꼴 놓아두고 못 죽습니다. 변화시키고 죽을 것입니다. 절대로 안 죽습니다. 전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다 전수해야 합니다. 제주선교의 노하우 있습니까? 전수해야 됩니다. 왜 가만히 있습니까? 나중에 뒤에 가서 비판할 것입니까? 그런 이상한 접근을 하지 마십시오. 왜 알면서 가만히 있습니까? 전수해야 합니다. 나누어야 합니다. 풍성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우리 국가의 성장의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파도를 보내 주십니다. 저는 국운상승(國運上昇)의 파도를 보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한국과 일본 월드컵이 아주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독으로 한 것보다 일본과 같이 한 것이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거의 같은 수준의 나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른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을 원할지 모르지만 외국 나가면 이 편이 훨씬 좋습니다. 일본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우리는 아닌 이미지가 있는데 그와 같은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굉장한 것입니다.

또 하나, 외국의 국기(國旗) 중 미국의 국기를 보면 다 미국 것인 줄 압니다. 하도 이상하게 생겨서 금방 압니다. 별 많이 있고 작대기 있는 것 보면 미국 국기…… 일본 국기도 금방 압니다. 워낙 단순해서 금방 압니다. 예전에 세계인들이 우리나라 국기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세계에 있는 사람에게 ‘이 국기 어느 나라?’ 하면 ‘대-한민국!’ 그런다잖아요. 다 안다고 합니다. 엄청난 광고효과 아닙니까? 전세계 방송을 보면 전부 다 태극기 들고 다니는 것이 나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제주선교 티셔츠 가운데에 태극기를 집어넣었습니다. 일본선교를 가거나 대만선교를 갈 때의 최고의 브랜드 파워는 태극기입니다. 그렇지요? 지금 한류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전도에 있어서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없습니다. 국가적인 흥망성쇠에 있어서도 지금 만한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서구 언론이 이탈리아와 경기 끝나고 난 다음에 그랬다고 하잖아요. ‘이탈리아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주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 태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향후 10-20년 동안 우리는 그 역사를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잖아요. 만드는 우리가 더 영광스러운 것 아닙니까? 우리 후손들에게 위대한 역사를 남겨줄 것입니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니고 있는 역사가 아니고 만드는 역사! 그것이 우리의 역사관입니다.

다시금 하나님께서 주신 통찰력을 가지고 일어서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철공이 되어야 합니다. 비단 축구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전 영역 가운데 세계 일류가 되는 그런 꿈을 가지고 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실천하는 하나님의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멋진 인격을 가진 신앙인이 되자!
마지막 세 번째 기도는 이런 승리, 통찰력을 가지고 실천을 해야 된다, 철공이 되어야 한다 이후 세 번째! 승리에는 인격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에 대한 기도입니다. 인격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슨 얘기입니까? 인격의 뒷받침이 되지 않는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발 우리 가운데 선동하는 아이들한테 속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런 CNN에 투표가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경기가 있을 때 심판이 공정했는지 안 했는지 투표를 하는데 우리가 밀린다고 다 가서 그거 클릭하자고 합니다. 밥 먹고 할 일이 없습니까? 가서 잠도 안 자면서 밤새도록 그거 클릭 2002번 했다고 하고 손 떨고…… 뭐 하자는 것입니까? (성도들 웃음)
여러분! 이긴 팀의 아량이 필요합니다.

