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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유산 (딤후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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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매사추세츠 첼시의 제일 Universalist라고 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의 촬스 레오나드 목사님이 '기독교 생활에 대한 어린이들의 헌신과 위치' 라는 제목을 가지고 일년에 어느 한 날을 제정하여 어린이들에 대한 기독교의 확실한 입장을 새롭게 하자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한 촬스 목사의 운동은 아주 대단한 협조를 얻게 되어서 10년 뒤인 1867년에는 벌티모어에서 미국의 각 교계 대표자 회의가 열리고 그후에 각 교단별로 어린이주일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어린이들을 꽃으로 비유해서 이날 교회는 온통 꽃으로 장식하고 꽃주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세계 기독교의 문화가 되어서 한국교회도 전통적으로 5월 첫째주일을 이렇게 어린이 중심의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우리 상담 봉사회에서 이따가 1시 30분에 세미나를 저더러 하라고 그래서 그 세미나의 내용과 오늘 말씀이 같은 분위기에서 연결이 되도록 제가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육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교육에 대한 열정에 세계에서 유학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로 또 평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살고있는 모든 인종 가운데도 한국인이 교육열이 제일 높은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 한국인의 경우, 이제는 거의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그렇게 교육열이 높아졌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육열입니다. 어떤 때는 그 열심히 좀 지나쳐서 너무 일류대학을 선호하다가 불필요한 마찰과 좌절도 경험하게 되고, 너무 거기에다가 인생의 가치관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이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청년, 그리고 대학교 담당 목사님이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가 제일 미워지는 때는 언제인가? 정직하게 말해보자.' 그런 이야기를 했고, 또 '내가 부모에게 제일 미안한 때가 언제였나?' 그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대답이 대학의 문제에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난 실력도 되지 않는데 너무 좋은 대학에 무조건 들어가야 된다고 일방적 고집을 주장할 때가 살기 싫었다! 사람이 자기가 타고 난 것이 있는데 자기도 공부 못했으면서 나더러 그냥 그렇게...' 그때가 제일 미웠다고 합니다. 내 형편과 I.Q 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그 사회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와 비교를 해서는 네가 왜 그 얘를 못따라가냐고 그렇게 해버리면 난 도대체 살수가 없다고… 부모가 그럴 때 제일 싫었고, 제일 미안한 때는 '부모가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내가 가지 못하므로 부모가 실망할 때 내가 또 제일 부모한테 미안한 그런 감정을 가졌다.'고 교육문제가 제일 큰 문제로 가정마다 부각이 되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경험대로 말하면, 많은 배운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것도 사실은 아니고 성공의 사례도 학문대로 가지는 않는다고 우리는 말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적절하게 Balance를 맞추면 되는 일인데, 오늘 이 어린이주일에 제가 설교하고자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통계로 따지면 잘사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일수록 이혼율이 높습니다. 또, 범죄율이 훨씬 높습니다. 교육제도와 시설, 프로그램 그런 것들이 가장 잘된 나라가 서구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제일 문제가 됩니다. 아마 그런 것이 현재로서 제일 잘된 나라가 미국이라고 온 세계는 누구든지 미국 유학을 그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회의 교육 기관을 바라보면 실망스럽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들어갈 때 권총을 가지고 오나 안오나를 교문에서 조사해야 되는 나라,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신입생 입학식하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피임약을 선물로 나눠주는 나라… 이게 뭐가 잘된 것입니까? 자동 소총으로 무장을 한 학생들이 자기 친구들, 선생님을 향해서 무차별 공격을 해서 대량 학살을 하는 나라, 그렇게 훌륭한 교육을 하는데 왜 사회는 점점 더 비교육의 상황으로 가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고 제일 좋은 문화 시설을 누리고 재미있는 일은 모두다 마음껏 누리게 사회적 보장을 받는 그런 아이들이 왜 잘못될까?

