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천국 시민권자의 삶 (빌 03:19-21)

첨부 1


화란을 향해 날아가던 멧오리들이 수천 리를 날아오느라고 피곤하고 지쳐서 어느 집 지붕에 내려 앉아 잠시 쉬어가려고 하는데 마당을 내려다 보니까 자기들과 비슷한 집오리들이 자기들처럼 고생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면서 주인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이 디룩디룩 쪄서 잘 사는 것을 보고 “나도 내려가서 저 오리들이 먹는 먹이를 먹고 편히 쉬다 가자” 하고 내려앉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루만 쉬다 간다는 것이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니까 더욱 날기가 싫어졌습니다. 한 일주일 지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어느 날 굳게 결심하고 지붕 위로 날아올라 갔습니다. 그런데 살이 너무 쪄서 더 이상 날 수가 없었습니다. 비참하게도 집오리들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 날 잡혀서 요리가 되어 먹히고 말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천국 시민권자로서 끊임없이 영혼의 날개, 믿음의 날개를 치면서 천국을 향해 올라가야 하는데, 많은 크리스찬들이 안개처럼 잠깐 있다 사라지는 세상 즐거움과 쾌락에 도취되어 그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영원한 멸망을 맞고 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천국 시민의 정체성을 알자

우리 크리스찬들은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들인데, 하나는 세상 국적이며 다른 하나는 천국 시민권입니다. 본문,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100년 미만의 세상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나라, 천국의 시민권자들인데 많은 크리스찬들이 천국 시민의 정체성을 잊고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고, 주님이 내려다보실 때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마치 잠시 편하겠다고 집오리들과 함께 살다가 잡혀 요리상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불빛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육신의 즐거움 때문에 영원한 행복의 나라, 찬란한 천국을 망각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나라는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했습니다. 천국 시민권자는 세상에서 행인이요, 나그네요, 순례자일 뿐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잠깐 여행갔다 본향집으로 돌아갈 나그네인 것입니다.
모처럼 해외여행하는 사람은 1년, 2년 전부터 준비하면서 가슴을 설레며 좋아하지만 막상 여행하는 기간은 지극히 짧습니다. 어느새 끝나고 본향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구는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지나친 애착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시39:4-5)라고 했습니다. 풀잎이나 풀의 꽃과 같이 연약한 존재요, 잠깐 후에 시들어 죽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연약한 풀잎은 병아리가 쪼아먹어도 죽고 맙니다. 대통령이나 항우장사라도 작은 차 티코에 치어도 죽고, 콩알만한 총알이 박혀도 죽습니다. 또 우리의 삶은 손 넓이만큼 짧습니다. 잠깐 있다 가는 여행객이며 순례자이며 손님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 천국입니다. 이 천국의 시민권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잠깐 사는 나그네의 삶을 두려움으로 조심스럽게 살라고 합니다.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지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일 뿐 아니라 천국의 대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사신이며 대사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대사는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말도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도 배우고 습관도 배워서 그 나라 사람처럼 사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항상 자기는 본국의 대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 대사가 자기 나라를 잊어버리고 그 나라 사람으로 귀화해 버린다면 본국이나 본국 대통령에게 큰 배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국의 원수가 되고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정체성을 잃고 세상을 너무 사랑하면 그만 아까 그 멧오리처럼 그리스도의 원수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 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천국 시민권자가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세상 친구가 되어버리면 간음하는 여자와 같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왕의 왕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2. 천국 시민의 관심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땅에다 발을 딛고 살아도 항상 천국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는 제일 먼저 천국을 그리워하고 만왕의 왕 예수님을 제일 사랑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한 이 말씀은 “위엣 것을 찾으라. 잠시 지나가는 세상 것을 찾지 말라” 즉 항상 하늘나라의 것에 마음을 두고 잠깐 지나가는 땅엣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느 영어성경(WMS)에는 “위엣 것으로 마음에 채우기를 연습하고 세상의 것으로 채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D.L. Moody는 “하늘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세상 것은 좋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높은 벼슬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나 물질적인 풍요나 통속적인 성공이 천국 시민의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것은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잠깐 되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과 부자 되는 것만 강조하고 영생 천국은 잘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말씀대로 살면 물질의 축복도 있고 성공도 체험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부활도, 영생도,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천국, 내세를 이야기하면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축복은 믿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이며 “물량주의”니 하고 또 비난합니다. 결국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허무주의(nihilism)자들입니다.
천국에 관심을 두고 사는 크리스찬은 세상 생활에 무관심하고 실패의 삶을 사는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것을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며 사는 사람은 더욱 보람 있고 멋지게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봄에 밭을 가는데 그 아버지가 처음으로 젊은 아들에게 소 쟁기를 붙잡고 밭을 갈라고 했습니다. 몇 고랑 갈고 난 뒤에 보니까 밭고랑이 뱀 기어간 자리처럼 꾸불꾸불했습니다. “얘, 너 뭘 쳐다보며 밭을 갈았느냐?” 하니까 소 발만 쳐다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저 멀리 있는 언덕에 목표를 정하고 갈아라” 했더니 여전히 꾸불꾸불했습니다. “무엇을 목표물로 삼고 갈았길래 또 꾸불꾸불하냐?”고 물었더니 “저기 왔다갔다 하는 검정소를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러니까 소가 움직일 때마다 움직여서 밭고랑이 그 모양이지” 했습니다. 다음에는 멀리 있는 산 언덕의 큰 바위를 목표로 하고 밭을 갈았더니 밭고랑이 똑바로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물질을 따라가고 명예를 따라가고 세상 쾌락을 따라가니까 세상 생활이 잘 되지만 저 천국을 목표로 삼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3. 천국 시민의 삶

