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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깨뜨리기 (딤전 05: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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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깨뜨리기 (딤전 5:19-22)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이래, 사탄은 끊임없이 이 교회를 흔들어왔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교회를 깨뜨리려고 하는데, 그 중에 아주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은 지도자를 넘어뜨리는 일입니다. 지도자가 넘어지면 교회 전체가 무너지게 되기 쉽지요. 지도자를 넘어뜨린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그 집단 전체에 대한 정복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의 모든 신자가 사탄의 공격대상이지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지도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교회의 지도자를 공격하는 한 가지 방법은 거짓으로 고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그 하나님의 사람을 거짓으로 공격하고 고소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습니다. 모세에 대한 부당하고 거짓된 고소와 비난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사람이 성실하고 의롭다고 해서 적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법 없어도 살 사람에게 얼마나 적이 많았습니까? 또 바울은 얼마나 많은 거짓 고소에 시달리며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까? 누구보다도 거짓 고소로 고초를 당하신 분은 우리 주님입니다. 온갖 거짓말과 비열한 수단이 다 강구되어 이 하나님의 아들을 고소하고 음해 하려고 했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을 거짓으로 고소하는 사람들은 그 영적인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가르침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과 축복을 시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거됨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넘어져서 교회가 무너지면 사탄이 좋아할 일이지요.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비난, 공격, 고소,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온 사람은 목사 쫓아내는 일을 몇 번쯤 보았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 그런 일을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친도 목회하시면서 교회에서 종종 쫓겨나시더군요. 교인들이 싫다는데 어떡해요? 나가야지요. 저의 형님도 최근에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제 친구 목사님 한 분도 자기를 쫓아내려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상하고 괴로워한다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더군요.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쟁이 목사 쫓아내는 일에 관련된 것입니다. 쫓아낼 때 나가면 간단하지요. 문제는 목사가 못나가겠다고 버틸 때입니다. 그야말로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이런 일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쫓아내면 무조건 나간다.'

목사 쫓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투표해 가지고 1/3만 넘으면 목사를 쫓아낼 수가 있으니까요. 소수가 다수를 누르고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목사 쫓아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가 쫓겨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목사가 무능해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나빠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요. 충현교회의 이종윤 목사님이나 신성종 목사님이 실력이 없어서 쫓겨났겠어요? 아니면 처세를 잘못해서 쫓겨났겠어요? 아무리 잘해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소수의 반대파들이 일정한 세력만 형성하면 법적으로 목사를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사 쫓아내는 일에 동원되는 메카니즘이 무엇이던가요? 바로 거짓 고소입니다. 물론 제가 쫓겨난 목사들이 다 거짓 고소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쫓겨난 목사들 중에 거짓 고소의 희생자들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하고 사실을 조사해서 합당한 판결을 내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목사 쫓아내는 일에 있어서 거짓 고소가 없는 사건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거짓 고소라는 것이 재판에서 밝혀지기도 하고, 혹은 밝혀지지 않고 희생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짓 고소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고소되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일단 목사가 고소되었다는 사실은 그 교회의 도덕적, 영적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목사 개인의 명예와 진실은 둘째 치고라도, 교회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스스로 뒤집어 쓴 것입니다. 만일 그 고소가 진실이라면 교회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교회의 치부를 제거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런 악과 부끄러운 부분을 담고 있었다는 것은 교회의 수치입니다. 만일 고소가 거짓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교회가 이런 고소와 고발로 내홍을 겪고 있을 때 세상에서 교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어요?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고하기를 장로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송사건은 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소송이 들어왔을 때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시하라는 말입니다. 목사를 고소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더 이상 목사로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지요. 목사와 교인 사이의 관계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일 뿐입니다. 여러분, 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상태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은혜가 되던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던가요? '저 사기꾼이 저렇게 능청스럽게 허풍을 떨고 있구나' 하는 생각밖에 더 들어요? 목사가 미우면 목사의 가르침이 귀에 들어오겠어요? '너나 잘 해!' 이런 말만 나오지요. 이와 같이 목회사역은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일인데, 목사가 고소를 당했다는 것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어 그 문제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목사에 대한 신뢰감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이고, 그래서 사역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의 목사님이 지금 간통사건, 위증사건 등으로 고소를 당하고 복잡하지 않습니까? 저야 그 사실 여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이런 사건을 보면서 그 목사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로에 대한 송사에 두세 증인이 있을 경우에는 심각하게 처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세 증인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사를 해서 재판을 하면 거짓이든 사실이든 밝혀지겠지요. 구약에서 법정 증언의 요건으로 필요한 것이 두 사람의 증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개별적인 객체가 일치된 증언을 하면 일단 진실로 추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두 사람이 모의해서 얼마든지 거짓 증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두세 사람의 증인으로 송사가 성립되었다 해도 매우 신중하고 분명하게 사실을 판단해서 진실과 진리를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재판 실수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디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목사에 대한 거짓 고소가 승소해서 죄없는 목사가 제거된다면, 이것은 누구의 승리입니까? 누가 기뻐할 일인가요?