초등학교 아이들도 수학여행을 다 외국으로 다닌단 말입니다. 프로그램 보면 너무나 화려합니다. 뭐, 고고학을 연구한다 하면 아프리카라도 다 프로그램을 짜서 일년에 한두 번씩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여행을 외국으로 다 다니면서 공부를 합니다.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좋은 경험을 하고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혜택을 받으면서 최고의 선생님들에게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는데 왜 문제아들은 정비례해서 점점 더 많이 생기는 것인가? 그러면 교육은 잘된 것인가? 사실 교육은 안 받고도 훌륭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육 못 받고 세상에 사는 사람들도 옛날엔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교육은 절대 필요한 것이면서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이기주의가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인간됨의 가치가 뭔가? 그것을 신앙 안에서 발견하게 하고 바로 그 기초 위에 자기 인생을 창조적으로 건설하도록 신앙교육을 교회에서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에는 그러한 신앙 교육이 참으로 잘된 사람이 하나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대로 보면 이 디모데는 몇 사람에게 대단히 칭찬을 듣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복음을 위해 가장 큰 일을 하신 바울 선생이 그를 향한 마음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바울과 디모데는 혈통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음 안에서 참된 아들 디모데'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 중에 제일 반가운 열매이며 제일 큰 위로였습니다. 그는 바울의 후계자 역할을 했고 청년의 나이에 목회자가 되었으며 깨끗한 신앙의 청결한 양심의 사람이라고 오늘 말씀에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디모데의 내용을 보면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어려운 위치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디모데는 혼혈아입니다. 아버지는 헬라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실제적으로 국제 결혼을 세상에서 제일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대한한국 사람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결혼 주례하다가 혼난 적이 한번 있습니다. 유학 온 아가씨가 오랜만에 외국인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한다고 하니까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셨어요. 이제 10분이 있으면 결혼식을 시작해야 됩니다. 엄마는 어느 큰 교회 40년 권사였다고 그랬습니다. 그냥 엄마하고 딸하고 대기실에서 '엄마, 나 예쁘지? 괜찮지?' 엄마는 그냥 화가 나서 '엄마라고 그러지도 마라, 이년아!' 외국인하고 결혼한다고 말입니다. 모르고 오신 겁니다. 나는 그때 결혼 주례하고 저 권사님한테 얻어맞을 생각하고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비디오 카메라 다섯 대 동원했어요. 한국 며느리 들어온다고 너무 좋아서… 뭐, 시아버지, 시어머니 들어와서 껴안고 웃고, 이렇게 예쁜 한국 며느리 얻게 되었다고,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그런 차이가 나타납니다.

유대인은 한국인보다 더합니다. 혼혈아? 절대 용납 못하는 그런 민족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움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이 디모데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 보수, 종교적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혼혈아 디모데가 아버지 혈통의 헬라 쪽이 아닌 어머니 쪽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토록 훌륭한, 자기 위치를 초월해서 신앙 역사를 남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얘는 반항아가 되어야 할 아이거든요. 그래서 사위가 혼혈아를 인정하지 안거든요. 바울 선생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가정에서 네 신앙은 자랐다!' 그렇게 바울 선생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신앙교육은 가정입니다. 그 다음에 랍비를 통해서 신앙이 이루어집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헬라 문화권 루스드라에서 가서 바울이 디모데를 만났을 때 그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그를 목회자로 은연중에 훈련을 시킨 분이 바울입니다. 사실 바울에게 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 공로가 아니고 네 외할머니와 네 어머니가 너를 위해서 그 믿음을 키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부모들은 이것 한가지만은 의무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키울 수가 있을까? 우리 같은 평신도가 언제 신학공부를 했다고 집에서 훌륭한 신앙교육을 시킬 수가 있으며 무슨 말로 설득력 있고 감화력 있는 신앙 교육을 시킬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제일 감화력 있는 교육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부모의 삶 자체입니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설교식의 말을 하는 것은 아이들은 제일 싫어합니다. 설교는 좀 그만 하라고 합니다. 유학 청년들은 설교를 제일 싫어합니다. 뭐라고 교훈하면 그거, 설교 좀 그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눈과 마음에 들어와 있는 힘은 훌륭한 삶의 모습만이 기억에 남고, 그런 모습은 일평생 마음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부모는 자녀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줍니다. 그것도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이나 하지, 사실 훌륭하죠? 좀 고생 덜하면서 살라고… 더 훌륭한 부모는 그런 것은 하나 없어도 자녀에게 지혜를 물려주기 위해서 공부를 많이 시킵니다. 가장 위대한 부모는 신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지금 디모데 가정은 할머니가 그 딸에게 그런 신앙을 유산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 딸이 자기 아들에게 물려받은 것은 또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라는 열매가 생긴 것입니다. 유니게와 로이스가 신학교를 다닌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가정 주부로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뜨거운 감동의 신앙이 교육되어졌다고 바울 선생인 지금 인정을 한 것입니다. 유대인이었으니 구약 성경을 늘 읽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늘 기도생활을 하였을 것이며, 아마도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었을 것입니다. 불행한 형제들을 보면 사랑의 손을 폈을 것이며, 안식일이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정성껏 하였을 것이고, 자녀들 앞에 흐트러진 모습을 아이들 앞에 감추었을 것이고, 덕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작은 일도 감사하고, 정직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유산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이 하는 일을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바울은 늘 기도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합니다.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한 사람을 향해서 그런 지극한 마음을 어떻게 갖겠습니까? 바울 선생의 끊임없는 기도를 디모데가 지금 받고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거나 많이 받으면 그것은 언제 나타나든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적인 삶의 살아있는 교육과 바울 선생의 끊임없는 기도 후원이 디모데가 디모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기독교교육이 뭐가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론이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실천이 어렵습니다. 우리 흔한 이야기 알죠? 하나님이 천사에게 '너는 세상에 가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지고 오라!' 천사는 세상에 와서 꽃과 어린이 웃음과 어머니 기도를 가지고 오는데, 오는 동안 꽃은 시들고 어린이는 어른이 되고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이 어머니 기도였다!

