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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합시다 (살후 0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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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어떤 친절이나 호의에 대한 감사는 한번이나 두 번으로 끝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한번이나 두 번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 감사는 한시적 감사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지속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저는 서양 사람들의 생활을 참 부러워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검소한 생활, 절약하는 생활, 아껴 쓰는 생활, 서로 사랑하고 도와가면서 사는 생활은 참 본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제가 못 마땅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동물 사랑하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도대체 이 사람들은 개를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개를 위하느냐? 노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개는 배신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얼마나 뼈아픈 말입니까?

사람은 은혜를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개만도 못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고마운 줄을 모르고 배신 배반하기가 일수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은혜를 모릅니다.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저 시종일관 불만 원망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를 원망하고 자살해 버립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모든 불행은 불만과 원망과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기 자신을 작게 여기고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현재에 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여 감사하고, 앞에 주님의 축복의 약속을 멀리 바라보면서 또 한번 감사하고 영원히 영원히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감사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1. 첫째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합니다.
14절 말씀을 보니까 <이를 인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 가지 부름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②다른 하나는 사탄의 부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까닭은! 구원하시고, 사랑해 주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그러나 사탄의 부름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빨리 대답을 해야 합니다 만은 사탄의 부름에는 대답하면 안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불러주신 사건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곁에 있게 해 주셨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홀로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불어 살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고, 우정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은 만났다가 해어지고 곁에 있다가 멀리 떠나도록 돼 있습니다. 영원히 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곁으로 부르셔서 하나님 곁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곁에 있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그와 함께 어떤 교제를 나누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곁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감사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2. 둘째는 영광을 얻게 해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14절 끝을 보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영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하나는 현세에서 받는 영광이고, ②다른 하나는 내세에서 받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나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덕택에 받게 되는 영광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은 오늘에다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칭찬과 영광이 없더라도, 앞으로 받게 될 칭찬과 영광 때문에 감사하고 그리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18절에서 <현재에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나는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영광은 피상적인 영광입니다, 세상적인 영광은 한시적 영광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시들어 버리는 영광이 세상적인 영광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때문에 얻는 영광과 감사는 영원한 것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어떤 분이 50년 동안 반신불수가 돼서 병석에서 꼼짝 못하고 누어있는 어떤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위로하러 가는 사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나옵니다. 소망을 가지고 나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져서 대통령까지 알게 됐습니다. 그녀의 50회 생일이 되던 날 뜻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그녀의 생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초청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왔습니다. 그리고 상원의원 하원의원 가운데 뜻 있는 사람들을 초청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이런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이처럼 저를 축하하려 오신 대통령 각하, 그리고 귀빈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50년 동안 병석에 누었었기 때문에 결혼도 못했습니다. 병을 남편 삼아 오늘까지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만일 건강해서 자유롭게 살았다면 건강을 핑계삼아 많은 죄를 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짓지 안고 살은 것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지 안아요 두 눈이 건강하기 때문에 눈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두 다리가 건강해서 두 다리가 걸어다니며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손이 건강해서 손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목구멍이 건강해서 목구멍으로 넘겨서 안될 것을 넘기느라고 죄짓는 일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나는 50년 동안 그런 죄를 범하지 안은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장차 천국에서 있을 제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인사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감사야말로 때묻지 안은 감사, 순결한 백합꽃 같은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지나간 일 보다는 다가올 일을 생각하면서 감사를 하십시다. 