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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진노 (롬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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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에서부터 로마서의 본론이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본론의 그 첫 마디가 어떤 내용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라는 별로 듣기가 좋지 않은 말씀으로 시작이 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의 첫 마디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시작이 되는 이것은 여기에서 우리의 이전의 처지가 어떠했다는 것을 먼저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받으려면 자신이 어떤 자였던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용서와 사랑의 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도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알고 뉘우치고 고백할 때에 용서와 화해가 있는 것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그냥 덮어 두고서 용서한다는 관용주의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참아보지 못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당하는 것을 참아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죄인들의 죄를 다 멸하시기 위해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그렇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하니까 그저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진노의 하나님, 심판의 두려움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으로는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손주에게 할아버지의 좋고, 인자한 것만 가르쳐 놓으면 상투까지 잡고 흔드는 버릇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데, 하나님을 항상 사랑의 하나님,용서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 하나님은 다 용서하신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하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버릇없는 우리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 가운데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바로된 신앙입니다. 이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공의와 사랑의 두 가지 면으로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의 면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은 '화를 내신다, 분노하신다'는 말이나 같은데, 인간의 표현대로 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보고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보고는 용납하지 못하는 공의와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거룩은 죄를 보고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엄격히 말해서 죄를 지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죄나 죄인이 보이면 영락없이 하나님의 공의, 거룩이 반응하는 것이 진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말합니다.

또 진노라는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일면을 말씀합니다. '무릇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나니'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진노하셔서, 징계하심으로 회개 시켜서 결국에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심이 불신자에게는 무서운 소멸하는 불로서, 믿는 자녀들에게는 징계로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짓을 해도 무감각하고, 반응이 없는 분을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피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가 죄짓지 않도록 하고,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대로 우리 인생을 심판하시니 죄를 지은 우리들을 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의 대신으로 보내 주셔서 죄의 형벌을 받게 하고, 우리에게 있던 죄를 사해 주시고 죄의 형벌을 다 치른 것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찬양을 돌리고, 경배합니다. 부모도 바로된 부모라면 자기 자식들이 바로 되는 것을 원해서 채찍질이라도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떤 강도와 살인 죄로 죽게 된 청년하나가 사형 전에 마지막으로 자기 어머니를 면회 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면회를 갔는데, 그 아들이 보고 싶어서 가까이 오는 어머니에게 세게 뺨을 때리더랍니다. 평생 아들에게 야단 한 번 않았는데 이 어머니는 너무 놀라면서 네가 왜 이러느냐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내가 오늘 이렇게 갇히고 내일이면 죽게되는데 이것이누구 때문인지 아십니까? 어머니가 내가 어릴 때에 옆 집에 가서 놀다가 그 집에 있는 조그만한 빗 하나를 가져와서 보일 때에 그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게 아무런 야단조차도 치지 않았고, 은근히 더 좋은 것을 가져오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보다 더 귀한 물건을 몰래 훔쳐 집으로 가져 왔고, 나중에는 내가 남의 호주머니를 뒤져서 훔친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드리면 어머니는 내게는 돈이 없고,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말씀을 않고, 그것으로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하니 오히려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제는 칼을 들고 강도짓이라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이런 범죄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에 그런 일을 하면 나를 호되게 나무라고, 채찍으로라도 때렸더라면 내가 이런 사람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원망을 하면서 감방으로 사라졌고, 그 뒤에 사형집행이 되었습니다.

거룩이나 두려움이 없는 사랑, 죄를 지어도 징계하지 않는 사랑은 다 거짓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사람에게 임했습니까?

첫째로,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에 대하여 나타났습니다.
둘째로는 모든 불의에 대하여 나타났습니다.

경건치 않음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죄입니다. 1-4계명까지의 하나님께 대한 계명을 어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공연히 대적하고 배반하는 죄를 말합니다. 19-25절 사이에 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경건한 죄목을 말합니다. 불경건의 죄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보이는데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또 불의라고 하는 것은 26-32절 까지의 죄목인데 사람에 대하여 즉, 이웃에 대하여 공격하고 불목하는 도덕적인 죄를 말합니다. 자기 중심의 온갖 더러운 죄로부터 이웃을 해하는 악한 행위까지를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두가지 종류의 죄에 대하여 진노를 하십니다. 이 두가지 죄 안에 모든 죄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언제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십니까?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하셨는데 현재 진행형입니다. 계속해서 하늘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은 진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이유-불경건,불의가 원인입니다. 계속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된대로 죄를 인식을 합니다. 죄를 범하고도 죄에 대하여 느끼는 인식이 사람마다 다른데 이는 그 사람의 자기 된대로 느낌도 다릅니다.

예를 들면, 정조에 대한 죄를 말했을 때에 남자나 여자나 처음에 깨끗한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이 정조관에 대하여 목숨을 주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 사람이 만일 실수하고 나서 정조를 잃었을 때에는 심한 자멸감과 죄책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이제는 전과는 다르게 느낍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습관화되고, 체질화되면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죄 지을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까지 되어 버립니다. 창기가 되고 나면 그것이 쾌락이고, 즐거움이 되어 버립니다.

