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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치의 분별 (빌 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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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병자가 밤에 몰래 백화점에 침입했습니다. 밤새도록 장난질을 했습니다. 가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붙인 것입니다. 만원 자리에는 100만원자리를 붙여놓고, 200만원자리에는 5천 원 붙여놓고.. 자기 마음대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백화점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는데.. 손님들이 들어와서는 이상한 눈빛도 없이 그냥 엉터리 가격표를 보고 그대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비꼬아 만든 이야기입니다. 현대인들은 가치관이 혼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뭐가 정말 중요하고 뭐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가치 있는 것을 싸게 취급을 하고 쓸모없는 것이 정말 귀한 것인 줄 착각하고 사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혼돈된 가치관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엉터리 가격표 백화점에 와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내 생활을 한번 살펴보세요! 나는 정말 아까운 내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귀하다고 붙잡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에게 귀한 것인가… 한번 다시 보라는 것입니다. 아까운 인생을 쓸데없는 것, 가치 없는 것을 붙잡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인생을 마친다면 얼마나 인생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다 보면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원숭이를 쉽게 만나게 됩니다. 이때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원주민이 조롱박과 바나나 몇 개 그리고 창이 넓은 밀짚모자를 준비해 원숭이들이 놀고 있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나나 하나를 조롱박 속으로 집어넣고는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꺼내서 보란 듯이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나무 위 원숭이들이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보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조롱박 속에다 남아 있는 바나나를 집어넣고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한숨 자는 척합니다. 원숭이들은 조롱박 곁으로 모여듭니다. 그중 대장 격인 원숭이 하나가 나무 밑에서 잠자는 사람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다 이내 조롱박 속으로 살그머니 손을 넣습니다. 원숭이는 손에 힘을 주어 바나나를 잡습니다. 이때 사람이 헛기침을 하고 일어나면 놀란 원숭이가 펄쩍 뛰어 나무를 잡고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나 한 손이 조롱박 속에 있기에 나뭇가지를 잡을 수 없어서 결국 잡히고 맙니다. 조롱박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자기 손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보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불쌍해 보입니다. 손발이 묶인 것도 아니고 도망갈 나무숲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왜 원숭이가 그 곳으로 돌아가지 못합니까?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바나나를 쥔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나나를 쥔 손을 풀고 밖에서 손을 빼었다면 원숭이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한끼 식사도 되지 않는 눈앞 욕심 때문에 자유를 잃고 인간의 포로가 된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사람에게 실제 일어났습니다.
한 신앙 좋은 노인 그리스도인 있었는데 그분은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연말이 되어 미국에 있던 자녀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살 난 손자 녀석이 주둥이가 좁은 이조백자에 손을 집어넣고 빠지지 않는다고 울며 난리를 쳤습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백자가 깨지지 않도록 온 가족이 동원되어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을 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마치 죽어 넘어가는 아이처럼 울자 노인은 황급히 손자를 위해 망치로 백자를 깨뜨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가 굳게 주먹을 쥐고 있었던 손을 벌려보니 기가 막히게도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노인은 이 사건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노인의 결단과 아이의 행동을 통해 두 가지의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는 노인의 결단에 있어 아무리 고가 품의 백자라도 손자만큼 귀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는 백자의 가치보다 손자의 가치가 더 소중했기에 과감하게 깨트려 손자를 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있어 모범이 된다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아이의 행동에 있어 마치 원숭이가 바나나를 쥔 것과 같다는 점입니다. 어른들에게 이유를 말했더라면 백자를 깨지 않고 돈을 꺼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아이에게는 백자보다 5백원짜리 동전의 가치가 더 있었고, 그것을 꺼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른들보다는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고 신뢰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에게 있어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교훈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꼭 쥐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생명을 잃거나 그것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본다면 이제는 쥐고 있었던 손을 펴야 할 때 인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2장에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사를 지었는 데 소출이 풍성하매 곡식을 쌓아둘 곡간을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것은 마치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귀중한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가치인 '영혼'을 주신 그분 앞에서 가치 없는 것들을 고집하고 자아를 깨뜨리지 않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게되는 것입니다. 짧은 지식, 고정관념, 욕심 등 오늘 내가 쥐고 있는 바나나와 5백원짜리 동전은 무엇입니까?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만큼만 기도한다면 3개월 안에 우리는 기도로서 하늘문을 흔드는 자가 될 것이며 텔레비전에 열중하듯 마음을 집중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면 그도 역시 3개월 안에 말씀이 열린 자로써 하나님의 음성에 즉각 반응하는 깊은 영성을 소유케 될 것입니다. 강아지를 보살피듯 늙은 부모를 보살피면 그는 하늘의 상급과 땅의 복을 받게 될 것이며 강아지를 사랑하여 껴안듯이 주님을 끌어안으면 그는 정녕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될텐데...
