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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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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콜롬비아의 바이블 컬리지에 로버트슨 맥퀼퀸이라는 학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몇 해 전에 아내 무리엘이 치매에 걸리자 그 동안 맡아온 학장직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아내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 무리엘은 지난 8년 동안 건강이 점점 약해져왔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무리엘이 내가 그녀와 함께 있어주는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이제는 내가 그녀를 잠시라도 떠나 있으면 몹시 불안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할 때는 불안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잃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고 나를 찾아 집밖으로 나올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나는 학장직을 사임하고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내가 42년 전 결혼 서약을 하면서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무리엘을 돌볼 것을 서약했을 때 이미 약속한 것이기에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고백입니까. 성경은 아내사랑의 표준을 그리스도에게 두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버리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의 삶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랑은 곧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 2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 나를 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를 위하여’란 표현이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에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여성명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녀를 위한 것 즉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바울이 요청하는 아내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생명을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나는 어떤 사랑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유진 피터슨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 아내의 얼굴은 네 믿음의 이력서다.”

「21세기 인터넷 선교방송 매일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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