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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 없이 삽시다 (딤후 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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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믿음의 아들인 사랑하 는 디모데에게 쓴 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을 스스로 내다보면서 믿음의 아들인 젊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횃불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편에서 보면 그 책임이 얼 마나 중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거짓 없는 신실한 믿음을 이어받은 훌륭한 청년이 었습니다. 더구나 디모데는 일찍이 주님의 위대한 종, 사도 바울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신앙적 인 영향을 깊이 받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기도 중에 디모데를 생각하였고 친아들이나 다를 바 없이 사랑했습니다. 이제 청년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손에서 복음의 횃불을 이어받아 따르는 사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면으로 말하게 되면 디모데에게 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 리는 그 당시의 디모데의 연령을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마는 그가 퍽 젊은 사람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디모데전서 4:12절에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이 지도자가 되는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더구나 디모데는 몸이 퍽 약해서 병이 자주 났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 보면 이 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고 말했습 니다.

이처럼 바울이 디모데의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습니다. 요사이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 술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물론 술을 금하는 것은 선교 사가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한국이 술 때문에 개인이 망하고, 사업이 망하고, 사회가 어 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술을 하지 않게 한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이 전통을 지켜서 잘못 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술을 좀 하게 되면 마음에 걸려서 하는 말이 아니,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라 고 했는데 내가 술 조금 하는 게 무슨 잘못인가? 라고 말합니다. 물론 디모데처럼 몸이 약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마셔야 비위가 돌아온다면 포도주 마시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술을 드실 때마다 감사 기도 드리고 드시기 바랍니다. 저는 술좌석에는 참례한 경우가 없습니다마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옆 좌석에 술을 드 시는 분이 계실 때가 있는데 보면 술을 마시게 해서 감사합니다. 이 술을 마시고 힘을 얻어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 드린 다음에 술 드시는 분을 보지 못해서 그럽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그 성격이 퍽 수줍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과업이 맡겨질 때마 다 퍽 주저하곤 했습니다. 성격이 수줍은 것은 지도자가 되는데는 약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 격려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사도 바울이 편지한 것을 보아도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고 특별히 부탁을 했습니다. (고전 6:10) 이처럼 나이가 젊고, 몸이 약하고, 성격이 수줍은 디모데를 불러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중한 책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우리도 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 불안해하는 사람 도 있습니다.