텔레비전에게 빼앗긴 우리의 가여운 넋이여! 돌아 오라. 강아지에게 빼앗긴 우리의 고독하고 천박한 영혼이여! 돌아 오라. 텔레비전을 끄고 성경을 여는 사람, 그 삶을 주께서 다스리신 다네. 강아지를 내려놓고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 그는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진정한 기쁨과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허탄한 형상들이 가득찬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속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이 땅의 도덕적 해이가 지각 있는 이들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악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선악을 분별할 줄 모르거나 선악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육체에 마약을 흡입하는 것을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외설과 음란물에 대해서는 예술이라 하고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세상은 지금 선과 악의 기준이 철폐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9절)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은 것이지만 사랑을 이유로 분별력을 잃게 되면 불륜이고 타락입니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사랑해선 안될 사랑, 무분별한 사랑이 문제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고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가려야 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성경을 명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무분별하게 사랑하고 무가치한 것들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요나는 잠시 햇볕을 가려주는 박 넝쿨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마 후에 그 박 넝쿨을 시들게 하시니 요나가 심히 성내어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욘4:5-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분별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시들어질 것들을 아끼고 집착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계획을 외면합니다. 무엇이 지극히 선한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지금처럼 선악을 구별치 못하고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마저 그러함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진정한 가치를 분별하고자 몇 가지 가치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1. 돈의 가치
감리교 창시자인 죤 웨슬레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은 '첫째,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때 교인 중 한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크게 은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계속해서 '둘째, 우리는 절약하고 저축해야 합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얼마나 좋았던지 옆에 앉은 사람의 옆구리를 치면서 '설교 잘하시지요?'라고 옆 사람의 동의까지 얻어가면서 크게 칭찬하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셋째, 우리는 그렇게 벌어 모은 돈을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그만 혀를 끌끌 차면서 '아까운 설교 다 망쳐버렸네.' 하더랍니다.
까뮤라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그는 거기서 받은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서 가장 좋은 별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별장으로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슈바이처 박사는 이와 대조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받은 상금으로 아프리카 문둥병 환자들을 위하여 병원을 지어주었기 때문에 오늘도 수백 명의 환자들이 그 병원의 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같은 돈이었으나 쓰는 용도에 따라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돈은 나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보다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 가치가 더욱 드러납니다. 재물은 나만을 위하여 사용할 때는 소비가 되지만, 공공의 이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 때는 하늘에 저축하는 것이 됩니다. 재물은 정당하게 모아야 하며 가치 있게 써야 합니다.

