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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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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인생을 살면 살수록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초라하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가장 편안한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지치고 피곤할 때, 세상에서 상처받고 낙심될 때 돌아와서 편안히 쉴 수 있고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가정은 미래에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하면서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천국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1856년 미국 매사추세스주에 있는 유니버셜리스트 교회의 찰스 레오날드목사가 6월 둘째 주일에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예배를 드린 것이 동기가 되어 이것이 미국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20년부터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켜오다가 1923년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함에 따라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이주일을 꽃주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이를 꽃에 비유한 것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어린이들도 아름답습니다. 꽃이 자기를 꾸밀 줄 모르고 진실한 것처럼 어린이들도 진실합니다. 꽃이 열매를 맺기 위해 피어나는 것처럼 어린이들도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자라납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꽃이 활짝 피어나고 열매를 맺으려면 햇빛이 필요하고 적당한 수분이 필요합니다. 또 옆에서 잡초가 자라나고 있으면 누군가가 뽑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도 주셔야 하고 지혜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이 필요합니다. 바른 인생을 가르쳐 주고 어긋난 길로 가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들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인 테일러라는 사람이 이런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아이들의 성격형성에 미치는 원인들을 분석해 보았더니 92%가 가정의 영향이고, 나머지 8%가 학교나 교회나, 친구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성격이 삐뚤어지는 원인의 92%가 바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씀입니다. 친구를 잘못 만나고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내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우리 자녀들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때려서 키워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절대로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해야 할지 답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시대를 뛰어넘고 환경을 뛰어넘는 기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이를 가르치면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자녀를 양육하는 원칙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씀했습니다.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언제 상처를 입습니까?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 단절될 때 아이들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버지하고 아들이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TV에서는 50년대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구호품으로 보내 준 옷을 입고 쌀이 없어서 고구마를 삶아서 저녁을 먹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한 마디 합니다. '옛날에 아빠가 어렸을 때는 저렇게 어렵게 살았단다. 그때는 쌀이 없어서 저렇게 밥 대신에 고구마도 먹고 감자도 먹고살았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얼마나 행복하냐.' 아버지들은 언제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쌀이 없으면 짜장면을 시켜먹으면 되지 왜 고구마를 먹어요?'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조금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때는 짜장면 집도 없었단다.'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짜장면 집이 없으면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 먹던가 아니면 켄터키 치킨을 사먹으면 될 것 아닙니까?' 대답합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화를 냅니다. '야, TV 그만 보고 가서 공부해' 아들이 자리를 털고 나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뒤통수에다 대고 '아유, 한심한 것' 하고 한숨을 쉬는데 아들도 방문을 나가면서 한 마디 합니다. '나 참, 한심해서'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보는 것도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의 입장만을 강조하면 대화가 끊어지게 되고 결국 아이들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외롭게 자라납니다. 예전에는 집안에 식구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삼촌이나 고모도 있었고 형제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다 외롭게 큽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이런 구호들 때문에 아이도 하나나 둘만 낳았습니다. 요즘에 아이가 셋 있는 집은 어디를 가도 찾기가 쉽습니다. 새로 이사간 동네에 가서 '여기 아이 셋 있는 집이 어디입니까?' 그러면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족 숫자가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외롭게 자라납니다. 부모들이 직장에 일하러 나가면 텅 빈집에 아이가 혼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롭게 자라다보니 자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예전처럼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해 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 이야기를 안 들어주면 아무도 대신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되 물질로만 채우려 하지 말고 정말로 부모님들이 나를 따뜻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대화가 부족할 때 자녀들을 상처받게 만들고 노엽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교양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을 통한 훈련'을 의미합니다. 부모들이 행동하는 것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훈계라고 하는 것은 '말을 통한 훈련'을 의미합니다. 부모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부모들이 먼저 주님처럼 행동하고 주님처럼 말하는 것을 통해 우리 아이들도 행동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주님을 닮아가도록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한양대학병원에서 원목으로 계시던 전재동목사님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하루는 정신과 병동의 의사가 찾기에 무슨 일인가 해서 가보니까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50대 부인이 하루종일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말릴 수가 없어서 목사님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환자를 붙들고 기도를 해서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제가 제 아들을 죽였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물었더니 '실은 제 아들이 얼마 전에 사형을 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군에 갔다가 탈영을 해서 못된 짓을 많이 하다가 결국 붙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죽기 전에 교도소에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길가에 있는 무밭에서 무 하나를 뽑아 가지고 온 적이 있지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어머니 왜 그 때 저를 꾸짖지 않았습니까? 왜 그 때 제 종아리를 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한마디 꾸중도 없이 어머니는 그 무를 가지고 무국을 끓여 주시면서, 무가 참 맛있다고 하셨지요. 그 때부터 저는 제 친구들의 연필을 훔치고 공책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남의 집 담을 넘어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결국 퇴학을 맞았지요, 그리고 군대에 들어가서도 결국 이렇게 탈영병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내 아들을 내가 죽였다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아갑니다. 내가 지금 사는 그 모습 그대로 내 자녀들이 살아가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대로 내 자녀들이 닮아간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이 주님 닮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있는데 자녀들을 훌륭히 잘 키웠습니다. 네 아들이 전부 좋은 학교를 나와서 그 중에는 목사도 있고 장로도 있고, 전부 다 훌륭하게 제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어머니 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자녀들을 그렇게 잘 키운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권사님은 '제가 본래 초등학교밖에 못나왔는데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내버려두어도 잘 크던데요.'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는 그저 너무 고마워서 나도 옆에 앉아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밤을 새워 공부할 때는 나 혼자 자는 것이 미안해서 나도 옆에 앉아서 뜨개질을 했습니다. 성경책을 보다가 눈이 아프면 뜨개질을 하고, 또 괜찮으면 성경을 보고, 그렇게 옆에 앉아있던 것뿐입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옆에 앉아서 성경책을 읽던 어머니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도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합니다. 부모들은 TV앞에 앉아있으면서 '야, 가서 공부해라.' 이것은 안될 말입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쁩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보다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어디 말씀해 보십시오.
성경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씀합니다. 부모들이 행동하는 것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곧 주의 교양과 훈계가 될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녀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아이를 얻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그들은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생리학적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또한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아기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케 하셨습니다. 이삭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 이 두 가지 사건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내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생명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성경은 아기 예수를 가리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해 저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 되느냐?' 가 아닙니다. 100점 짜리 학생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이루어 나가는 삶, 이것이 바로 인간존재의 목표이며, 우리 자녀들의 교육목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자녀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자녀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내 자녀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들을 위하여 창조적인 삶을 사는 자녀들로 양육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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