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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 (요삼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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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간 장로님 몇 분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말이 오고 간적이 있습니다. 딸을 시집보냈을 때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서운해 하고, 아들을 장가 보낼 때는 어머니가 그렇게도 서운해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짝 만나기 출가 하는 자녀들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기 보다 그저 자기 배우자가 너무 좋아서 마냥 행복한 기분이지만 이십 년간 온갖 정성을 대해 키워 이젠 내 품에서 떠나가는 아들, 딸 떠나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부모가 되어보아야 안다고들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식을 위해 눈물을 쏟아 본 일이 있으신가요? 자식을 위해 쏟는 눈물을 1/10만큼도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 쏟지 못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오늘'어버이 주일'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시길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고' (엡6:1)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순종한다'는 말은 '언제든지 부모님의 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대로 따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를 말 합니다. 즉 이 말씀을 부모가 자녀의 통치자가 되도록 자녀들은 그렇게 부모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순종은 '예'만 있는 것입니다. 부모 앞에서 '아니오'는 없는 것,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런데 그 순종이 '주안에서'의 순종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순종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뜻과 아울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주님을 향한. 주님을 위한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효자, 효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효'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삽니다. 특히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버이 살아 계실때 섬기기를 다하여라'는 시구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식 생각만 하고 자식에게 모든 걸 다 쏟고 있는 이 순간 나의 부모님은 역시 자식된 나만을 생각만 하고 계신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기독교는 효의 가르침을 매우 중요시 하고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고 인간관 인간 관계인 다섯째에서 열 번째까지의 계명 중 첫째인 제 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을 길리라'(출20:12)말씀 하였습니다. 이 만큼 기독교는 '효(孝)'를 무엇보다 앞세워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2)고 하였습니다.

어버이 주일은 사실, '어머니 주일'이 바뀌어 진 것입니다. 어머니 주일은 일찌기 1910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 웹스터라는 곳의 감리교회 에세 시작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외동딸하나를 데리고 사는 미망인 자비스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홀로 딸에게 사랑을 쏟으며 키우다가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생전에 이 여인은 주일 교사로 봉사하다가 갔는데 이 딸은 어머니 뒤를 이어 신앙생활을 잘하고 봉사도 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십게명'공부 시간이 있었는데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강의를 듣던 중 어머니 생각이 간절히 나서 어머니 묘소에 '카네이션'한 다발을 가져다 놓고 교회 강대상에 곁에도 카네이션으로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생각하는 한 딸의 마음이 '어머니날'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YMCA 창시자인 죤 와네메카가 안나의 그 갸륵한 마음을 듣고 자기가 운영하던 백화점 종업원 300명에게 '카네이션'을 달도록 하여 기념 하였고 미국 대통령 월슨은 이 이야기를 통해 듣고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 제정 하여 전 미국 교회가 '기념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 사랑을 기념토록 하였습니다.

이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서 교회들은 '어버이 주일'을 5월 둘째 주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어버이 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살아가 문득 그와 연관된 꽃이나 음식, 즐겨 하시던 취미활동을 보면 더욱 간절한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은 무슨 음식을 즐겨 드십니까? 무슨 꽃을 좋아 하시는가요?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시는가요? 떠나신 다음 간절한 그리움이 찾아 들기 전에 지금 잘 섬겨야 할 줄 압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잘한다고 한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주시는 것 그 무조건 적 큰 사랑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은 부모 생각하면서 처음 눈물 쏟아 보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군대가서 훈련 받을 때입니다. 지난번 군부대 찬양집회를 다녀올 때, 하필이면 내가 있던 부대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부대에서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최전방 철책선에 있는 휴전선 전망대를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버스가 그 곳을 향해 갈 때 나는 옛날 군대 생활하던 추억에 감회에 젖은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가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친 때가 잇습니다.

