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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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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대의 형벌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렸다가 떨어뜨리고 다시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낡은 교리와 제도 속에 무의미한 예배를 계속함으로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복음이 초라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전락하게 하므로 서 더 이상 젊은이들의 매력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젊은이와 지성인들을 떠나 보내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창공의 제왕 독수리가 자신이 병아리인줄로 알고 거름무더기나 파헤치듯이, 동물원에 길들여진 야성을 잃어버린 호랑이처럼 한국교회는 도전정신과 야성을 상실한 체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초대교회의 도전정신과 원래의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은 그렇게 무기력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맛잃은 곳에 맛을 회복케하는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왜 이런 무기력한 모습으로 복음이 전락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다른 복음』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I. 다른 복음은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투쟁적인 갈라디아서의 초반부입니다. 이 편지를 쓰게된 동기는 바울이 세운 교회에 이단들이 침투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말들로서 교인들을 미혹하고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특히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 삼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다른 편지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편지의 형식은 처음 서두에는 바는 사람에 대한 인사와 격려가 있지만 본 서에는 처음부터 논쟁적으로 사도직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마치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직이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단언하고 곧 바로 『다른 복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복음이라고 번역된 『헤테론 유앙겔리온』이란 동류 중에 다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다른 복음이란 곧 이단사상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의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었으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율법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의 회귀를 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다른 복음이 교회를 위태롭게 합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할례를 강요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로 구원을 얻지마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그럴듯하게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사도직의 정통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교회는 혼란에 빠졌고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전에 예천 비행장에서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연료에 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비행기는 기름으로 가는 것이지 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100%의 복음으로 운영되는 것이지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면 순도가 떨어져서 교회가 무기력해지고 마침내는 추락하고 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멈추고 현상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복음의 순도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요? 다른 복음이 판을 치니 교회의 위신과 권위가 추락하고 그 여파로 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너무 세속적이 되었고, 너무 물량적이 되었고, 너무 비만해진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원래의 복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II. 바울이 말하는 복음

복음이란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기쁜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사회에 군 필자에게 부여하는 가산 점을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여성계에서 여성차별법이라고해서 헌법소원을 해서 위헌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산점 제도가 없어지자 남성들이 공무원 시험에서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단적으로 이 문제만 놓고 볼 때 여성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남성들에게는 나쁜 소식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란 없습니다. 이 사람이 좋으면 저 사람은 나쁜 것입니다. 재벌을 해체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면 재벌에게는 재앙이요, 중소기업에게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만민에게 기쁜 소식은 예수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소식은 구원소식이요 죄로부터의 해방의 소식을 말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죄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은 모든 자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 십자가요, 둘째가 부활이요, 셋째가 이신칭의입니다. 십자가가 왜 중요하냐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된 곳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족된 곳이기 때문이며,사탄의 왕국을 정복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사탄의 최대 무기인 죽음을 정복한 사건이고, 성도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III. 왜 다른 복음은 안되는가?

첫째-다른 복음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말씀을 전하고 권능을 행하자 바울의 흉내를 내서 마술 하는 유대인들과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귀신들린 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였으나 오히려 망신만 당하고 도망을 한 사건이 나옵니다. 원래 복음은 능력 그 자체입니다. 복음을 요약하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시라는 말입니다. 말씀은 능력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각색 병자를 낳게 했습니다. 믿음과 기도가 뒷받침된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능력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복음은 꿈을 줍니다. 초대 교회와 2000년 교회사에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들이 왜 순교했겠습니까?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보여서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웃고 죽었을까요?그렇지 않습니다. 보좌 우편에서 두 손을 들고 그를 맞이하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그들은 웃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발견하면 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화를 발견한 농부와 같습니다.

셋째-복음은 맛을 돌려줍니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가치관과 방향감각을 잃고 마약과 술, 쾌락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에게는 꿈이 없고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없습니다. 인간 쓰레기 같은 사람들에게라도 복음이 들려지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마약을 하고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두려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그들에게 들어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사람이며, 김익두목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최근에 지존파의 두목 김현양도 마지막에는 예수를 믿고 평안 가운데 사형을 당했습니다.

넷째-복음은 힘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에 가면 『용제 백락준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무당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부친이 무당 생활을 할 때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자손들 고생시키지 말고 예수나 믿으시오』 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 예수를 믿게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무기력해지고 나 자신이 무기력해져 있다면 비본질적인 복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 않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복음을 회복하여 여러분에게 찬란한 꿈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잃었던 맛을 돌려 받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여 역동적이며 활기찬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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