목사에 대한 소송을 신중히 하는 것은 목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거짓 고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범죄하고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보호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 그 고소가 사실이고 목사가 잘못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합니다. 일벌백계로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일벌백계는 훨씬 강도 높은 징계를 의미하지요.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면 받아야 할 징계보다 지도자는 더 큰 징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 문제에 있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목사와 교인들 간에 소송사건이 있어서 교회법에 따라 재판을 하게 되면 누가 주로 재판을 하겠습니까? 목사들이지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그래서 목사에게 이로운 판결이 나기 쉽습니다. 이건 잘하는 게 아니지요. 가능하면 목사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범죄한 목사를 보호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이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21절). 같은 목사라고 편을 든다거나, 잘 안다고 봐주거나,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시고,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 다 본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깨끗한 마음과 성실함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것이 기대되기 때문에, 목사에 대한 고소는 하나님의 교회를 깨뜨리려는 사탄의 사주에 의한 거짓 고소일 가능성이 많고, 그래서 목사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송은 무시해서 목사를 보호해야 하지만, 만약 목사가 정말로 범죄하고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훨씬 더 엄하게 징계를 받아야 할 것이고, 이런 일에 정실이나 편견이 개입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보호하고, 또한 교회의 순결함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만큼 교회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영적, 도덕적 기준이 높고, 기대되는 역할의 중요성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그러한 지도자를 세울 때 애초에 잘 선택해서 세우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안수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취소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 잘못 선택해 가지고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지요? 동업자 잘못 만나가지고 사업 망하는 수도 있고, 남편이나 아내 잘못 만나가지고 늘 으르렁거리며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지요.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울 때 사람 잘못 선택했다면, 얼마나 어려움이 많겠습니까?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고, 교회가 분열되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게 되고 하는 일들이 모두 사람을 잘못 선택해서 지도자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직분 맡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물로 집사 임명을 하거나 회유를 위해 장로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직분 맡은 사람은 열이면 열 모두 나중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때 가서 그 직분 준 것을 회수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교회에서 어떠한 직분이라도 신중하게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무리 일꾼이 없다 해도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것이 교회의 일꾼입니다. 바울 사도의 충고를 무시했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경우도 많아요. 주변에서 목사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에 자기에게 유익이 되거나 자신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직분자를 임명했다가 오히려 그 사람들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결국 쫓겨나기까지 하는 경우들이 많더군요. 그런 분들이 이 디모데전서를 열심히 읽고 바울의 충고를 마음 속에 깊이 새겼더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잘못된 사람을 선택해서 안수를 했다면, 그 사람의 모든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령 내가 임명한 직분자가 교회와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행했다면, 거기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은 요즘에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2천년 전 바울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지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문제도 함께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신중하고 지혜롭게 지도자를 세우고, 그래서 세워진 지도자를 공격함으로써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계락에 잘 대처하고 승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지키는 일입니다. 교회를 깨뜨리고 어지럽히려는 악한 영의 활동이 우리 교회 안에는 발도 들여놓을 수 없도록,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선한 양심과 올바른 분별력으로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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