지난날의 패배, 지난날의 아픔, 지난날의 그 어려웠던 일들, 지난날의 지옥, 지난날의 반감, 지난날의 상처, 지난날의 원한! 이런 것은 다 잃어버리고 장차 받을 영광과 소망 때문에 기뻐하고 그리고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셋째는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16절 말씀 보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랬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증오의 신이라든지, 하나님이 복수의 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어떤 쪽에다가 앵글을 대고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친구 두 사람이 장미꽃 밭을 찾아가서 장미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①한 친구가 장미꽃을 메 만지다가 가시에 찔렸습니다. 피기 뚝뚝 떨어집니다. 불평을 합니다. <무슨 놈의 꽃이 가시뿐이남, 장미는 틀렸단 말이야! 이건 할퀸단 말아야> 그리고 불평을 합니다. ②그러나 한 사람은 장미꽃을 드려다 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습니다. 역시 꽃 중의 꽃이야, 꽃 중의 여왕이야! 아 ! 아름답단 말이야 가시 없는 장미가 무슨 의미가 있담, 꽃과 가시 얼마나 멋진 조화인가 예찬을 마지않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속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습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평안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안 좋은 쪽만 드려다 보면 감사가 나올 턱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23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 동기가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같습니다. ①하나는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독생자까지, ②또 하나는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리고 늘 풍성한 사랑입니다. ③그리고 자상한 사랑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구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바울은 감사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4. 넷째는 영원한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16절 끝을 보면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갖는 소망은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적인 것은 필요 조건일 뿐입니다. 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이 세상 것은 잠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행복도 잠깐, 기쁨도 잠깐, 성공도 잠깐, 승진도 잠깐, 평화도 잠깐, 찰라 찰라 짤칵 짤칵 짤칵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좋은 것입니다. 이 영원한 나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2) 둘째 영원한 나라는 살기가 좋은 곳이기 때문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죄도 없고, 질병도 없고, 미움도 없고, 다툼도 없고, 전쟁도 없는 나라 인간이 수 천년 동안 꿈꾸어 오던 파라다이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거기가 영원한 소망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주시고 소망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3) 셋째 주님과 거기서 영원히 살기 때문에 소망을 두어야합니다.
찬송작가 헌팅톤은 222장에 이렇게 읊었습니다.
.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주님이 그 집에 계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거기서 영원히 산다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가까이 가면은 스텐퍼드대학(Stanfod University)라고 하는 명문대학이 있습니다. 오랜 예기입니다 마는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두 남학생이 학비를 벌기 위하여 의논을 하다가 그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인 파데 레프스키(Ignacy Paderewski)라고 하는 사람을 초청을 해서 음악회를 열자 그러면 돈을 벌 것 같다.
그래서 그 폴란드로 편지를 보내서 매니저 약속하기를 <스텐퍼드 대학에 가겠다. 대신 2000 달러를 달라>, 주겠다. 그래 열심히 음악회를 준비 해 가지고 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해 다가 음악회를 열었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표를 다 판 것을 모으니까 1600불 밖에 안돼요 밑졌습니다. 두 학생이<1600불을 드리면서, 400불은 이 다음에 우리가 돈 벌어 가지고 갚겠다>고 차용증서 써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두 학생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파데 레프스키>가 그들 보는 앞에서 400 불 짜리 차용 증서를 쭉쭉 찢어 버리고, 1600불을 돌려주면서 이 돈 가지고 경비 갚고, 그리고 둘이 나누어서 쓰라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두 학생은 너무 감사해서 일평생 그분의 감사를 잊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든 파데 레프스키가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끝난직후라 폴란드가 경제 공황으로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대통령은 미국에 식량 원조를 청하기로 결정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에서 식량이 막 쏟아져 들어 왔어요. 구호물자와 원조 식량이 들어 왔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폴란드 대통령이 위기를 모면하게 됐습니다. 이를 감사하기 위해서 때를 노리고 있는데, 그때 불란서 파리를 방문하고 있는 미국의 제 31대 대통령인 후버(Herbert Clark Hoover)가 파리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좇아갔습니다. 정중하게 감사를 했습니다. <참 감사했다고, 당신이 보내준 식량 때문에 우리나라가 죽지 않고 살게 됐다고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겠느냐>고, 그랬더니 후버 대통령이 하는 말이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저는 신세를 갚았을 뿐입니다>. <아니 신세라니요!> 대통령께서는 스텐퍼드대학 음악회에 오셔서 연주해 주실 때에 은혜 입은 학생이 바로 나였습니다.

여러분 이건 상당히 감동적인 예기고 찡하는 예기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각박해 진다고 하더라도 감사는 잊지 말고 사십시다. 이게 무슨 예기입니까? 정과정이 만난 예기, 감사와 감사가 만난 예기, 그리고 사랑과 사랑이 만난 예기,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과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만난 예기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를 할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살아가십시다.
감사는 내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감사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는 더군다나 나에게 축복을 가져다가 줍니다.
여러분 더 많이 감사하고, 감사할 사건이 많아지고, 복 받고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흥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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