이 어린이들은 모방심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TV에서 보면 보는 대로 하고싶단 말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면 '아! 인생이란 저렇게 하고 사는 것이구나!' 그냥 그대로 따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관심 있게 본 것은 마음에 담고 그대로 해보려는 모험심을 갖습니다. 교육학에서는 '동기유발'이라고 말을 하죠? 호기심이 많아서 자꾸만 묻는데 우리 어른들이 답변이 궁해지는 때가 많단 말입니다. 은퇴하신 이민 교회 목사님이 신문에다 글을 써서「할아버지의 창피」라 자기가 겪은 일을 신문에 썼는데, 내가 그걸 본 일이 있습니다. 뭐라고 썼느냐 하면, 삼일절이 되었어요. 은퇴하신 할아버지 목사님이 손자하고 있다가 삼일절이야기를 하니까 '할아버지, 삼일절이 뭐야?' '삼일절은 우리 나라가 일본 사람들에게 식민지가 되었을 때 해방 운동을 하느라고 피를 흘린 것이다.' '왜 해방을 해? 그냥 살지!' '이 놈이? 해방 운동은 민족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야.' '민족 자존이 뭐야?' '어, 그것은 대한민국 백성이 대한민국을 잘 지키고 사는 것이 민족 자존이야.'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이민 왔어? 민족자존을 버리고!' 할아버지 목사님이 '자식, 되게 똑똑한 체 하네.. 나가 놀아, 임마!' 자기는 그러고 말았다고! 신문에다 자기가 그렇게 썼어요. 아이들이 약아서 자기들끼리 만나면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야, 우리 집은 돈이나 있다고 뭐든지 다 돈으로 때워!' 그것을 들은 다른 아이는 '야, 돈으로 때우면 좋겠다! 우리는 말로 때워!' 어느 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감격하는가? 사랑의 진실이 전달될 때! 그 다음에 부모의 삶의 성실성을 발견했을 때 눈물을 흘리고 감격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할 때 오히려 아이들은 교육이 됩니다. 어느 때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가? 부모의 부정을 발견할 때! 두 번째는 민주적 권위를 상실했을 때! 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주일학교 운영할 때, 시골 교회는 전도사님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주일학교 과정을 거친 사람이 금방 전도사가 되어서 교회 주일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해 나가야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 10대 후반에 저희 교회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서 주일학교 설교를 계속 하고 전도사님이 하는 일을 그때 열심히 하면서 살았단 말입니다. 4∼5학년쯤 된 그런 주일학생이 '선생님! 오늘 예배 특송 내가 해도 되요?' 저한테 물었어요. 그 얘가 그럴 아이가 아니거든요? '야! 너 할 수 있겠냐?' '아, 나 시켜 주세요. 나 할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가 사는 집의 환경이 좀 좋지를 않아요. 주막집을 하고 있어서 좀, 그런 분위기예요. 그런데 이 아이가 주일학교를 잘 나왔거든요? 오늘 예배드리는데 제가 항상 설교를 하는데 누구를 시켜서 아이들 특송을 하게 하고 늘 그러면서 예배를 드리잖아요? 아, 그런데 그 녀석이 자청을 해요. '예배 특송 오늘 내가 할게요.' '아, 그래!' 시켰어요. '저 녀석이 저렇게 용기도 있었구나!' 그런데 예배 참석 특송을 뭘로 불렀는지 아십니까?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난 그때가지 그 노래를 몰랐어요. 그 얘 때문에 그것을 배웠는데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복음성가인지, 뭘 '오동동 오동동…' 뭘 그치지 않고 오동동이라고 하는데 이거 뭐, 도무지 본대로 하는 겁니다. 그 집에서 어른들이 와서 마시면서 그런 소리를 해서 이 얘가 금방 배웠어요. 그게 재미있으니까 또, 발표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또 주일학교에서 오동동을 불렸다고 목사님한테 불려가서 나는 혼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서 자기 꿈을 키우고 본대로 경험하고자 합니다. 기도 받은 것만큼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다소 말썽을 일으켜도 교회만 꾸준히 다니면 절대 변화됩니다. 그게 신앙의 힘입니다. 미국의 유명했던 대통령들의 배후에는 신앙적 간증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서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이야기는 목사들의 설교 예화로 많이 쓰여지죠?