허버트 웰치 주교님은 80회 생신 때 어떤 사람이 주교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영혼 이 항상 고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웰치 주교님의 대답이 나이가 들어 갈수록 모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저녁 햇빛에 더 밝혀 보여지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 점점 쉬 워졌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지나친 욕심이 사라질 때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 생 활 주변에는 질병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국립 중앙 의료원에서 암에 대한 보 고를 했는데, 갈 병원에서 치료받은 2만 5천명의 암환자를 연령별로 조사해 본 결과 남자의 경 우 암환자가 55세에서부터 65세가 가장 많고, 여자의 경우 45세에서부터 55세의 연령에 해당하 는 사람이 암환자가 가장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요사이 중년층에서는 몸이 조금 이상하기만 해도 이거 암이 아닌가? 하며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냐 하면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까 두려워서입니다. 더구나 우리 마음의 갈등이 내적인 평화를 파괴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높은 차원과 낮은 차원의 본성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육신과 영혼의 갈등,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주 악하면 어느 정도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삶의 질(質)을 아주 낮추어 그저 동물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내적인 갈등 같 은 것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버지를 떠난 아들 역시 그런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 버지 집을 그리게 된 그는 돼지 먹이통 속에서 그의 모든 행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그의 젊은 시절에 육적인 감각에 탐닉하여 평화와 만족을 얻어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실패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당신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평화를 해치는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불화 때문입니다. 다 른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한 우리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했 는데 우리가 이 기도를 늘 드리면서도 이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 의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5절이하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 니라. 그리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 을 지키시리라 했습니다. 지난 주간에 온 국민이 마할 수 없는 지탄을 받아 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민 앞에 그 동 안 저지른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며 그의 재산을 국가에 반납하고 말썽 많던(? ) 연희궁 을 떠났습니다. 그 동안 그분의 잘못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습니까? 자녀 잃 은 부모, 부모 잃은 자녀, 재산 잃은 사람, 직장 빼앗긴 사람,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 등 그 피 해자는 이루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학생들이 전두환 씨 내외를 구속하라 고 외치며 데모할 때 나는 못해도 너희들이 잘한다 고 속으로 박수를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잘못했다고 사과한 지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어도 잘못했다면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개인이 용서가 없 을 때 마음의 평화가 없고 사회의 용서가 없을 때 사회의 안정이 없습니다. 서로 용서하며 삽시 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걱정이 있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적정과 염려는 우리 삶의 생명력과 기쁨을 빼앗아 버립니다. 염려는 사람에게 질병을 초래합니다. 왜 염려합니까?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명론자는 아닙니다마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우리 힘으로 도저히 바꿔 놓을 수 없는 환 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날씨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한 보름 동안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예배당 내부 공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 다고 불평하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받아 드릴 마음의 준비 가 있어야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불평하지 말고 방을 데워 가면서 공사를 해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조건 때문에 염려하고 불평하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근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능력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다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 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의 정원에 세상의 모든 화초를 다 심어 놓으시지 않았 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왜 자기 정원에는 평범한 채송화만 심어 주시고 다른 사람의 정 원에는 예쁜 장미꽃을 심어 주셨는지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정원에 심어진 채송 화를 가꾸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정원의 장미꽃을 시기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의 정원은 결코 아 름다운 모습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 한 일을 남보다 더 잘 해 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장점이 우리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 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두려워합니까? 한 마디로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한마음 속에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화가 깃들이고 능력이 솟아납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제일 큰 두려움 가운데 하나는 미래에 대 한 불안입니다. 오늘까지는 괜찮았는데 내일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아니할까? 이 달까지는 그럭저럭 지냈는 데 다음 달에 어려움이 부딪치지 않을까? 금년은 이럭저럭 지냈는데 내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우리는 있지도 않을 재앙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만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 니다.

여러분, 미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허락하여 주 신 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큰 축복을 현명하게 사용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미 래를 위하여 준비해야만 합니다. 내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 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인간만이 미래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진다고 하 는 것은 사람들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복이 잘못 사용되면 이 때문에 인간에게는 두려움과 염려가 생기게 됩니 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비극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을 바로 사용하면 축복이 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비극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쓴 마지막 편지에서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 게 하노니…. 이 말은 우리가 지닌 모든 힘과 능력을 사용하여 진정한 인간이 되라고 하는 말입 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 며 최선을 다할 때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능력을 얻을 수가 있다는 뜻으로 바울이 말한 것입니 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신하 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주 훌륭한 근본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는 우리 생활 주변의 일상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우리의 생활에 적용될 때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헨리 포드라는 분은 그가 사는 마을에 세워진 높은 시계탑 밑에 가끔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시계가 정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 뒤를 따라 작은 소리의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주 님, 이 시간도 주님께서 인도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능력으로 실족치 않게 하옵소서 하는 간 단한 노래였습니다. 그러면, 헨리 포드는 조용히 앉아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다음 한 시간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니 내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드 씨는 여러 가지 무거운 책임을 맡았지만 두려움 없이, 당황하는 것도 없이 평온한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양 무리인 우리를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만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 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 받을까 하여 두 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왜요? 그런 때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 리를 안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두려 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 수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낼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펫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의 일은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그날의 괴로움만이라도 족하니라. 너무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일의 일을 염려하다가 그만 오늘의 일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안식일 다음 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 보세요. 그날 새벽은 유난히 모든 것이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 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무덤을 막고 있는 바위를 누가 굴려 줄까 하며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 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무덤을 막고 있던 그 큰 바윗돌이 굴려져 있었습 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이 여인들은 이미 해결된 문제를 놓고 계속 근심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 에 던져진 고아가 아닙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에 신앙을 세 마디로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가 능히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도 다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어서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 니다./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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