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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교회를 다니십니까? (빌 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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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왜 교회에 다니십니까? 왜 신앙생활을 하시는 겁니까? 여러분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십니까?
다양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하나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내 계획을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행동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빌 2:5에서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엡 5:1-2입니다. 다같이 찾아서 읽으시겠습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또 사도바울은 고전 11:1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교회를 다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나의 기쁨이 되어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이 나의 삶이 되어지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닮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바울은 갈 2:20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면 예와 아멘 밖에는 없다고 고후 1:20에서 말하였습니다.
롬 14:8에서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라고 외치면서 심지어 내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온전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겠다고 하면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감옥소에 갇혔을지라도 '내가 말하노니 기뻐하라 또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베드로는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계수하지 않고도 5천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제는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들도 나를 따르려거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더니 한 사람 두 사람 슬금슬금 빠져서 도망을 갑니다. 슬슬슬슬 도망치면 사람들을 보시며 제자들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슬슬 도망치는구나 보이지? 너희도 가려느냐? 이 질문에 사도 베드로의 대답을 보세요
'주여! 나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나이다'
정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어부로서의 생명인 배를 버렸습니다. 그물도 버렸습니다.
어떻게 버렸습니까?
'그 즉시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았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고 있을 때에라도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온데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너희도 가려느냐?'
이 예수님의 질문을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소망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되면 나의 삶이 변화됩니다.
마 22장에서는 첫 번째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무엇이 제일 먼저 변화됩니까?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내 인생의 우선순위와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내 부친을 장사하고 따르겠나이다'라는 사람을 보시고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 오셨을 때에도 주님은 막 3:35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모친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야! 이거 교회 다니면 부모도 몰라보는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교회 나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나도 나가지 말고...
어찌 눈을 들어 그 넘어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바라보질 못하십니까? 부모에게 효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런 것들을 더 하여 주신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넓고 넓은 우주의 질서까지도 세밀하게 운행하고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관계 하나를 운행하시지 못하겠습니까? 부모에게 불효하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의사를 보세요!
시퍼런 칼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배를 등을 석석 베어 냅니다. 우리를 죽이려는 것일까요?
그 칼은 사람을 죽이려는 강도의 칼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칼입니다. 인간 의사의 칼로도 사람을 살리는데 좌우에 날선 하나님의 명령이 어찌 우리를 죽인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예와 아멘 하였던 바울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제일 많이 수상한 세계적인 사람들 다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제일 먼저 예하고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마 22장에서는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렇다면 내 이웃을 몇 번이나 용서 하셨습니까? 베드로가 성질 급한 것 아시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도 그 즉시로 따랐고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려는 말고의 귀를 삭둑 잘라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셨을 때 다른 사람들은 허허 웃으면서 저 여자들이 헛것을 보았구먼 하였을 때에 제일 먼저 무덤까지 달려가서 그 안을 들여다 본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자가 있다면 몇 번 용서하오리이까? 우리가 7번 용서하오리이까? 우리말에는 삼세번이라고 하죠.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세 번! 그런데 그 성질 급한 베드로는 주여 7번 용서하오리이까?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사람을 사랑하되 용서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눅 15장에서 나타나는 탕자를 보세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범하였을 때 그는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136절에서는 '나의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른다'고 하면서 '회개한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교회를 다니면! 더러운 죄를 자꾸만 자꾸만 저지르지 않습니다. 만일 죄를 저질렀으면 이 가슴이 저려옵니다.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죄악을 버리게 됩니다. 찬송가 208장에서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알콜에 중독되어 있습니까? 도박을 끊지 못하고 있던가요? 세상의 자랑이나 교만이나 그저 다른 사람을 아직도 흉이나 보며, 수군거리면서 아직도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건 몽둥이로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수용소에 수감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엡 5:9에서는 '빛의 열매는 모두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빛이 누구입니까? 요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빛의 열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화 되셨습니까? 아니 변화되고 있습니까? 우리 다같이!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러나 아직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로마서 1:28-32절까지의 모습을 가지고 계시진 않습니까?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을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요,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이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32절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21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교회를 다닙니다. 성경을 압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버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버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8절에서는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면…
하나님을 모셔야 할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더러운 것들이 아직도 계속 해서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속에선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아직도 이런 모습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기억하세요.
교회를 다니면 제일 먼저 내가 변화됩니다.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내 이 속에서 그 누구도 뺏을 수 없고 빼앗기지 않는 기쁨이 솟구쳐 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되고 최고의 우선 순서가 되어 집니다. 나의 더러운 죄를 다 버리게 됩니다. 가슴 아파합니다. 눈물이 시냇물처럼 솟구치며 죄악을 벗어버리므로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소망교회를 나오신 모든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변화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 소망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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