2. 고난의 가치
어느 시골에 사는 자매가 몹시도 힘들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이겨가고 있었지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주여, 너무도 힘듭니다! 주여 너무 힘듭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그녀가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시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를 잘라주세요.' 이에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 주셨습니다. 자매는 꿈속에서 세 번씩이나 자기의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하였습니다. 한결 가볍고 편안한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요단강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뒤에 오던 다른 사람들은 커다란 십자가를 강에 턱 놓더니 그 십자가를 다리 삼아 하늘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의 자기 십자가는 이미 손아래 들어올 정도로 너무 작았습니다. 자매는 너무 서러운 나머지 강가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며 예수님을 찾았지만 이미 소용은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자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쫓아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지니라' 그 자매는 이에' 아멘! 아멘! '소리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고난은 필수적입니까? 불행히도 그것은 '예'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그것의 본을 세우셨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기회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난이 힘들어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했던 자매의 모습, 하지만 이 역시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3. 보잘 것 없는 것의 가치
조금 깨어져 금이 가고 오래된 못생긴 물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 항아리의 주인은 물을 길어오는데 사용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주인은 깨어진 물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 항아리와 똑같이 아끼니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온전치 못하여 주인님께 폐를 끼치는구나. 나로 인해 그 귀하게 구한 물이 새어 버리는데도 나를 아직 버리지 않으시다니....'
어느 날 너무 미안하다고 느낀 깨어진 물 항아리가 주인께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운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는 별로 소용 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물 항아리를 지고 계속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길을 지나면서 조용히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그제야 물 항아리는 그들이 늘 물을 길어 집으로 걸어오던 길을 보았습니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듯 싱싱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이 산골 길가에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을까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영국의 시골 어느 마을에서 경매가 있었습니다. 경매가 끝나갈 무렵 경매인은 오랫동안 버려진 낡은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값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달러 내실 분 있습니까? 2달러요?” “자, 더 내실 분 없습니까?” 그 때 은발의 신사가 나타나 손수건을 꺼내 바이올린의 먼지를 닦고 조율을 하더니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순간, 천상의 메아리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나왔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신사는 말 없이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들어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 외쳤습니다. “나는 1000달러를 내겠소.” 다른 사람이 “2000달러요!” “3000달러…”
하나님은 오늘도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통해 새 행진곡을 연주하기 원하십니다. 망가지고 녹슨 바이올린을 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낸 은발의 신사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고치시고 조율하셔서 천상의 교향곡을 연출해 내시는 것입니다.

4. 노동의 가치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기를 “땅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님께 말하기를 “천지의 주재시여,나와 내 나귀가 똑같은 구유에서 먹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낱알을 먹을 것이다.” 아담의 마음이 평안하여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언급되어 있는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인간이 된다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왜 인간은 노동을 하여야 합니까? 인간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노동할 때 단지 생계의 수단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동할 때 우리의 자아가 그 노동을 통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동할 때는 상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우리가 맡은 그 일은 내 자아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적당히 해치운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대가의 크고 많음에 관계없이 맡은 노동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는 우리 자아실현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우리의 후손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후손에게 남겨줄 유산을 위해서도 노동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아실현을 위해 수고한 노동의 열매는 우리의 후손들이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동해서 모은 재산을 물려주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재산만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때는 형제간에 재산 때문에 원수가 되고 부패되어 오히려 생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목격했습니다. 노동으로 모은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노동하는 정신을 물려주자는 말입니다. 근면의 정신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때, 우리 후손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을 통하지 않고 얻은 재산은 쉽게 사라집니다. 비록 노동하지 않고 성공해 많은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쉽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독약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부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5. 신앙의 가치
영국 왕립연구소 교수이며 전기분해의 탁월한 이론가인 험프리 데이비 박사(1778-1829)는 믿음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력 혹은 지성, 천재성, 권력, 위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귀한것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종교적 믿음'을 택할것이다. 믿음은 인생의 선을 훈련시키며 희망이 쇠할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삶과 죽음을 일깨워주며 굴욕과 수치를 천국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되게하고 영원한 기쁨을 준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습니다.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습니다. 그는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 받았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습니다. 전자는 세실 로드(Cecil Rhodes),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가? 그것은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습니다.
