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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지혜 세상의 지혜 (약 0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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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을 치른 자녀들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기 위해 기도중에 있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일본에는 입학을 위한 신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입시철이 되면 많은 학부모들이 이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합니다.

우리 나라 학부모들의 마음도 같을 것입니다. 다들 자기 자식이 좀더 똑똑해지고 지혜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가 신동이었으면 좋겠고, 영재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아이는 굉장히 착하네요’라는 말보다 ‘이 아이는 굉장히 똑똑하네요’라는 말을 듣기 원하실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아홉살짜리 소년 아인슈타인’이란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홉살 짜리 소년이 미국의 로욜라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학공부가 쉽지 않을텐데도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 소년의 성적표는 거의 A학점이랍니다.
왜 모두들 이처럼 지혜를 부러워하고, 원하는 걸까요? 지식과 총명이 있으면 성공하기 쉽고 지도자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 지도자가 된 것처럼 곤란한 일이 없습니다. 지도자는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명철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을 향한 경고
그러나 오늘 우리는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이 말씀은 3장 1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혜’는 유대인들이 선생들에게 특별히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총명이란 말도 지도자를 칭한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너희 중에 선생과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느냐? 참된 지도자는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우선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자기도 속기 쉽습니다. 위선의 죄를 짓기 쉽습니다. 참된 믿음은 행함이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돕습니다. 다시 한번 13절을 보십시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선생되고 싶은 자가 있다면 행함을 보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해보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좋은 말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착하게 삽시다’, ‘올바르게 삽시다’, ‘서로 도우며 삽시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매월 마지막 주일은 구제봉사주일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만든 날인데, 우리는 그냥 지나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관심만 있으면 도울 수 있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은혜를 받습니다. 처음 그 사람들을 도울 때 우리는 왠지 모르는 우월감을 갖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돕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못한 형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그런 우월감은 사라집니다. 현장에 가 보면 도움을 받는 분들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지 모릅니다. 평소에 ‘내가 착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보다 잘 산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나보다 더 선하게 사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신도 선해지고 믿음도 더해집니다.

얼마 전에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천호동에서 구두를 만드시는 분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분은 오른팔이 없었습니다. 왼팔만으로 장애인을 위한 구두를 만드시는 분이었습니다. 정상인을 위해 구두를 만들면 하루에 2백켤레를 만들수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구두는 네 켤레 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형편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장애인을 위해 구두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구두를 살 수 없는 장애인에게는 무상으로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구두를 만드시는 이런 분을 보실 것입니다.

자랑하지 말라
우리가 긍휼사역 현장에 가서 선한 일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해야 겸손해 집니다. 겸손과 온유가 없는 지혜는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대부분 지혜가 있으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선을 행해보면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선생이 되려는 자들이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3장에는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지혜와 총명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만 더 똑똑하고 지혜로우면 우리는 얼마나 교만해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존경받고, 칭찬받고,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 지성인들이 범하기 쉬운 것이 자랑하는 죄입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승부욕이 강합니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이 칭찬받고 존경받는 것을 못견딥니다.

세상 사람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저 교회가 하니까 우리 교회도 하고, 이 사역이 잘 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일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헌금도 경쟁적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봉사도 경쟁심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거듭나지 못했을 때는 누가 더 큰 사람인지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더 일을 잘하고 선한 일을 하는지 경쟁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유명한 성자가 있었답니다. 이 사람에게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도 하나님 앞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들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돈, 여자, 명예 등으로 유혹했지만 절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마귀 대장이 성자에게 가서 한 마디 했더니 성자의 얼굴색이 변하더랍니다. 그 말은 ‘네 동생이 교회의 주교가 되었다’였습니다.

내 형제라도 나보다 더 잘될 때는 시기심이 발동하고, 그 안에서 미움이 발동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왜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선의 죄에 빠지게 돼 있습니다. 있는 것 가지고 경쟁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발돋움을 해야 하고, 결국 없는데도 있는 것 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거짓말하고 진리를 거스르게 되어 있습니다.

