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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빌 0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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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난주간 김천 연합성회를 성령 충만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특이한 것은 지역의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서 쌀을 많이 모아서 나누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교회도 교회이름으로 160㎏을 드렸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그 누구도 뺏을 자 없고 빼앗기지 않는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냥꾼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쏘았습니다.
뿡야! 어떻게 됐겠습니까? 새가 땅에 푸드득거리며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새가 죽지는 않고 경미한 상처만을 입고를 사냥꾼에게 말을 합니다. 아저씨! 아저씨!
저를 살려 주신다면 엄청나게 성공할 수 있는 세 가지 비밀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아! 사냥꾼은 너무나도 신기해서 세 가지 비밀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살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아저씨 너무나도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제 세 가지의 비밀을 말할 테니까 잘 들으세요.
첫째> 남이 하는 말을 그대로 다 믿지 마세요.
둘째> 절대로 능력 이상이 되는 일을 하지 마세요. 실패하게 됩니다.
셋째> 실패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내일이 있으니까요?
사냥꾼은 이 비결을 듣고는 새를 놓아주었습니다.
아! 그랬더니 새가 힘겹게 날개를 푸드득 하면서 간신히 나뭇가지로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사냥꾼에게 아하하하 아하하하. 왜 웃니?
아저씬 바보예요! 왜 저를 그냥 놓아 주셨어요. 제 몸 속에는 조금 전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삼켜서 이것만 있으면 아저씬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요.
아! 이 말을 들은 사냥꾼이 열 받았겠죠. 그리고는 잘 날지 못하는 새를 잡으려고 나무위로 올라갔는데 그만 이 새가 손만 닿으려면 푸드득거리고 좀 더 높은 가지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냥꾼도 따라 올라갑니다. 새가 푸드득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사냥꾼이 또 따라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우지직 하면서 그 약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땅 아래로 꽝하고 떨어지면서 다리가 이상합니다. 아이고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
아 하하하 아 하하하
아저씬 정말 바보군요! 조금전 제가 성공하는 세 가지 비밀을 가르쳐 드렸는데 그렇게 금새 잊어 버리다니요.
첫째> 남의 말을 다 믿지 말라 했는데도 제가 한 말을 그대로 다 믿다니요.
둘째> 능력 이상의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잡을 수 없는 저를 잡으려고 그 가지 위를 올라오셨어요?
셋재> 실패를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왜 그렇게 땅을 치면서 하소연하고 계신가요?
아저씬 바보야! 바보야 바보야 하면서 다른 계곡을 향해 날아가 버렸답니다.
후회할 일이 왜 없겠습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이키고 싶은 생각이 왜 안들겠어요!
조금만 뒤를 돌아보면
·내가 잘못 내렸던 결정들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한 말들, 상처준 말들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
아! 돌아가고 싶다. 배우 설경구씨가 기찻길에서 외친 말이 딴 사람의 말뿐일까요?
이런 과거에서 난 정말 정말 '자유롭다'고 하실 분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바울을 보세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였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왜 우리는 후회스러운 옛일들이 수치스러운 옛것들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단테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후회하는 사람은 동시에 죄를 짓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하서 슬퍼하는 것은 나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슬퍼하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악한 충동을 짓밟아 버리게 됩니다.
후회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윌리암 섬리만도 '회개는 부러진 날개를 가지고도 가장 빨리 날아가게 하는 위대한 비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 4:17에서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왜 회개는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면
첫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눈물로, 가슴을 찢으며 고백해야합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그냥 그냥 넘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싸악 다 지워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조차 아니 하신 단 말입니다.
그냥 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용서가 될 수 없습니다.
용서는 악을 관대하게 대하는 관용이 아닙니다.
용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그냥 넘겨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단순한 느낌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용서란 무엇일까요? 진짜 진짜 용서는 단서가 붙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건이 붙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까? 왜 그리도 울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기억조차 아니하시는 사랑. 우리의 잘못을 흰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130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사유하시노니 주를 경외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억조차 않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과거의 괴로움에서 풀려나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역대하 7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겠다' 하였습니다.
이 역대하 7장 14절을 통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스스로 겸비해야 합니다.
오만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막아 버립니다. 혈관의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콜레스테롤 같은 것이 바로 오만입니다. 시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겸손일까요? 겸손이란?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태도이며 삶의 변화입니다.
온 인류를 용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던 예수님의 이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 바로 온 인류를 용서하실 수 있는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하며 이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면류관을 누리게 될 줄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매우 소중합니다.
기도의 통로를 통해 나의 잘못이 하나님께 올라가게 됩니다. 또 기도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쏟아 부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의 허물과 나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의 부족이나 나의 허물을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도전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한풀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가 기도합니까?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많이 합니다. 누가 기도 안합니까? 소위 잘났다는 사람이 안합니다. 나의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나의 잘못을 깨끗하게 용서받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2004년에는 더욱 많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도 용서하지 못할 일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평안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기도하다가 용서할 수 없는 일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평안합니다.
어떤 부부가 심각하게 싸움을 하였습니다.
아 자신도 무르는 사이에 흥분해서 아내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까지 쏟아 놓아서 아내의 마음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게 되었습니다. 흥분이 가라앉고 제 정신이 좀 들자 우아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했구나하고 잘못을 빌었습니다. 여보!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구려 내 정신이 아니었나 봐. 내가 정말 못할 일을 당신께 저질렀구려.
여보! 정말 미안해 날 용서해 줘 응! 잘못했구려!
이 남편의 사과를 듣고 아내가 입을 엽니다.
여보! 정말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그냥 죽고 싶었어 그러나 잘못했다고 하니 용서할게 다시 그러지마 응!
아! 그날부터 남편이 달라지기를 시작합니다.
퇴근해서 들어올 때마다 선물을 사오고, 호의를 베풀고 아양을 부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면 시원하셨어요
아내가 입을 엽니다.
여보! 이제 그만해도 돼요.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내가 다 용서했으니까요!
아! 그런데도 허구헛날 선물을 사오고, 화장실 문을 열어 주면서 여보 미안해! 여보 잘못했어! 여보 여보, 이거 왜 그래요? 용서받았는데도 믿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절대로 다시 들춰내시지 않습니다. 기억조차 아니하십니다. 저리고 찔려있는 내 가슴에 또다시 난도질을 하시지 않는 용서입니다.
민 23:20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신 축복을 그 어떤 사람도 돌이킬 수 없다'
'하나님의 용서는 그 누구도 훼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우리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실패한 과거는 다 잊어야 합니다.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과거도 다 잊어야 합니다.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2004년도를 준비하는 이 12월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세요.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될 것입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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