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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위한 고난 (딤후 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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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복음을 지키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복음을 위한 고난 에 대하 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2장의 내용인 동시에 디모데후서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세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 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 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지난 1:마지막 부분에 보면 오네시모와 그 식구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여 다 버리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버렸지만 몇 사람은 끝까지 찾아 만났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한번은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있 을 때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도 가려느냐? 보통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을 극장 구경이나 음악감상이나 교양강좌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 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멀리로 도망가고 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좀 다르게 살라 다른 사람은 어떻다고 하더라도 너만은 좀 다르게 살라 고 하십니다. 로마서 12:2절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요?

1. 강하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디모데는 약했습니다. 육신만 약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이때로 말하면 바울의 권위가 무시당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디모데야! 들으라!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개의치 말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던 관계할 것 없다. 너만은 강하라! 네가 수줍다고 염려 말 라. 네가 약하다고 걱정 말라. 너는 강하라. 이것이 첫째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강하라 고 한 권면은 단순히 강하라 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약한 사람이 날랜 말처럼 강하고, 수줍은 사람이 용감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부른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써 강하라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가운데서 강해지라는 말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그리스도인의 힘의 근 원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부르심을 받은 자(디모데)로써 그 직무를 위하여 강하라. 사실 지금 바울은 두 번째로 감옥 에 들어가 있는 중이고 언젠가는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것도 예측하고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 사도 바울로서는 다음 세대에 복음 진리를 전승하는 것이 그의 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보면 복음 전달의 네 가지 단계를 암시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바울 자신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맡깁니다. 셋째는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에게 또한 복음을 위탁합니다. 넷째는 이렇게 복 음을 위탁받은 충성된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에 의해서 충성스럽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람들을 가 르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바울, 바울로부터 디모데, 디모데로부터 충성된 사람들, 충성된 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즉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면 복음은 이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또 다른 세대로 마치 올림픽의 성화를 손에 손을 거쳐서 전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여기 3절이하에 세 가지로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는 3,4절에 군사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하자면(나라에) 헌신한 군인과 같습니다. 군인은 나라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이라도 받을 각오가 다 서 있습니다. 군인은 편안한 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의 수고, 전투의 위험을 각오하고 있는 것이 군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달하는데 충성을 다하려고 하면 반대와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헌신한 군인은 고난을 각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집중하여야 합니다. 4

절을 J. B. Phillips 번역에 의하면 세상일에서 군대의 일로! 라고 했고 N. E. B 에 의하면 장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군인입니다. 군인이 돈 모을 생각이 나 한다든지, 세상 권세에 눈을 팔면 안됩니다. 상관의 명령이면 절대 복종하는 것이 군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정신이 바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장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십자가의 군대입니다. 이 군대의 총사령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적은 악한 영이요, 악한 영에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악한 영들과 부득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에는 반드시 희생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다른 하나의 모습은 경기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군인 을 생각하며 말하고는 이제 헬라의 경기를 생각하였습니다. 경기는 기술과 힘을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 경기는 규칙이 있고 규칙에 따라 잘한 사람에게 상을 줍니다. 전에는 상이 은으로 만든 트로피가 아니라 월계관을 씌워주셨습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경기하는 것 과 같습니다. 달음질과도 같습니다. 꼭 규칙에 의해서 달음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법에 따라서 달려야 합니다.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법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군인으로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경주자로써 법대로 다 달렸다고 하면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과연 법대로 달렸습니까? 그리고 셋째는 그리스도인이 농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농부가 곡식을 얻으려면 열심히 일해 야 합니다. 물론 곡식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농부는 밭 갈고, 씨뿌리고, 거름주고, 물주고, 김매는 것을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내가 할 일을 하면 그만입니다. 비도 오지 않는데 김맬 필요 없다고 먼 산 만 바라보는 농부는 비가 올 때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북한 선교를 위해서도 아직 통일도 되 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기다려야지 하면서 하늘 만 바라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다하고 준비할 바를 다해야 합니다. 때가 이를 때에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날 전도서 기자도 11:1절에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기회 있는 대로, 힘이 있는 대로 농부가 열심 히 열매를 바라고 일하는 것처럼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가령 우리 의 생활이 거룩한 자리에 이르는 것도 농부가 농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아침에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성경 일기, 교회봉사, 교회출석... 콩나물 물주기와도 같습니다. Ryle은 감동의 책 거룩한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전도하여 심령을 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남모르는 눈물과 고통이 기도 속에 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런 수고를 합니까?

7절을 보세요!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정말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영어 새 번역 판에는 주께서 너로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합니까? 온전히 헌신한 좋은 군인같이 싸우고 법에 따라서 달리는 경주자처럼 그리고 어려움이 있어도 열심히 일하는 농부처럼 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군인이나 경주자나 농부 나 고통과 수고 없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고통은 축복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면서 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이와 같은 핍박을 받았다고 위로합니 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으면 선지자의 반열에 들게 되는 축복을 누린 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격려합니다.

1.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라(8절).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바울은 다윗의 씨 즉 인간 예수를 말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즉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그의 하신 일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여기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요, 죽음에서 일어나셨고 복음의 본질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경험 자 체가 죽음은 생명의 문인 원리를 그리고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 디모데야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라. 만일 네가 네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고난을 피하고 싶거든 예수님을 생각하라, 그리고 다시 생각하라. 히브리서 12:2,3절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2. 바울의 고난을 생각하라(9-10절)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 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문자 그대로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바울도 다른 죄수나 다름없이 팔과 다리에 사슬이 매여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의 간증대로 그의 쇠사슬에 매려 고난을 받게 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인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고 옥중 서신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복음을 위한 사도 바울의 고난이 복음 전파에 크게 효과적이었습니다. 나는 사슬에 매였으나 복음은 매이지 아니하였다 고 바울의 경험을 말해줍니다. 우리 가운데도 고난 중에 처한 분이 계십니까? 그 고난이 복음 전파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바울의 경험을 통 해서 배우게 됩니다.

3. 모든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말하는 택하신 자 는 그리스도인을 말하는데 반드시 고난과 관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여 줍니 다. 물론 고난을 받으므로 우리의 구원에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 을 통해 택함 받은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고 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하려 할 때는 고난을 반드시 받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경험하신 바요, 사도 바울의 체험이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경험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합시다. 지금도 이 땅 위에는 복음을 위하여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련이나 중공이나 그 밖의 모든 공산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에 있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희들을 이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써 경기자로써 농부로써 승리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 세계 안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이라도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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