이 사람에게 정조라는 관념이 무슨 죄책이나 두려움이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느끼든지 못느끼든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죄에 대하여는 계속 진노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회개를 한다해도 자기 된대로, 느낀대로 한다고 하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는 부족하고 잘못된 회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불 꽃 같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회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도 이것으로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가 없는데, 우리들의 양심이라는 것이 병들고, 약하고, 굳어 있어서 죄를 잘 분별 못하고,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느끼지도 못하니 어떻게 죄를 회개하여 거룩함에 나가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계속해서 진노하신다는 말씀이 우리가 이해가 안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죄인들에게 진노를 하신다면 벌을 날마다 내리신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이런 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악행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벌을 받기는 고사하고 계속해서 형통하고 잘되는데, 예수 믿는다는 나는 어떻게 하나만 잘못해도 이렇게 징계가 급하게 오지만... 과연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협박해서 그나마라도 겁이나서 우리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겠지... 하나님의 하늘로 부터 오는 진노가 있다는 말씀은 의심이 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착취하는 악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한데, 하나님은 뭐하시는지, 주무시는지, 또 선한 사람이 복을 받아야 하는데도 오히려 어려움만 있는 세상에서... 믿는다고 주일 지키고, 없는 돈에 연보하고 십일조하고, 아침마다 내 죄를 찾아서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래도 바로 살려고 하는 내게는 형통은 안 오고 더욱 막히고 갑갑한 현실이 첩첩히 쌓이는데, 불신 이웃,악하게 못된 짓을 하고,사는 사람들을 볼 때에 그 죄도 드러남이 없고, 형통해서, 좋은 집이다. 차다, 자식들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사위도, 며느리도 잘 보고, 잘 먹어서 기름이 흐르고...

시편 73편 기자 같이 하마터면 이 일로 인하여 실족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면서 하나님은 역사하시는가?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원망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것인지 진노의 성격을 몰라서 오해한 것입니다.

진노를 사람들의 분노로 보면 안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진노 중에 가장 큰 진노는 악인들이 악을 범하고 싶은대로 그냥 내 버려 두는 것입니다.
24절: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26절: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두셨으니..
28절: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요지는--사람이 욕심나는 대로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게 허용하시는 그것이 버린 자식이요, 그 버린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시편73: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했습니다.

무관심, 내어 버려두는 것, 아무리 그가 악을 행해도 브레이크가 걸리지않고, 악세레이다 만 밟고 가게 된다면 무서운 일입니다. 졸지에.. 망하도록 미끄러운 곳에 내 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는 것 아닙니까?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하고 사고만 치는 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달래기도 하고, 위협도 해도 안됩니다. 매를 들기 까지는 그래도 극도의 진노는 아닙니다. 그러면 하다 하다 안되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하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무관심, 악인들의 세상으로 방치시키는 것은 징계로 때리는 것 보다도 더 무서운 진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신 진노입니다. 사람들의 악의의 찬 분노와는 구별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섭하시고, 가시로 담으로 막으셔서 징계하시고, 고통을 주어서라도 주님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이것이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둘째로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바로 바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진노의 그릇을 채우는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2:5)에는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서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저수지 댐에 물이 조금씩 내어보내면 별 것이 아니지만 그 물을 가득 쌓아서 한 몫에 내 보내면 굉장히 무서운 위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즉각으로 보응하시지 않고, 오늘에는 아무런 벌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까지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이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도 파 묻혀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또 아무도 모르게 범한 죄는 완전 범죄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범한 죄를 드러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가면 자신도 잊어버리지만 또 범죄한 사실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심판하시는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오늘에 징계를 당하는 것이 화요, 무사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또 모르기도 합니다. 자기도 잊었다고해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은밀한 중에 행한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선악간에 행한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이 때에 감추인 죄가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지금도 진노를 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수 없이 잘 되는 사람들, 예수 없이도 마냥 행복한 사람들, 남몰래 나쁜 짓을 아무리 많이 해도 바다에 가라앉은 돌처럼 그 죄는 깊이 있어서 드러나지도 않으니 상관없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 사람들,그러나 이들이 벌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정말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진노를 피할 자가 있습니까? 이 죄에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피할 길을 여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 길,즉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이보다 기쁜 소식, 즐겁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우리가 받을 진노를 누가 대신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지극하시기 때문에 이 진노의 형벌을 누구라도 대신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이 진노의 형벌을 대신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아래로 다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감사를 해야합니다. '주님, 내가 과거에 내 마음대로 예수님을 모르고 살 때에 거기서 나를 영원한 멸망으로 나아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셨음을 감사합니다. 심판의 날까지 끝까지 기다리지 않으시고, 덮어두지 않으시고, 실패를 통해서, 육신의 질병을 통해서, 닥쳐온 가난을 통해서, 일어나는 환난을 도구로 삼아서 나를 기어이 회개 시키시고, 십자가 앞으로 나와서 겸손히 무릎꿇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벌써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복된 자녀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도 잘못이 있으면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일 뿐, 하나님의 진노의 멸망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 벌은 예수님께서 다 받으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직도 믿지 않는 자녀, 형제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아내, 남편, 형제, 자녀, 이웃, 이들이 너무 건강하고 일마다 잘되고 형통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 같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버려 두셨든지, 두고 보자는 것이든지, 심판의 날 까지 덮어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나무 뿌리에 도끼가 놓였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면 사랑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내 버려 두지 마십시요. 기다리지 마십시요. 언제까지 입니까? 차라리 징계로, 가시로 담으로 막아서라도 사랑하는 내 형제, 자녀, 아내와 남편, 이웃을 구원시켜 주십시요.' 그들의 육신이 어려워지더라도 그 영이라도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영원한 진노에서 그들을 건지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눈에 이들이 부러워 보이고, 잘 나 보입니까? 시야를 더 넓게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없는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참으로 가련하다고 느껴집니까? 전도가 안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께서 강팍하고 목이 곧은 나와 여러분도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고 느껴진다면 호소, 간구,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음식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한숨과 기도 뿐 일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요. 진정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무엇보다 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사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고하면 그들도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늘로 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두려워합시다. 그러나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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