호텔 중개인 오르브 크리거는 워싱턴 주 스포케인에 매물로 나온 한 부동산에 관한 전화를 받았을 때 흥분했습니다. 그 매물은 공항에서 몇 분 거리에 있으며 스포케인 시를 내려다보는 전나무 숲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이었습니다. 오르브는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매물로 내놓는 대신 자기가 뛰어들어 매입했습니다. 문제는 한 가지였습니다. 홀리데이 인의 술을 파는 바는 한 달 평균 1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인이었던 오르브는 이 바를 운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그렇게 되면 손님들이 곧장 다른 경쟁업소로 가 버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호텔의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통계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오르브는 정중하게 그 의견을 들었지만 결국 바의 문을 닫았습니다. 오르브는 자기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호텔 로비를 개조하고 바 대신 푸른 식물로 둘러싸인 안락한 커피숍을 경영했습니다. 이 호텔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음식 매상고는 20퍼센트가, 객실 매상고는 30퍼센트가 증가되었습니다. 만약 바를 열었다면 이 호텔은 정말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르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그 신앙대로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이익에 배치될 때에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6. 말씀의 가치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헨델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헨델이 길을 가다가 가발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에 가발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한참동안 난처해하고 있을 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의 가발을 찾아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 이발관에서 일하는 아가씨였습니다. 그 후 헨델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헨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의 친필 악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헨델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델은 그 이발관에 다시 들렀습니다. 그 아가씨는 헨델이 온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발을 하러 온 한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녀는 무심코 다른 이발사에게 “머리를 말게 악보 몇 장만 갖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헨델은 조용히 이발관을 나왔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이발관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헨델의 명작 ‘메시아’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여인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지만 그 말씀을 다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성령님께서 조명해 주셔야만 그 깊이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한 권의 책으로 볼뿐이며 하나님의 귀한 말씀임을 알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7. 예수님의 가치
강가에서 참외 만한 연보랏빛이 나는 돌을 주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침 마을에서 수석전시회가 있어 그 돌을 들고 나갔습니다. 기괴하고 화려한 다른 수석들 사이에 볼품 없는 그의 돌은 15달러의 낮은 가격을 붙여 놓았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해가 넘어가고 이제 곧 전시회를 끝내려는 순간 한 신사가 다가와 돌을 유심히 살펴보고 두들겨 보더니 얼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돌의 주인은 가격표대로 15달러라고 하면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까봐 10달러에 가져가시라고 했습니다. 헌데 그 신사는 뒤늦게 가격표를 발견하고 지갑에서 15달러를 꺼내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세상은 하나의 돌덩이로 인하여 시끌벅적 난리가 났습니다. 브로커 &50939;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바로 그 노신사가 어디선가 15달러에 산 돌이 세계에서 제일 큰 사파이어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석의 무게는 1905 케럿,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20억 원이라니 어찌 시끌벅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은 마치 15달러 가치의 돌처럼 그냥 봐서는 볼품 없으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15달러라도 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누구든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액수만큼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인정하는 만큼의 가치가 되어 주십니다.
제가 아는 어느 교회의 장로님은 재산도 꽤 많고 학식도 있는 분입니다. 기독교의 장 자리는 전부 붙여 놓아 이 사람의 직위는 무려 대여섯 개나 됩니다. 이 사람의 소지품은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 만났을 때 하는 말이 시계를 잃어버려 간밤에 한잠도 못 잤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볼 때 평소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버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내버리고도 그 시계 하나를 잃어버린 만큼 마음이 아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마음의 가치관은 예수님이 그 시계 하나만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가치는 그들의 시계하나 만도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하십니다. 빌립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삶이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분별하는 지식과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되고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진실하고 허물없이 의의 열매를 많이 맺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세상은 지금 현란한 색채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무시되고 소멸됩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듯이 우리의 눈이 성령으로 수술을 받고 분별하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가치한 것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영원하고 선하고 가치 있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분별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시사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세상을 주님의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주옵소서. 지금 당한 고난이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극복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는 일을 최우선에 놓게 하소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해주소서. 세상에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이 땅에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하소서.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기쁨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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