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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마음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 (빌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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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멋진교회의 표어는 “예수닮기”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표어를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닮기」는 신앙생활의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결국 이 한 마디에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만 닮으면 모든 영성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모본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어그러진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신 가장 완벽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닮으면 됩니다.
예수닮기 표어는 로마서 8:29-30 말씀이 그 근거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나를 아셨습니다. 그 보다 훨씬 이전,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벌써 우리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백성으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교리인 ‘예지 예정론’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단계입니다.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전도를 받으면 이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심이 많기 때문에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을 믿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에 대해 선전하면 믿고 잘 삽니다. 가짜에 속기도 잘합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의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영혼을 사단이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전도하면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씻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십니다. 의란 옳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의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은 천국 백성으로 합격이란 선언입니다.
영화롭게 하심은 우리에게 임금의 권세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영화는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자리는 최고의 높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들이실 뿐만 아니라,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우리를 앉히십니다. 거기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권세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셨습니다. 어떤 환자이든지 모든 질병을 그 몸에서 떠나라고 선언하면 그 병이 나았습니다. 사나운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를 명하여 일어나라고 하면 그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어 어떤 말이든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의롭게 하심은 의화, 거룩케 하심은 성화, 영화롭게 하심은 영화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의인이 됩니다. 거룩해집니다. 영화롭게 됩니다.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로마서 8:29 에는 그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닮게 하려고 우리를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은 언제나 「예수닮기」입니다. 이 목적은 해가 바뀐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멋진교회는 올해의 표어가 없습니다. 오직 평생 표어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닮기」 표어를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예수를 본받으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5 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말씀은 1:8 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3 절에 나와 있습니다. 3 절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마음입니다.

마음은 오랜 훈련을 거쳐서 만들어집니다. 마음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생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을 합니다. 자꾸 생각을 반복하면 일정한 생각으로 하나의 패턴을 이루게 됩니다. 일정한 생각이 굳어지면 그것이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순한 생각을 자꾸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순한 마음이 됩니다. 자기를 낮추는 생각을 자꾸 하면 그 사람은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자꾸 나쁜 쪽으로 생각을 하면 마음이 거칠어집니다. 거절을 자꾸 하다보면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자기를 자랑하려고 내세우다보면 교만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굳어지면 곧 마음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면 예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예수닮기는 내 생각을 주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훈련입니다.

WWJD 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What Would Jesus Do?의 첫 글자를 딴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내 생각을 멈추고 주님의 생각과 판단을 읽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종로 5가에 연동교회가 있습니다. 이 연동교회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입니다. 당회가 깐깐하기로 소문이 난 교회입니다. 장로님들이 녹녹하지 않습니다. 연동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이성희 목사님께서 당회를 인도하실 때 안건 통과를 한 번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관상당회라는 기발한 회의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먼저 당회원들이 모이고 당회장이 맨 나중에 입장합니다. 앞에 있는 촛대에 초를 점화합니다. 이 촛불은 성령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성령께서 임재 하셔서 성령의 뜻을 따라서 회의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테이블에는 작은 종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 종의 용도는 회의를 하다가 의견 대립이 되어 큰소리가 나거나 감정이 상할 정도로 다툼이 나게 될 경우, 누구든지 성령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는 판단이 들면 '딸랑딸랑-!' 종을 흔드는 것입니다.
회의 중에 종소리가 나면 어떤 경우라도 언쟁과 다툼을 멈추고, 1분간 침묵하면서 조용히 주님의 뜻을 물으며 묵상합니다. 간절하게 성령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상당회는 철저히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으로 당회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관상당회를 한 이래로 이때까지 딱 한번 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장로님들이 서로 종소리가 날까봐 조심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닮으라고 강조하면서 1 절부터 4 절까지의 말씀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부터 4 절까지는 하나의 긴 문장입니다. 이 긴 문장의 결론은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입니다. 4 절 끝에 이 말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헬라어로는 1 절 끝에 이 말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 역시 바울에게 기쁨을 주는 교회입니다. 목회자가 가장 기쁠 때는 세운 교회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바울은 그 기쁨을 완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일러줍니다. 그것은 4 가지 일을 하고, 3 가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 4 가지는 2 절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첫째, 같은 생각을 갖는 것, 둘째, 같은 사랑을 베푸는 것, 셋째, 뜻을 합하는 것, 넷째,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사실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첫째도 한 마음, 둘째도 한마음, 셋째도 한마음, 오로지 한마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한 마음을 깨뜨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3 가지는 3 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첫째, 다툼, 둘째, 허영심, 셋째, 각자 자기의 것들만 돌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것들이란, 자신의 이익, 장점, 주장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 때문에 교만해집니다. 허영심에 빠집니다. 이기적으로 변합니다. 결국 분란을 일으킵니다.

이런 것들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남의 이익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남의 생각과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약하면 해야 할 것은 마음을 같이해서 공동체를 단단히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를 깨뜨리는 행동입니다.

바울이 이런 행동 지침을 지킬 수 있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 문장은 1 절입니다. 1 절을 읽다보면 “무슨”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의 교제를 나누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비와 긍휼을 받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빌립보교회는 영적 체험을 충분히 한 교회입니다.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교회를 지킬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방심하면 교회는 사단의 장난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회에 치명적인 타격은 언제나 분파주의입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갈리고 나뉘는 것입니다. 일치와 단합이 깨지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죽고 맙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마음을 밝힌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9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의 마음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유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겸손은 남보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누르고 참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그 화를 녹여버립니다.

사람의 성품은 타고 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라면서 환경과 교육적 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타고나는 것도 있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격은 고칠 수 있습니다. 덕망있는 성격을 성품이라고 말합니다. 나쁜 성격을 성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격을 성품으로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다.
예수님의 이 마음은 공동체를 똘똘 뭉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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