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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0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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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씀하는 것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원하는 것은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지식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혹은 수단으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만약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만 꼭 붙잡고 살았다면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 세상에서 괴롭게 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 뱀에게 붙잡혀서 뱀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불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은 믿음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면 행복하게 살게 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불행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불행은 지옥에 가서 죄의 형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좇아서 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사람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보지 못합니다. 또한 지식의 눈으로는 지식의 세계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지식이 발전하더라도 영의 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요즘에 영의 세계를 다루는 심리적인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분명히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영혼과 대화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화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는 분명히 마귀의 영계와 하나님의 영계가 있습니다. 마귀의 영계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에게 심리적인 괴로움과 삶의 괴로움과 정신적인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평안함과 생명을 주십니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서 8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21세기를 주도하는 교회가 되자”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성령이외에 지식이나 돈과 같은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저녁부터 충남제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그 교회는 60% 이상이 대졸 이상이며 박사만 200명이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그 날 눈이 엄청나게 내렸습니다. 만약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다면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집회를 인도하러 가면서 교인이 얼마나 오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이 험해서 주일 낮예배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2300석인 큰 예배당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지식도 있고 생활도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을 다해서 신앙생활 할까요? 그것은 성령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육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방법은 성령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육체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이에 관하여 야고보서 1장 15절은 이와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 말 중에 죽겠다고 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바빠서 죽겠다, 너무 한가해서 죽겠다, 너무 배고파서 죽겠다 심지어 너무 편안해서 죽겠다고 까지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러한 죽음을 가리켜서 첫째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은 육체의 일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육체의 일은 음행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잘 갖는 일 중에서 첫 번째가 음행을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음행을 잘 조절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잘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범죄를 야기했습니다. 전에는 천주교회의 신부와 수녀를 대단히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장가도 시집도 안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아원을 제일 먼저 세운 곳이 천주교인데 그 이유가 신부와 수녀 사이의 불륜관계에서 생긴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말을 듣고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중요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육체의 일은 더럽습니다.
육체의 어느 것이 더럽습니까? 이에 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
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3) 육체의 일은 호색입니다.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앉기만 하면 음담패설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4) 육체의 일은 우상숭배입니다.
5) 육체의 일은 술수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6) 육체의 일은 원수를 맺는 것입니다.
7) 육체의 일은 분쟁하는 것입니다.
8) 육체의 일은 시기하는 것입니다.
9) 육체의 일은 분을 내는 것입니다.
10) 육체의 일은 당을 짓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왜 그렇게 편이 많은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경상도, 전라도 심지어 충청도 편까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지연뿐만 아니라 학연 때문에 한국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도 똑같은 짓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끼리’하면서 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끼리’가 아니라 ‘주와 함께’ 해야 합니다.

11) 육체의 일은 분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저 뜻이 조금만 안 맞으면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합쳐지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누는 일을 하지말고 뭉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난번 장로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감리 교회가 사는 길은 대동단결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사는 길은 대동단결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왜냐하면 해방 후 38선이 그어질 때 그처럼 나누어지는 것을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한 피를 가진 백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 17:21)

12) 육체의 일은 이단입니다.
13) 육체의 일은 투기입니다.
14) 육체의 일은 술취함입니다.
15) 육체의 일은 방탕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8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이와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둘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장 8-9절에서 이와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얼만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이에 관하여 아홉 가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2) 성령의 열매는 희락입니다.
기독교인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하고 증거 하였습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시간과 구주 예수를 의지하는 것과 설교를 듣는 시간과 찬송을 하는 시간과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 기쁜 일이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의 열매는 화평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세 가지 화평이 있어야 합니다.
①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감옥에 있어도 매를 맞아도 파선을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②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육체가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사지백체(四肢百體), 오장육부(五臟六腑)가 건강해서 무엇을 하더라도 힘이 들지 않기 바랍니다.

③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평화가 절실할 때가 이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잘 먹고 잘살면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휴전선에 가로 막혀서 오고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2000년에 김 대통령이 이북에 가서 김정일씨를 만났는데, 이제 2001년에 김정일씨가 서울에 와서 김 대통령을 만난다면 극적인 역사가 또 한 번 일어나서 서로 자주 오고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번에 통일 선언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창하였습니다. “자유왕래, 자유교류, 자유교환이 이루어져야 우리 한국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주의 이름으로 오고가는 것을 환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4)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사람은 참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19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5) 성령의 열매는 자비입니다.
6) 성령의 열매는 양선입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속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좀 사납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독이 되자 사나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관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이혼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기독교인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7) 성령의 열매는 충성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8) 성령의 열매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솜방망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솜은 아무리 주먹질해도 주먹이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부드러워서 상대방을 아프지 않게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라는 말씀처럼 땅을 얻는 복을 받습니다.

9) 성령의 열매는 절제입니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self-control 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마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살아감으로써 21세기를 주도해 나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5-09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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