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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는 세월, 남는 평가 (딤후 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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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바울 사도 자신이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6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灌祭)는 제사의 한 형태로서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 부어드리는 제사로 자신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것처럼 벌써 부어버린 포도주는 이미 제물로 드려져버린 상태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번제에 비교한다면 제단에 올려진 제물에 이미 불이 붙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겠지요. 특히 자신의 죽음을 이처럼 제물에 비유했다는 것은 그가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있는 바울 사도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합시다.

오늘은 2002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기대 속에서 벅찬 가슴으로 2002년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와 함성 속에서 우리는 4강이라는 신화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기적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몇 차례나 목격했습니다. 또 우리는 미약하지만 타우랑가 한인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한 해였습니다. 그랬던 2002년이 이제 불과 이틀을 남겨두고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고 정리해보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한 해가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각자 생각해보는 것도 앞날을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야 한 해를 마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생애 전체를 논할 것까지는 없고,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면 되겠군요.

사도는 자신의 생애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생애’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리도 종종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는 말을 씁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보니까 선거운동이 끝난 후 투표를 앞두고 후보들이 다 그러더군요. 후회는 없다고. 그러나 왜 후회가 없겠습니까? 특히 낙선한 측에서는 했던 일들이 모두 후회스러울지도 모르지요.

후회가 없다는 것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했든 못했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사도가 말하고 있는 자신의 생애는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후회는 없다’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고 성인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두말없이 바울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탁월한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 진리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소위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을 건설한 사람이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 절반이 그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한 소수민족의 뿌리에서 시작된 이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전파시킨 사람 역시 바울 사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바울 사도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슨 권력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편안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평생을 떠돌이로 살다시피 했습니다. 쫓겨나고 도망다니고 숨어지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붙잡혀 다 죽게 되도록 두들겨 맞았던 것도 셀 수 없었고, 목숨이 붙어 있는지 떨어졌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늘 위급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월은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이런 생애를 돌이켜본다면 신세한탄이 나올 법도 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말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원수들에게 붙들려 죽은 목숨 되도록 매를 맞은 것도 선한 싸움이었고, 파선을 당해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 강도를 만났던 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밤을 지새웠던 날들은 그의 마땅히 달려갈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것은 믿음을 지킨 결과입니다. 비록 몸은 병들어 고통스럽고 때로는 동역자들까지 변절하고 떠나가는 고독한 삶이었지만, 후회 없는 삶이었고 자랑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순간의 평가가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고 평가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요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정치인들의 이름이 많습니다. 이름도 재미있어요. 이인쥐라느니, 김민새, 정몽키… 이름들을 다 열거하기에는 시간이 짧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환멸을 느끼게 한 사람들이지요. 일반적인 상식과 건전한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엽기적이고 희한한 일들을 주저없이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자기들 입으로는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느니, 최선의 선택이었다느니,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느니 하는 핑계들을 대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추악하고 비겁한,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가혹하고 냉정했습니다.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해야 정당성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남의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요.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과연 지난 한 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나요? 정말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까? 그렇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후회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렇다면 후회스러운 것은 있을망정 부끄럽지는 않은 삶이었나요?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스러운 일들이 있다 할지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성적이 좋은 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 빼놓고 어디 있을까요? 저 자신 역시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모습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자아반성과 자기비판을 하는 이유는 내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변명하고 변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죄송한 모습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사도는 평생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가셨지만, 우리는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추한 싸움을 싸울 때가 없었는지요? 나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큰 이익을 무시하며 살았다면 비겁한 싸움을 한 것입니다. 남을 무시하고 자기 혼자 잘나고 의롭다고 생각하며 행동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험악한 말을 함부로 뱉고 살았다면 매우 악한 싸움을 싸웠군요. 힘들고 곤궁에 처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저 내 한 몸 위해, 내 새끼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만 최고의 관심사로 알고 아둥바둥 살아왔다면, 열심히 싸운 것만은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도처럼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정의를 위해 우리가 어느 정도나 관심을 가졌습니까? 사회의 불의와 약자들이 당하는 고통에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 선한 싸움에 뛰어든 적이 있었나요? 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누르고 선한 행동과 부드러운 입술을 가꾸기 위해 자신과 싸웠던 선한 싸움은 어느 정도나 치열했습니까? 선한 싸움을 싸운 생애였다는 사도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지난 한 해가 얼마나 선한 싸움을 싸운 날들이었는지 돌이켜보니 너무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모습들뿐입니다.

사도는 또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의 모습입니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에게 주어진 사명은 최선을 다해 트랙을 달리는 것입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면 자기 책임을 포기하고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입니다. 멀다고 트랙을 벗어나 지름길로 가는 것은 아무런 상급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열하고 악한 행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역할이 있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학생의 본분을 지키고, 국민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을 달리기 선수에 비교해서 말한다면, 지난 한 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정당하게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사도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자신의 생애를 결론짓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가 믿음을 지킨 한 해였습니까? 물론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를 배반한 것이 아닌 이상,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행동과 동기가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의 행위들이 거의 기독교 신앙의 지배를 받지 않고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행위라는 열매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무인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행위만 가지고 보면 믿음이 없는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우리가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레스트홈에서 일하면서 보니까 힘들고 짜증이 나면 못된 버릇이 나오게 되더군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씻겨 잠자리에 들게 하는 것인데, 빨리 일을 마치려고 할머니들의 틀니를 빼서 닦는 일을 생략해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혼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떠먹여드려야 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는지 아니면 근육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인지 입을 꼭 다물고 벌리지 않으면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속에서 짜증과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따라 살며 행동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해도 오히려 미소로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니겠어요? 생각이 거기에 이르면 자신을 질책하고 반성하지만, 그것이 쉽게 실천에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총칼의 위협 앞에서 신앙의 포기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여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우리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믿음을 지킨 삶이었다, 혹은 믿음을 저버린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지난 한 해,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영광과 환희를 맛본 분도 있을 것이고, 좌절과 낙망을 겪어야 했던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기가 막힌 일을 당해 분노나 슬픔을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우선 타우랑가로 이사온 일을 꼽을 수가 있겠군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이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또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레스트홈에서 죽음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발드는 일을 하면서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 역시 중요하고 의미가 있겠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그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 슬픔 속에서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가꾸어나가는 모습을 기대하실 것입니다. 큰 기쁨과 행복에 겨운 시절을 보내셨나요? 그 달콤한 행복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림으로써 하나님이 그 행복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있는 소망과 계획이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여러분을 안타깝게 하다가 이 한 해가 끝나고 말았습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각오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자비하심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이 한 해를 정리해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회와 부끄러운 모습까지 모두 담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께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하고 바침으로써, 비뚤어진 우리의 마음 바로잡아 주시고, 굽어진 심성을 곧게 펴 주시는 하나님의 치유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끄러웠던 우리의 모습들을 제하시고 정한 마음을 우리 속에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차곡차곡 하늘나라의 앨범에 쌓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사도 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라고 우리의 생애를 결론짓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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