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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0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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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사랑하는 우리 영락의 권속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신년예배에 이어서 오늘 새해 첫 주일을 아버지 집에 모였습니다. 금년 한해 동안에 여러분의 심령이 더욱 윤택하여 성장하고 계획하시는 일이 다 형통하고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도 작년보다 더 많은 열매맺는 해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써야겠습니다. 조금 전에 디모데후서에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면 마지막 때에 있을 죄악상을 기록하였습니다. 거기 보면 19가지 모양의 죄악들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인간이 인간 중심으로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특색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향하여 간단히 그리고 강력하게 권면 내지 경고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가 운데 빠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디모데 너만은 달라야 한다. 너만은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돌 아서라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매우 간단한 말씀이면서도 대단히 뜻이 깊은 말씀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기 거한다 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배움에 거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참으 라 고 번역된 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기다리라. 그렇게 번역한 데도 있습니다. 곧 어떤 사람이 손님이 되었는데 그 나그네는 객지에서 당장 자기 집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그 집주인 되는 분이 하는 말이 좀더 계시다 가셔요 이렇게 그냥 붙들어서 못 가게 하여 얼마 더 머물러 있는 그런 형편을 말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배우고 확 신한 일에 거하라>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며 유쾌한 것이 아니고 될 수만 있으면 떠나서 피해 가려고 하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들이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으라 하는 그런 의미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몇 가지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확신하라는 것이요. 셋째는 성경이 어떤 책(冊)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이 세 가지 뜻을 확신한 일에 거하라 는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더 확실한 지식과 경험, 체험과 믿음에 거하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 확신한다 는 말은 헬라어로 ε πισιω 라는 말인데 우리의 믿음을 말하는 뜻도 물론 있지마는 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 고 있는 낱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엄격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만이 유일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생각할 수도 있는 줄 압니다. 확신한 일에 거하라 하 는 말씀 가운데는

1. 하나님을 믿는 생활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으라.
그런 뜻이 있을 줄 압니다. 신앙생활을 하 는 것 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학생시절에는 예수를 잘 믿지만 학교를 다 나오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그만 그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학생시 대의 예수는 잘 믿지만 사회인의 예수는 못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농촌에서는 예수를 잘 믿고 교회봉사도 잘 하다가 이렇게 서울 같은 큰 도시에 오면 아는 사람도 없고 자리도 빨리 안 잡히고 그저 바쁘다보니까 교회 생활 등한시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에 예수를 멀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분은 농촌의 예수는 잘 믿지만 도시의 예수는 못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생활이 곤고 할 때는 주님만 붙들고 살겠다고 잘 믿다가 생활이 부유해져서 윤택해지면 그만 세상의 재미보느라고 신앙생활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은 가난한 예수는 잘 믿지만 부한 예수는 못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그와 반대의 경우가 있어요. 생활이 부유하고 모 든 환경이 좋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감사해 하면서 교회봉사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만 그만 사업이 실패하고 모든 것이 다 어려워지면 낙심하고 예수도 내어버리고 마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은 부자의 예수는 잘 믿지만 가난한 예수는 못 믿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가정을 이루기 전에는 신앙생활 잘 하는데 가정을 갖고 나면 가정에 매여서 예수를 내동댕이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분은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예수를 멀리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빌립보서 4:11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한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곧 학생 때뿐만 아니라 사회인이 되었어도 부해도, 가난해도, 건강해도, 병나도 높은 때나 낮은 때나, 배부른 때나, 배고픈 때나, 혼자 있을 때나, 가정을 가졌을 때나, 시골에 있을 때나, 서울에 와서나, 신앙생활이 변함이 없이 항상 진실하게 열심히 믿을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하는 말씀인 줄 압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노라면 어려운 시련이 많고 장애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역경을 다 통과할 때에 그 생활은 풍부해지고 능숙해지고 어려움을 겪어 나가는 때마다 삶의 참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순간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면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꼭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뜻밖에 여러 가지 시련이 많고 그럴 때마다 예수 믿는 생활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서도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확신한 일에 거하라 는 말씀은 신앙생활 하는데서 도망쳐 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그런 때 그 신앙의 자리에 굳게 서서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과 곤란에 부딪쳐도 조 금만 더 참고 견디고 그 자리에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믿음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엄격한 의미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 사람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고 살자는 뜻입니다. 곧 사람에 대해서 신의를 가지고 살자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를 분석해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 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서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못 믿고 네가 나를 못 믿는 사회, 소위 불신의 풍조가 만연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 나쁜 사람이 되 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지옥의 그림자입니다. 남편이 아 내를 믿지 못하고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학생이 선생을 못 믿고 소비자가 생산자를 믿지 못하고 사원이 사장을 못 믿고 국민이 정치인을 못 믿는 사회!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길을 가다 귀여운 어린애를 보고 귀여워서 손이라도 한번 만져 주고 싶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어도 어린애 유괴범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운 사회! 사랑을 주기도 어렵고 받기도 힘든 사회! 얼마나 살벌한 풍경입니까?