살리는 지혜, 죽이는 지혜
존경받기 원하고, 명예와 직위를 얻기 원하면 반드시 교만의 죄와 위선의 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가짜 박사학위 소동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남들에게 존경받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유명한 고고학자 ‘후지무라’가 거짓발굴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유물을 묻어놓고 발굴한 것입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유물은 나오지 않는데 학계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이런 일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하지도 않은 것을 한 것처럼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된 자로서 존경받기 원하고 대접받기 원하는 숨은 동기가 15절에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그 마음에 시기와 다툼이 있고, 진리를 거스리고 거짓과 위선이 있는 사람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서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남보다 돋보이기 원하고, 칭찬받기를 원하고, 자랑하기를 원하는 우리 마음 속에 이러한 지혜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습니다. 일처리를 놀랄만큼 깔끔하게 하는 사람, 맨손으로 무엇을 하든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혜의 특징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혜는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세상에서 지혜있는 사람이 양보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 손해보지 않습니다. 절대로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내고야 맙니다.

세상에는 많은 죄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짓는 죄가 사기죄입니다. 사기죄로 교도소에 가 있는 사람들 중에 머리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치고 선한데 지혜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악한데는 지혜로우면서 선한 일에는 어리석습니다. 남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세상의 지혜는 정욕적입니다.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무정하고 냉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봐 주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을 철저히 짓밟습니다.

열매로 판단하십시오
이런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지혜의 근원은 마귀입니다. 악하고 교활하고 분쟁과 술수와 음란과 더러운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지혜는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아니라 죽이는 지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뱀에 대해 창세기 3장 1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교한 사람은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기 쉽습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지혜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세상적이요 정욕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을 열매로 맺습니다. 아는 것이 화근일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좋으련만, 아는 것이 많아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분쟁이 있고 소란이 있으면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이메일이나 유인물을 은밀히 만들어 배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 맞는 말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 중에 맞는 말은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분쟁이 있고 소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혀를 보고 따라가지 마십시오. 그의 열매를 보고 따라가십시오. 화평의 열매, 거룩의 열매, 의의 열매를 맺는지를 봐야 합니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 같은데 시끄럽게 하고 분쟁을 만들면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좋은 머리를 하나님을 위해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수록 선한 일에는 미련한 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를 17, 1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7백명의 임직 후보자들이 훈련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선생이 될 것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식을 가지고 시기와 다툼과 분쟁과 요란케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훈련받고 더 많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 지식을 가지고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고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주님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더욱 지혜롭고 총명케 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지혜와 총명으로 성결의 열매,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참된 지혜자요 스승이요 지도자입니다.

참된 지혜의 특징
참된 지혜의 일곱 가지 특징이 17절에 나와있습니다.
첫째는 성결입니다. 참된 지혜의 특징은 성결입니다. 겉과 속이 같습니다. 투명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같습니다. 동기가 깨끗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동기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화평과 관용과 양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지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지키다가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내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것을 참된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순’은 무조건 고분고분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진리를 위해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긍휼’입니다. 긍휼한 마음으로 일을 할 때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는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잘 못한다고 해서 힘들게 하는 것은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 편은 잘 봐주고, 상대편은 억압하고 힘들게 합니다. 그것은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참된 지혜는 편벽이 없습니다. 언제나 공정합니다. 나와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공정히 대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한 마디로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의의 열매가 가득한 화평입니다.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참된 화평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게 좋은 거라며 불의와도 타협합니다. 화평 때문에 의를 희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화평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한 내용을 암기한다고 이런 열매들이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 맺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나무가 사과나무라면 사과는 그냥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참된 지혜를 갖고 있다면 이런 것은 자연히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 노력으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이런 것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참된 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을 상기해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십니다. 참된 지혜를 구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참된 지혜가 더해 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참된 지혜의 결정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무슨 일을 겪든지 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동행할 때 우리 삶에 지혜의 열매가 가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혜있는 사람과 동행하십시오. 성도의 교제는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본받고 싶은 사람을 정하십시오. 그분 처럼 사십시오. 그분의 열매를 보고 따라가십시오. 참된 지혜를 사모하십시오. 금보다 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참된 지혜가 가득해서 선한 열매를 하나님께 날마다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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