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과 맞장을 뜨겠다구? (고전 01:19-21)

첨부 1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추구하던 것은 소피아, 즉 지혜였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 자체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무지라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존재입니다. 지혜가 그 인간을 무지로부터 해방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의 정신세계에서는 지혜에 가장 큰 신뢰를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혜를 찾고자 하는 철학이 정치, 종교, 사회, 경제, 문화 등 인간 생활의 모든 부분을 규정하고 지시하게 됩니다. 지혜에 부합하지 않는 사고나 행위는 악한 것으로 치부되겠지요.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러한 그리스 철학의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가 자기들이 추구하던 지혜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최고의 선으로 추종하고 총명함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연약하고 모순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재단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뛰어나고 대단하다는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성경구절은 이사야 29장 14절입니다. 거기 보면 사람들이 계명을 연구하고 발달시켜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학문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지혜의 위대한 업적 아닙니까? 그렇게 학문적인 성과는 크게 이룩했는데, 정작 그 계명이 요구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시는 말씀이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명철이 없어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작은 것에 집착하느라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비지니스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요.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더 크고 중요한 이익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지요.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상위의 가치와 권위를 갖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하위의 가치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고 의존하여 상위의 가치와 충돌하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 아닙니까? 태권도 1단짜리한테 가서 태권도 9단짜리를 꺾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니까요.

아무리 인간의 지혜가 뛰어나고 위대하다 한들 하나님의 지혜와 견줄 수 있습니까? 그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구원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막 덧셈과 뺄셈을 배운 초등학생이 보기에 미분과 적분은 학문이 아니라 복잡한 낙서일 뿐입니다. 만일 그 초등학생이 자기가 배운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학문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미분 적분의 문제를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겠지요. 그러나 덧셈과 뺄셈이 수학의 최고봉인 줄 아는 아이라면 미분과 적분을 정신병자가 그려놓은 그림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고 위대해도,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해탈, 즉 깨달음으로 구원을 성취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올바른 해답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몰라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멸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의 말씀은 매우 중요한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관해서는”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지혜에 따르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게 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섭리 가운데 자신이 이 세상의 지혜에 의해 파악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다는 뜻이지요. 주요한 영어 성경들은 두 번째의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지혜로 생각하면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고 어리석은 방법일지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초월적이고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인간의 지혜로 보면 답답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 한 마디로 온 인류를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신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효과적입니까? 아니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날마다 능력을 행하시고 보여주면 좋을 것 아니에요? 그 많은 하나님의 능력 놔두고 썩히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굳이 전도라는 우리 보기에 답답하고 미련한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보기에 미련하다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거부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훨씬 지혜로우시고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뜻에 맞추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고치고 손질하는 것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리가 변하고 고쳐져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 우리의 지혜가 무릎을 꿇어야지요. 그렇게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