① 고난과 희생을 감수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천국에 비해 짧고, 지구는 임시거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천국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상충될 때에는 용감하게 세상 것을 버릴 수 있고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영광을 얻지 못해도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늘의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이 있기 때문에 불안해 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나그네 생활을 했지만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고난도 희생도 감수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pleasure)도, 세상의 보화(treasure)도 포기했습니다.

② 천국 시민은 말이 달라집니다
천국 시민이 되면 그 말부터 달라집니다. 요한일서 4장 6절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말을 하기 좋아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영에 잡힌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적당히 절인 것같이 해야지 시퍼렇게 살아있는 뻣뻣한 채소 같은 말을 하면 천국시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채소는 맛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34-37절에 강도있게 책망한 말씀이 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천국 시민은 말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③천국 시민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생활을 합니다
보물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행하는 나그네가 여행하는 동안에 모든 재물을 다 소비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장차 돌아가서 살 교향에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돈을 투자하며 삽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 임시로 거주하는 지상에만 애착을 두고 돌아갈 영원한 본향에 투자할 줄 모르면 아직 마음이 천국에 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는 영원한 본향에서 받을 상급을 위하여 애굽의 모든 즐거움(pleasure)도, 애굽의 모든 보화(treasure)도 다 거절하
고 버렸습니다.
우리는 조만간에 하나님이 부르시거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저축했던 통장도, 보물도, 사랑하고 아끼던 기호품도, 집도 다 버리고 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미리미리 하늘에 보화를 쌓아둔 것만 영원히 내 것이 됩니다.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기회 있는 대로 자꾸 본향에 보내두어야 합니다.
어느 선교사가 평생을 선교지에서 보내고 은퇴하여 귀국하는데 마침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과 한 배를 탔습니다. 대통령이 내리려고 할 때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퍼지고 빨간 카펫이 깔리고 수많은 군중이 환호를 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몸바쳐 선교사역을 하고 돌아오는 늙은 선교사가 내릴 때는 아무도 마중나온 사람도 없고 꽃다발 하나 안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롭게 집에 돌아와 불평하듯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