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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죄 (롬 0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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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자기 자신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말하는 한 동성애자가 동성애자들을 죄인시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항거한다고 하는 명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한국 교회에서 그동안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주제인 동성애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자각시켰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지금 미국에서는 전 국민의 7%가 동성애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대략 1% 미만의 동성애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사람들마다 가질 수 있는 성적인 취향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서구의 기독교 사회들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생각을 하며 사회적인 제재(制裁)를 가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인 변태(Sexual Perversion) 내지는 정신적인 질환의 하나로 취급하다가 1987년에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도 제외시켰습니다. 즉 동성애를 이성간의 사랑(즉 異性愛)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한 형태로 인정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유럽 국가 및 미국 일부 주에서는 동성애자들간의 결혼까지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서구 국가들에서 동성애는 더 이상 성적 일탈도, 사회적인 범죄도 아니며,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욕구라는 주장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동성애자들도 그들만의 특수한 성적인 취향을 따라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동성애를 정당화시키는 주장의 배후에는 현대의 인본주의적 사상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현대 사상에서는 기존의 모든 질서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초한 성(性) 정치학 이론은 이미 새로운 세대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서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고도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또 가족 제도나 가정을 부인하며 독신으로 살 것을 장려하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동성애는 더 이상 금기시되어야 할 변태 성욕이 아니라 새롭고 자유로운 삶의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21세기는 가정의 붕괴와 더불어 남녀간의 성 정체성의 붕괴의 시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성적인 타락과 혼란의 현상이 오늘날에 비로소 나타난 일이 아니란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나간 이후 인간 사회에는 항상 이런 현상이 있어 왔습니다. 1세기 당시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던 초기에도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사회들에는 성적인 타락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성애가 만연되어 있었던 것인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로마서 1장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동성애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간 인간들의 무지와 무감각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서 논증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인간 사회에 만연한 죄악들에 대해서 고발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의사에게 환자가 찾아 왔을 때 먼저 그 환자의 질병의 원인과 질병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는 먼저 환자에게 그의 질병이 얼마나 심각하며, 그 질병이 어떤 연유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후에 그에게 치료를 위한 방법들을 제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만,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필요함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 처해 있는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고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심히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이나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는 우상 숭배의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간 인간들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들을 신으로 섬기며 그 앞에 절을 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상 숭배 다음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성적인 타락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적인 타락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인간들이 그들의 더러운 정욕대로 행하도록 내어버려 두신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인간들은 서로의 육체에 대해서 욕되게 하는 여러 가지 성적인 이탈과 범죄에 빠져들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타락한 이방인들이 범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적인 범죄가 무어냐 하면 여인들이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또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남자들간에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동성애에 대해서 옹호하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 정상적인 성적 취향이라고 말합니다만, 성경은 여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와 남자가 서로를 성적인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삼는 동성애는 순리를 역리로 바꾸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성들간에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과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질서에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이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서 말하는 입장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동성애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그것이 명백한 죄악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전근대적이며 완고한 종교인들이라고 비판을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성경적인 입장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논리 중의 하나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종교가 어떻게 동성애자들과 같은 소수 집단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멸시함으로써 그들에게 고통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간에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그런 이탈된 행위를 이탈 행위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의 정상적인 행위로 인정해 주고 변호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주장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한 탓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고전13:6)이라는 사랑의 정의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모두 다 불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혹 누가 불의한 삶이나 진리에서 어긋난 행위 가운데 있다면 그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혹시 누가 불의함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를 멸시하거나 정죄하는 자세로 불의를 지적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불의 가운데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며 우리 자신도 그런 불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그들의 잘못된 삶을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치료를 위한 첫 단계이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성경의 진리들이 공격을 받는 시대입니다.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한 것을 사람들은 삶의 지향성이며 삶의 스타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정욕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살고자 하며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행동들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회개를 요구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고루하고 전근대적인 종교인들이라고 공격을 하는 시대가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시대에 못지 않게 성적으로 타락한 초대 교회의 상황에서도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따라 살았으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타락한 이방 사회들을 변화시키며 많은 사람들을 불의한 삶으로부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급격하게 가치관이 변화하며 기존 질서들이 붕괴되는 이 시대를 살면서도 이 병든 사회와 병든 이웃들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키며 치유할 수 있음을 믿고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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