잘 보십시오. 심판의 판정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긴 팀이 말합니까, 진 팀이 말합니까? 져서 열 받으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거 CNN에서 백날 해 보아야 승부가 바뀌는 것 아닙니다. 그거 아니라고 해서 나가서 싸울 일 있습니까? 우리는 항상 진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승자인데도 우리가 승자인 줄을 모르고 패자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승자는 그럴 때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웃어넘기고 ‘맞아 심판이 공정하지 못했어. 다음에 잘 할 것이야.’ 하면서 속으로 ‘바보들 계속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할 꺼다!’ 하는 마음만 품으면 됩니다. (성도들 웃음) 가서 클릭하면서 손 마비되었다고 깁스하고 오는 것, 그것 아닙니다. 웃어넘겨야 합니다. 자꾸 억울하다고 하면 위로 받으라고 하고…… 그렇게 관대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후배들에게 밀려준 것이 바로 미움입니다. 일본에 대한 미움! 일본에 대해서 괜히 미워합니다. 저는 일본을 미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 정도가 아닙니다. 일본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본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우리가 약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대상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해집니다. 우리 가운데 미움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미움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민족의 장애물입니다. 미움은 파괴하는 데는 힘이 있지만 세우는 데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금 당하는 고난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애 낳자마자 미움부터 심겨 줍니다. 폭탄테러범 되어야 된다고 하고 저 놈을 죽여야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애들이 분노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민족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우리 젊은이들 너무 사랑합니다. 그들 마음속에 미움을 심기면 안됩니다. 미움을 심기면 안됩니다. 그러면 미래가 없습니다. 불행해집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묶을 수 있는 리더십이 나와야 합니다. 얼마나 강합니까?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원래 강한 사람끼리는 라이벌 의식이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하나가 될 것 같습니까? 경쟁합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을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중간에 가서 ‘얘들아, 말 잘 들어-’ 하면서 끌고 가면 됩니다. 형님같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왜 적으로 생각을 합니까? 중국은 적이 아닙니다. 우리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도 적이 아닙니다. 우리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잘 끌고 다니면 원래 곰이 재주 부리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벌고…… 일본 애들이 약삭빠르게 물건 만들면 우리는 팔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의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창의적인 눈, 관용하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면 승리합니다.

오늘 보니까 인격에 대한 모든 견딤, 어려울 때도 참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험악한 상황에서의 전진할 수 있는 그런 것! 수비가 있어도 골인 넣을 수 있는 것이 스타플레이어라고 합니다. 핑계는 누가 댑니까? 패자만이 핑계를 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정으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핑계대서는 안됩니다. 무엇 때문에 안 된다고 얘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혜를 가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프로는 이기는 법을 압니다. 환경에 대한 핑계가 아니라 모든 여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이기는 법을 아는 것이 영적인 프로입니다.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무엇입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잠언 16장32절을 보니까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오래 참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 대한 기대, 용납하는 마음,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저는 이탈리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을 보면서 심판의 판정이 어쩌고저쩌고 페루자에서 안정환을 쫓아낸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느낀 것이 무엇이지요? 우습지요? 별 이상한 놈들 다 봤네? 스파게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얼마 전의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더 웃겼습니다. 전국민이 5박6일 동안 흥분했잖아요. 얼마나 이상했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지요?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는 아무도 우리를 견제 안 했습니다. 우리가 준결승에 올라가고 축구도 잘하다 보면 굉장히 많은 견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가져야 될 태도는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잘 된 것입니다. 뭐 실력이 있습니까?’ ‘어쩌다가 이긴 것이지요.’ 그렇게 겸손하면서 칼을 갈아야 합니다. 그렇지요? ‘너희 골대 두 번 맞췄잖아. 반 점씩이야.’ 하면서 ‘우리는 그냥 골 안에 넣어야지!’ 이렇게 생각을 먹어야 합니다.

또 하나 이제 FIFA에서 결정을 내줄 때 절대 우리나라에게 좋은 결정을 안 내릴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의사결정의 핵심부에 사람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정몽준 FIFA 부회장 같은 사람이 이제는 회장될 수 있는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지금 제일 걱정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 사람 또 아버지처럼 대통령 된다고 나올까봐 제일 걱정이 됩니다. 나오면 또 떨어지고 또 삼류 인생 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안되잖아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 하나 성숙된 인격이 무엇입니까? 기쁨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기쁘다고 했지요. 우리는 세계게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밝은 민족, 긍정적인 민족, 감사를 아는 민족,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아는 민족! 이번에도 스페인의 승부차기 못 넣은 총각 하나있지요. 22번 호아킨인가? 그 사람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괜찮아. 다음에 잘 찰 수 있어! 나중에 다른 나라하고 할 때 꼭 골인 넣어!!!’ (성도들 웃음) 그렇게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기립박수를 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고 질서 있는 민족, 정직한 민족. 좋은 것을 많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축구가지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다른 부분의 보완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리더십뿐만 아니라 팔로우십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많이 깨달았습니다. 히딩크라는 대가가 있습니다. 작품을 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믿고 따라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 팔로우십이 있어야만 열매를 거둡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누군지 아십니까? 리더 세워 놓고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은 리더 세워 놓고 안 따라주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보! 그런 사람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민족의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월드컵을 통해서 훌륭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또 한 가지 팔로우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리더를 믿고 따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줄로 확신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① 통찰력의 중요성!
② 그 통찰력을 가지고 실천해서 철공까지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③ 그리고 인격의 보완이 있어야만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인격이라는 그릇을 갖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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