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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히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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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도 변하지 않으시고 인간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입고 사는 옷과 먹는 음식과 주거 환경은 달라졌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든지, 약할 때에 넘어지기 쉬운 모습이라든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 나타난 인물들이 이렇게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노하시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러기에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나타난 다양한 경우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요,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요,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성경이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책이다.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게로서로다.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어제 호남선교대회에 가서 전도지를 나누면서 전도를 했다. 그런데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를 데면서 귀찮다는 식으로 갈 길을 재촉해서 간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은 멀리서 오셔서 수고하신다고 따뜻하게 이야기 한다. 우리 집에 시원한 음료수라도 드리고 싶다고 그러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하나님은 누구를 도와 주시겠는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도와 주시겠는가? 분명히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를 하나님은 도와 주신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체적으로 받을 수 있겠는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이다. 수원지에 물이 많아도 그 물이 연결되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가 없다. 분명히 통로가 잘 연결되어야 나에게까지 전달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는 통로이다. 그러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간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흘러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벼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확기가 되었다. 들판의 황금빛 곡식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 드렸는데 어느 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메뚜기 떼가 밭을 점령하고 낱알을 파먹기 시작했다. 손이나 막대로 메뚜기를 잡아보았지만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교회 종이 울렸다. 주일도 아닌데 왜 교회 종이 울릴까 의아해 하며 하나둘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종을 친 분이 말하기를,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어서요!' 그와 동시에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이 많은 갈매기 무리가 날아들어 메뚜기 떼를 남김 없이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갈매기들은 포식을 했던지 대변까지 하고 떠났다. 청교도들은 메뚜기 걱정을 덜었고, 이듬해 농사까지 풍작이었다. 갈매기들의 분뇨가 비료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매기를 통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래서 갈매기를 펜실베니아 주를 상징하는 새로 정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하심을 기념하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들어가는 통로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흘러들어가는 통로이다. 어느 주교가 말하였다.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할 때, 얼마나 많은 우연의 일치가 발생하는지 놀랍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고서 정말로 공감했다. 교회가 이전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다. 누가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정말로 그 사람이 나타나서 “목사님, 제가 함께 돕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볼 일이 있어서 갑자기 나타난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시는데 우리가 느끼기에 얼마나 많은 우연의 일치가 발생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방법이다.

테레사 수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았다. 9천명까지 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와서 “테레사 수녀님, 먹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님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9시쯤 빵을 가득 실은 트럭이 왔다. 정부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주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날은 갑자기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해서 빵이 전부 그 수녀님의 집으로 왔다. 하나님이 학교들을 닫으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 집 사람들이 굶지 않게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날은 처음으로 우리 집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빵을 마음껏 먹은 날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세밀하심을 볼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흘러들어간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는 거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때에는 내가 일하는 것이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나 귀한 진리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높은 산이 내 앞 길을 가로 막는 것을 바라볼 때가 있다. 내 앞에 여리고 성이 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다. 내 앞에 골리앗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산을 평지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인가? 어떻게 골리앗을 물리칠 것인가?

성경을 보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산더러 들려 바다에 빠지우게 하리라.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라.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산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앞에 놓인 산에 초점을 두지 않고 주님께 삶의 초점을 맞춘다.

어느 분이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 힌두교 지도자가 선교사를 초청해서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선교사와 그 아들이 함께 힌두교 지도자의 집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느닷없이 그 힌두교 지도자가 품에서 칼을 꺼내어 선교사를 사정없이 찔렀다. 아들이 아버지의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가 아버지를 품에 안고 있는데 그 피가 오두막집 바닥으로 콸콸 쏟아져 나왔다. 결국 사흘 후에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유언으로 남긴 말씀이 “그 사람에게 말해다오 그를 용서한다고 그리고 네 어머니를 잘 모시고 이 사역을 계속 해 나가다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한다. ” 그 후로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아들은 열정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여 1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하고, 병원도 세우고, 그 외에 다양한 사역을 감당했다. ‘

힌두교도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게 했다. 앞에 놓은 큰 산이다. 이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면 그 아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중에서도 그의 초점은 산에 두지 않았다. 그의 초점을 주님께 두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내가 해결하려면 내가 일하지만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이 일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에 12명의 정탐군이 그 땅을 조사하러갔다. 그 중 10명은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그 도시들과 군대와 거민들이 어찌나 큰지 당신들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다른 곳을 찾아보는게 낫겠습니다. ” 하지만 두명은 돌아와서 이렇게 말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분의 힘을 의지하여 나아갑시다. ” 열명은 산의 크기를 보고 뒷걸음 질쳤고, 두 명만이 그 산을 옮기시는 분의 능력을 바라보았다.

앞에 문제가 있을 때에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 산에 두고 살아왔던 초점을 주님께 바꿔보자.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면 내가 일하지만,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큰 소리를 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한다. 군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내려가서 저 자와 싸우지 않을거야. 그는 키가 2미터가 넘잖아. 저 갑옷을 봐! 창 좀봐!”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보세요. 네가 가겠습니다. ” 많은 군인들의 초점은 골리앗의 외모, 골리앗의 창과 칼을 바라보면서 놀라고 있었지만 다윗은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다.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앞에 놓인 산이 무엇이며 앞에 놓인 홍해가 무엇이며 앞에 가로막은 골리앗이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산에 초점을 두면서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아무리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그 문제의 초점을 주님에게 두고 주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독일이 통일국가가 된 이후 이런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 성도가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그는 이 말씀에 의지해 베를린 장벽 앞에서 담대하게 외쳤다. “무너져라!” 하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는 낙심했다. 그러나 곧 그에게 깨달음이 왔다. 예수님은 분명히 “네가”가 아닌 “너희가”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는 믿음의 동료들을 모아서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장벽 앞에서 함성을 질러 보았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망한 채 다시 말씀을 묵상했다. 말씀에는 “당장 옮겨질 것이요”가 아니라 “옮길 것이요”라고 미래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때와 기한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구나!’ 그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드디어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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