우리가 이 사회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설사 내 친구가 나를 배신하고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한번 믿어 줍시다. 의심하지 말고 이해하려 힘씁시다. 인도의 시인 타골이 이해는 사랑의 별명이라고 한 말은 너무 유명한 말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혹 잘못이 있어도 아마 그런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거다 고 이해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옆으로 사람에 대해서도 믿고 다른 사람 의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금년 일년
여러분의 모든 생활에서 어딜 가시나 누구에게나 믿을 만한 사람, 믿어 주는 사람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람에 대한 신임과 더불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삽시다. 사람은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릴 때 남도 나를 업신여기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아니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좌절감이 생기고 열등의식이 생겨서 스스로를 천대하고 맙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으므로 회의를 느끼고 맙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보람도 못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는 일에 성과도 나지 않아 결국 실패의 쓴 잔을 마시고 맙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맡아서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여기에 확실한 신념이 생기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좌절되지 아니하고 새로운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신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남 의 하는 일을 넘겨보며 자신의 하는 일을 초라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옛날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어떤 사람이 노래하며 살 수 있습니까? 그 마음이 확정된 사람입니다. 누가 어두움을 헤치고 새벽을 불러 깨울 수 있습니까? 그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에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는 농사에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가는 교육하는 일에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하든지 그 사람에게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세익스피어가 어느 날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식당에 있던 사람들 이 모여와서 세익스피어에게 정중히 인사들을 합니다. 그 광경을 밖에서 보던 청소부가 비를 든 채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것을 본 세익스피어가 그 청소부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왜 그렇게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쉽니까? 그때 그 청소부 대답이 나도 같은 남자인데 선생은 그렇게 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나는 이처럼 한끼의 밥을 벌기 위해서 온종일이 마당만 쓸고 있으니 너무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때 이 위대한 세익스피어는 그 청소부를 향해 하는 말이 그대 친구여, 한탄하지 마시오. 그대는 지금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이 세계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오. 만일 그대가 이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이 지구의 한 모퉁이는 더러워질 것이오. 그렇습니다. 꼭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한사람은 신념을 가지고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감당하고 다른 사람은 신념이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므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슨 일을 하시든 신념을 가지고 일합시다.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 늘 본문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문에 보면 네가 아는 그 일에 거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공부하는 학생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평생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곧 단지 책을 가지고 방에 앉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배울 수 있는 마음을 예비하라는 뜻입니다. 배우려는 마음의 문을 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의 귀를 열어 놓고 배움의 눈을 뜨고 마음을 활짝 열고 배우는 우리 영락인이 되십시다. 무엇보다도 금년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배우는 일에 힘써 보려 합니다. 그 까닭은 본문이 말씀하는 것처럼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지만 고질이 되고 말면 이것을 고칠 약이 없습니다. 인간이 너무 지나친 자신을 가지고 있을 때 무서운 고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성경 위에서야 합니다. 꿈이나 이적이나 주관적인 어떤 체험으로 건전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건전한 신앙은 성경을 충실히 배우고 거기에 순종하며 말씀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는 지난 일년 동안에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숫적으로도 지난 한 해에 2천여 명이 증가하여 이젠 2만 2천여 성도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 영락교인들 하나 하나가 알찬 교인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우리 영락교인은 성경 많이 배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려고 애쓰는 교인들이 됩시다.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교회 교인들이 영락교회 교인들을 많이 바라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때 우리 사회와 교계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여러분, 위로 하나님을 믿는 일에 튼튼히 섭시다. 옆으로 이웃에 대하여 신임받고 신임하는 사람됩시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신념을 가지고 일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교만한 마음일랑 온전히 버리고 배우려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말씀 배우고 그 말씀 순종하는 생활에서 우리의 심령이 윤택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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