그 곳은 어디였는가 하면 신병교육대에서 정방의 들어가는 언덕이었습니다. 총을 메고 행군을 하다가 높은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집 떠나 온지 며칠 되지 않아서 다들 집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습니다. 갑자기 조교가 '선두 제자리에 앉아'하더니 '총을 양 어깨에 메고 지금부터 저 고개정상까지 '오리걸음'으로 간다.' 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말 고통중의 고통은 쪼그리고 앉아서 뛰거나 걷거나 할 때 찾아오는 고통입니다. 처음엔 얼만큼 전진이 되는데, 나중엔 앞으로 전진이 되질 않고, 좀더 있다가는 거의 기어 가다시피 하였습니다. '잡 생각'이 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씩씩거리며 '올라가야지'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올라 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정상에 겨우 기어 올랐을 때. '5분간 휴식!'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들 혼이 쏙 빠진 듯 헉헉거리며 쭈그리고 앉았는데 '뒤로 취침!'하였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누웠는데 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나고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때 조교의 한마디! '어머니 노래' 1발 장전, 발사!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하다 다들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서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 때 마음으로는 제대하면 세상에서 제일 효자 노릇 할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그 자리!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고개는 일명 눈물고개라고 한답니다. 훈련병들에게서 집 생각을 포기하게 하는 필수 코스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들은 군대 훈련소에서 다들 잠깐효자가 되어 봅니다. 제대하고 나면 또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 잊고 살지만 말입니다.

부모에게 효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우리 믿는 이들은 이제 급한 길에 잠깐 효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효는 내 감정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쉽게 생각할 때 '이렇게 해 드리면 좋아하시겠지'하는 것과 실제 우리의 부모님들이 원하시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기준에 맞춰서 기쁘시게 해 드리기 보다는 부모님 마음에 맞추어 기쁨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무조건 주고 싶은 마음이지 뭔가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 사랑과 같다고 할 수있습니다. 몇 일전 어버이날 일간 신문에는 일제히 사진이 한장 실렸습니다. 그 사진은 군 훈련소에 입대한 아들을 찾아간 어머니들이 군복을 입고 알들과 함께 훈련도 하고 보초도 서는 사진있습니다. 그 어머니들은 몇 일전 헤어져 군에 보낸 아들들이 훈련 받는 곳까지 찾아 들어가 아들을 만나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저래 봐야 자기 짝 만나 장가들면 어머니 생각하지도 않을 것을 다 소용 없는 걸 뭘 저러나' 싶은데 어머니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 보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아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본능적인 '모성애'라 할 수 있습니다.

전방 군부대 중에도 최전방철책선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외출 외박을 할 수 없습니다. 그 기간이 몇 개월이나 됩니다. 그걸 모르는 부모들은 아들 만나겠다고 주말에 면회를 옵니다. '댁의 아드님은 외출, 면회 할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하면 땅바닥에 주저 앉아 버립니다. '저 남해안 섬마을에서 배타고 기차 타고 이틀씩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못보고 간다니 말도 안됩니다. 무조건 만나게 해주세요'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 어떤 희생도 마다 하질 않는 부모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어떤 보상을 받기위해 보답 받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보상을 기대하고도 그렇게 까지는 할 수 없는 '자기 희생의 사랑'. 이것이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짐이 된다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 역시 희생적 사랑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식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 좀 더 해 드리고자 할 때 '한사코 거절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진 않습니까?' 행여나 조금이라도 자식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하여 늘 말씀 하시길 '괜찮다', '오지 마라', '얼마나 힘드냐?' 하면서 힘을 덜어 주려고 애쓰시는 부모님 모습. 여기에도 우린 큰 사랑의 한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1) 오로지 자식 건강하기만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육신 건강한 것은 자기자신을 위한 것 일뿐 아니라 부모님께 대한 효도차원에서도 '의무'사항이라는 걸 아십니까?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되는 '어머니 마음'이란 노래 가사 중에는 2절 가사가 이러합니다. '어려 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 중에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차 조심해라' 소릴 안 들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식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큰 소리로 '야! 길에서 절대 뛰지 마라. 차오는가 잘 보고'라고 외치게 되고. 그리고 안전하게 돌아 올때 까지 계속 걱정되는 경험을 해 봅니다. 경상도 사나이들은 과묵하기로 유명 합니다. 살갑게 하루 일을 아내에게 일일이 보고 하지도 않고 하루에 딱 세 마디는 한다는 우스게 소릴 들었습니다. 퇴근해서 '밥묵었나?', '아는?', '자자' 한다는데 그 묵뚝뚝한 사나이들도 '아는' 챙기는 걸 보면 어버이 마음은 다 똑같은걸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함께 모시고 사십니까?', '멀리 지방에 계십니까?' 아니면 '먼저 하늘 나라에 가 계십니까?' 어디 계시든 그 분들의 소원은 '자식 이 건강 하다는 소식'을 듣는 일입니다.

