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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0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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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4-16)

본문에서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돌보고 있는 디모데에게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1세대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동행하는 특권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런 특권을 누렸던 다른 1세대들과 동시대에 복음을 수종들게 되었고, 또 그가 부르심을 받은 것 역시 특별한 케이스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복음의 1세대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의 사명은 황무지를 처음 개간해서 곡식을 심는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숱한 고난과 위험을 겪으면서 바울은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007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군요. 초로에 접어든 고참 007과 신참내기 젊은 007이 함께 나오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기분좋게 길을 가는데 갑자기 폭탄이 그들에게 쏟아졌습니다. 위태위태하게 겨우 그 죽을 고비를 벗어나서 목숨을 구했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젊은 007이 불평조로 말합니다. '당신을 따라다니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하겠군요.' 그러자 고참 007이 하는 말입니다. '이런 일은 나에게 밥먹듯이 일어난다네.' 그러면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울은 고참 007처럼 온갖 고난과 위험을 겪으면서 그러한 것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2세대인 디모데는 젊은 007처럼 아직 고난이나 위험에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제일 믿음직해서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겨놓긴 했지만, 바울로서는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빨리 찾아가서 격려하고 또 지도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바울이 어떤 형편 때문에 빨리 디모데에게 갈 수 없었는지, 감옥에 있었는지, 다른 더 급한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할 수 없이 우선 편지를 보내서 몇 가지 교훈을 전달하고 격려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디모데전서라는 편지를 쓴 동기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교훈은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돌보는 일에 관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교회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세요.

먼저 이 집,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를 수종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말했습니다(행 20:28). 하나님이 사셨으니까 하나님의 것이지요. 비록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처음 세웠지만, 그 교회는 바울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목회를 하고 있지만, 디모데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교회의 소유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재산을 얘기하자면 개인이든 법인이든 교회 재산의 소유주가 존재하겠지요. 조용기 목사님이 그랬다지요? '교회 재산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등기합니까? 내가 대표니까 조용기 이름으로 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교회 재산이 누구의 소유로 등기되어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주사랑교회가 누구의 교회입니까? 개척해서 설립한 이준성 목사님이 주인입니까? 아니면 제가 목사니까 목사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목사의 목회철학과 신학 노선에 따라 교회의 모습과 방향성이 많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심하다 보면 교회가 목사의 교회가 되는 수가 있어요. 그렇다면 그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요즘 그렇게 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이키고 있는 교회들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목사는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 교회를 끝까지 지키는 터주대감 장로가 주인입니까? 그런 교회들도 종종 있어요. 하나님은 그 장로의 손에서 자기 교회를 되찾아오고 싶으실 것입니다.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건축하는데, 본국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 짓는 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그 현지인 교회를 자기 교회 이름을 따서 부르도록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주사랑교회에서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에 예배당을 지어주었다고 해서 그 교회를 주사랑교회라고 부른다면 말이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그 인도네시아 교인들은 발음도 잘 안되는 주사랑교회라는 이름을 가져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교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고신측 교회를 다녔는데, 호남 지방에는 고신 교회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경상도 출신 목사님들이 전라도에 있는 교회로 부임하게 되면 유배간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다니던 교회는 고신측 교회로서는 가장 큰 교회였어요. 새로 오신 목사님의 목회방침은 이 큰 교회를 발판으로 인근 지역에 많은 교회들을 개척해서 교단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만에 여러 고신 교회들이 새로 생겨났고, 고신의 불모지에 모처럼 활기가 띠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새로 개척된 교회들이 모두 이 모교회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모교회 이름에다 지역이름만 앞에 붙인 것이지요. 그렇게 이름이 같다 보니까 누가 보더라도 최소한 교회이름만 보아서는 무슨 그룹이나 기업 확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같은 교단 내에서 보아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밖에서 보면 얼마나 더 그렇겠어요?

바울은 지금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네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는 너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야. 또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용이 되어서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기억할 때, 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올바로 충성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목사의 교회가 잘되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제대로 서도록 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어떤 특정인의 역할과 영향력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하나님의 교회가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담임목사 세습문제의 한 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 어떤 집단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순종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공명심과 욕망, 이기주의, 분파주의 같은 것들이 종종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도 이 교회 창립멤버인데, 나를 무시하고 있어.' '내가 빠져 봐, 이 교회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애?' 각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지 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바울은 이 교회를 가리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합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다이아나 여신을 모신 신전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이 다이아나 신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주동이 되어 바울의 복음전하는 일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중시위를 일으킨 사건이 나오지요? 이 에베소의 다이아나 신전에는 127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있었다고 합니다. 각 기둥은 금과 보석으로 치장이 되어 있었구요. 아마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 신전의 기둥들을 연상시키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기둥은 건물을 떠받치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에야 건축술이 다양하게 발달해서 기둥없이 집을 짓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둥이라고 하면 건물을 지탱하는 부분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기둥이 무너지면 그 집은 서 있을 수가 없지요.

바울은 교회가 바로 기둥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기둥인가 하면 진리의 기둥이에요. 교회가 튼튼한 기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교회라는 기둥이 믿음직하게 서 있어야 하나님의 큰 일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둥이라고 할 만큼 교회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이 일에 있어서 교회가 빠지면 일이 될 수가 없어요.

교회는 또 진리의 터, 즉 기초입니다. 교회 자체가 진리의 기초가 된다는 것보다도 교회가 진리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 될지 모르겠군요. 기초는 기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복잡하고 잘 발달된 신학이 아니라 매우 기본적이고 쉬운 기초적인 사실 위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 기초 위에 멋진 신학도 세우고 아름다운 업적도 이루어야 하지요.

최근에 한국 기독교계를 떠들썩하게 한 책이 한 권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이 '기독교 죄악사'예요. 미국에 머물고 있는 성결교 출신의 한 은퇴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많은 과오와 죄악을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이나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 목사에 의해서 책이 출판되기는 처음입니다. 그 내용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마녀사냥에 의해 얼마나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기독교의 폭력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습니까? 종교개혁자 칼빈 역시 반대자들에게 관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을 화형시키도록 했다고 해서 두고두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칼빈을 따르는 국제적인 기구에서 공식적으로 사과성명을 낸 적도 있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예수를 붙잡아 죽였는데,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극단적인 반역행위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열심이 왜곡되고 진실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많은 범죄들을 저질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회개하고 마음 아파해야 할 일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진짜 주장은 그 이상입니다. 기독교가 그러한 죄악을 저질렀던 이유는 바로 자기들만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배타적인 독선과 아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군 운동을 일으켜 이슬람 세계를 수차례에 걸쳐 짓밟았으며,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선교라는 미명 하에 다른 종교와 문화의 뿌리를 뽑아 없앴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분쟁들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으니, 기독교는 더 이상 죄악을 저지르지 말고 회개해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독교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 사랑의 종교가 억압과 분쟁을 조장했다면 사랑의 종교답지 못한 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종교와 손잡고 서로 인정하며 함께 공존하는 길을 택한다면, 기독교가 드디어 본연의 모습인 사랑의 종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것이지요?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른 종교까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성숙하고 발전된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집은 지었는지 모르지만, 그 집이 서 있는 기초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그 기초는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한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 말씀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어다'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외에 어떠한 존재라도 숭배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가장 분노하셨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기초를 무시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집을 지은들,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은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공작에 불과한 것이지요.

우리가 비록 높은 수준의 신학은 마스터하지 못했을지라도, 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과 그의 백성된 도리의 기본적인 진리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 교회가 건강해지는 방법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올바로 세워나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진리의 기둥 역할을 든든히 감당함과 동시에, 기초를 튼튼히 해서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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