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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부르심 (고전 0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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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과장되게 자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4:6,18-19/5:2).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는 인간의 자랑이 기어들 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 사회적 지위, 어떤 일에 대한 업적, 유산, 재산 등에는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신약성경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신자들이 몇몇 등장하기도 하지만 신약성경에 언급된 성도들이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으 회심자들을 향해 한 말은 결코 아첨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6:9-11)

&983729; 바울은 그들의 과거 상태를 상기시킵니다(1:26)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대부분은 지혜도 없었고 능하지도 못했으며 문벌도 좋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람 됨됨이 때문에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보잘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주로 잔악했던 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배해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65378;자기 의&65379;(self-righteousness)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울 역시 자기의 의를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은ㄹ 바울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저지른 밑바닥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손을 내밀어서 구원하시지 못할 정도로 악한 죄인이란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헌신적인 목사인 머리 맥체인(R. Murray McCheyne)이 어느날 한 부인에게 복음 전도용 책자를 하나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매우 화를 내면서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부인을 향해 맥체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985172;부인, 심판의 날이 다가옵니다. 그날이 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985173;

&983730;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이유를 상기시킵니다(1:27-29)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세상에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시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기 위해 세상의 미련한 자들, 약한 자들, 천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 없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가문, 사회적 지위, 재산, 권력 및 명예를 흠모합니다. 그러나 이 중에 어느 것도 영생을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그 멧세지는 권력과 능력을 자랑하는 이 세상 사람들을 철저히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지혜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시는지알지 못합니다. 또 이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흉내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 만들며, 하나님의 “약한 것”이 세상의 강한 것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복음의 능력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변화시킵니다. 교회 역사는 이러한 예(例)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경우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법률가와 심리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불량 청소년들이 착실한 학생으로, 그리고 유능한 시민으로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이혼 법정까지 부부가 다시 원만한 부부 관계를 회복하고 가정을 복구시키는 것, 등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철학이나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의 체계에 복음의 미련한 것과 연약한 것을 계시하실까요?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의 이 설명이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영광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진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사람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3:21). 만일 우리가 사람을 자랑한다면(그것이 비록 베드로, 바울, 아볼로 같은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이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교회 내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조장하는 요인은 바로 교만이라는 이 죄된 행동입니다.

&98373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했던 모든 것을 상기킵니다(1:30-3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으너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데, 왜 서로 경쟁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까? 주께서 모든 일을 이미 이루어 놓지 않으셨습니까?
“(고전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 (이 구절은 렘9:24을 인용한 것이며 고후 10:17에서 다시 인용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축복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혜이시요(골2:3). 우리의 의로움이시며(고후5:21). 우리의 거룩함이시고(요17:19). 우리의 구속함이십니다(롬3:24).
사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소유하게 된 의로움, 성화, 그리고 구속함을 수단으로 하여 당신의 지혜를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각각의 신학적ㄹ 용어들은 성도들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의롭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성화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택정함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속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힘입어 완전한 구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세가지 신학적 용어는 구원을 시간적 관점에서 설명해 줍니다. 과거에 우리는 이미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았습니다(의로움). 현재 우리는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고 있습니다(성화). 미래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구원받을 것입니다(구속). 이 모든 은총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소유한 것 중에서 여러분들이 소유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드로가 소유한 것이 여러분들이 소유보다 더 많습니까?(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부여하신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마태복음16장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신 것)
우리는 주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영적 지도자들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본 장(章)을 통해서 고린도인들이 저지른 잘못된 교회 내에 문제가 생기게 만든 오류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적 기준을 좇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주님과의 놀라운 영적 교제에로, 또 피차간의 사랑의 교제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시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우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알하기 보다는 그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했고 인간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는 타락한 교회요, 분열된 교회요, 망신거리가 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 자신의 교회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처럼 우리도 거룩해지라는 부름을 받았고, 교제에로 부름을 받았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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