2) 내 자식 만큼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당당한 구성원이 되어 주길 원하고 계십니다
늘 귀에 못이 박이도록 '공부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이 사회의 한 부분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남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길 진정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딜 가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일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임을 잊지 맙시다.

3) 무엇보다 형제간에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에서 부모님이 원치 않는 일 중 '결코 자식에게 짐 되길 원치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 모시는 일이 서로에게 짐이 되기에 '큰 아들만 자식이냐'하고 '우리 형편을 알면서 그럴 수 있느냐' 하며 형제간 화목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불효 중 불효가 바로 이 모습이라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좋았던 형제 간이 왜 사이가 나빠집니까? 자기들 위해 다 희생하신 부모님을 생가지 못하고 지금의 자기 입장만을 내세우다가 다툼이 있기도 하고 세로 서먹 서먹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이건 단지 '누구 한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도 곧 늙어 자식들 의지해야 할 때 가 온다는 걸 모르는 철없는 모습 때문입니다.

나 건강한 것이 효도요, 내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효도라면 형제 간에 서로 우애하고 양보하고 돕고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도 효도 중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 소천 하신 후에 지금 그 앞에서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하고 울고 불고 할 가능성이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형제간 회개하고 정답게 지내십시오. 그것이 지금 당장 시작 할 수 있는 효도입니다. 형제간 뿐만 아니라 부자지간 사랑하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것이 효도주의 큰 효도입니다. 결국은 부모에게 잘하는 길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자식입장에서 늙으신 부모님께 걱정거리 안겨 드리는 일이 가장 큰 불효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혼자 저절로 이 땅에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모가슴에 못을 박고 상처나 실망감에 안겨 드리기 않은 자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오늘부터라도 그 상처 위로해 드리고 '최선을 다해 다시 잘 사는 모습.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이' 잘 사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서 참 많은 장례식을 집례 해 보았습니다. 때로는 믿는 부모가 돌아가셔서 목사가 예배는 인도 하는데 '자식들은 전혀 믿지 않는'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생전에 열심히 믿으셨으니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평소 원하시던 대로 예배하며 기독교식으로 하자는 경우입니다. 소천하신 부모님 앞에 눈물을 쏟는 자녀들에게 목사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순간 당신들의 어머니(아버지)께 당신들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습니까? 눈물 쏟으며 몸부림 치고 '어머니 일어나세요! 그냥 그렇게 가시면 안돼요. 제가 단 한번만이라도 어머니 안돼요 눈 좀 떠 보세요' 한들 그분이 기뻐하겠습니까?

4) 자식의 영혼이 잘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본문 요삼 1:2-4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라'라고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앞에 해외 여행 티켓이 무슨 소용이며, 산해 진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효도는 그분이 원하시는 걸 해 드리는 것이 참 효도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못 드셔 보신 것.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하신 곳을 많이 남겨 두신 채 떠나가십니다. 그걸 생각하며 고생만 하다 가신 부모님 앞에 엎드려 '불쌍한 우리 아버지, 불쌍한 우리 어머니'하는 건 아직 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본 그 멋진 곳에 못 가 보시고 가신 부모님을 불쌍한가 한다면 부모님이 가 계신 그 천국에 못 가게될 자식을 보고 계신 부모님은 그 자식을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고 계실까요? '영적효자'가 되십시오. 천국계신 부모님 다시 뵈올 수 있는 자식이 되어 잘 믿다가(신앙생활) 하나님 나라 가는 게 효자입니다. 혹은 '난 비록 그 곳에 못 갔으나 누군가 내 자식에게 이 말 만큼은 꼭 전해 주었으면'하는 부모 심정을 알고 천국 백성되기를 노력하고, 예수 잘 믿고 하나님 나라 가는 자녀가 진짜 효자입니다.

자식의 영혼이 잘되길 그렇게도 원하시는 보모님을 생각하여 참 효자되는 길을 걷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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