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몇 사람이 그렇게 쓰여지는데, 이 이야기는 대조적 간증으로 미국에 아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클리브랜드가 젊었을 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날마다 술과 도박과 향락에 몸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주일 날 아침에 그날도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만나서 똑같은 즐거움을 찾아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둘이 지껄이면서 가다가 어느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앞에는 갈보리교회도 이렇게 간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설교 제목… 담임 목사님이 뭘 설교한다 다 알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날 설교 주일 제목을 보게 되었어요. 제목이 뭐냐? '죄의 값은 사망이다.' 클리브랜드가 '어? 죄의 값은 사망이라?' 마음이 이상해 졌어요. 그래서 함께 가던 친구에게 '친구여! 오늘 우리 오후에 놀고 지금 여기 예배시간이 되었는데 이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 한번 드리자.' 그 친구는 '야, 너 미쳤냐? 친구들하고 약속해 놓고…' 그래서 둘이 교회 앞에서 싸웠단 겁니다. '그럼, 네 맘대로 해라!' 그 친구는 갈 길을 가고 클리브랜드는 그날 그 교회에 들어가서 그 설교를 들었다는 겁니다.

그 설교를 듣고 클리브랜드는 그 자리에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내가 왜 내 인생을 이렇게 가고 있을까?' 그 길로 훌륭한 크리스천의 창조적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30년이 지났을 때 미국의 역사는 클리브랜드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큼직한 클리브랜드의 사진과 함께 미국 대통령에 클리브랜드가 당선되었다는 아주 빅 뉴스를 한 늙은 죄수가 감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클리브랜드와 헤어질 때의 설교 제목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나 돈에는 국가의 최고 공로자의 얼굴을 넣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세종대왕이 계시잖아요? 어느 나라나 다 그렇습니다. 달러를 보시면 1불 짜리에는 워싱톤이, 5불 짜리는 아브라함 링컨이, 10불 짜리는 해밀턴이 있고, 20불 짜리는 잭슨이고, 50불 짜리에는 그랜트고, 100불 짜리에는 플랜클린이고, 1,000불 짜리가 클리브랜드입니다.

교육방법에 있어서 서구사회와 동양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구사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변적 사고, 합리적 이론을 기초로 이루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연역적 논리가 발달하였습니다. 이런 문화는 분명한 말의 표현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반드시 사랑한다고 해야 됩니다. 말 안하면 그건 사랑을 안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그 사회의 언어 문화란 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뭐, 'I Love You!'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합니다. 그러나 동양인은 언어는 약간 무시되어도 경험을 토대로 마음의 교통으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면 됐지, 피차 넉넉한 교통이 되는 마음의 교류에서 되는 것이지…' 그래서 동양 사회는 서구식으로 잘못 표현했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했다가 괜히 닭살이 돋는다는 소리 듣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 백성으로서 묵묵한 삶을 교육 재료로 삼아서 살면 디모데같은 열매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론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천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삐뚤게 가는 겁니다. 우리 가정에서 이것만 우리가 지켜나가면 이것은 어떤 교육자, 무슨 박사가 수없이 몰려들어서 논리는 펴는 것보다 큰 힘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그것 하나로 그 사회를 유지해 나갑니다. 오늘 이 어린이 주일날 우리가 각오해야 할 것은 그것입니다. 각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총의 임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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