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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오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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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십시오(5:1-11)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갈 때 수단과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사는 데 부족함 없이 넘치게 채워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설교는 여러분이 많이 듣던 말씀입니다. 요점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셔서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드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고기를 얼마나 잡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고기를 어떻게, 얼마나 잡느냐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느냐,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기적

 

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말씀에 목마른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쌌습니다. 말씀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또 들으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옛날처럼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충격을 받습니다. 성령 체험한 사람은 이성으로, 합리성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살 때 이성과 상식과 합리성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상식이 기적을 만듭니까. 이성이 어떻게 기적을 만듭니까. 이성을 초월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성의 눈으로 보면 이성 이하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굶주린 영혼, 목마른 영혼, 불쌍한 영혼들을 보고 있었고, 그들을 위해 함께 일할 동역자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 분담을 해야 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떻게 교회의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설교하고 나서 일본에 가면 이제 부목사님들과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역할 분담을 하고 교회 일을 할 것입니다.

저는 어젯밤에 교회에서 참 좋은 모습을 봤습니다. 연세 많으신 한 권사님이 몹시 아팠었는데 어제 교회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권사님이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깨끗해집니다. 국민들이 나라를 비판하고 욕만 하면 나라가 잘 됩니까. 서로 화내고 사나워집니다. 몰라서 비판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묵묵히 골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고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가지 긁는다고 해서 절대 남편이 변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남편을 만드신 분에게 고자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찾아가서 남편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솔로형과 협력형

 

2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왔을 때 물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말씀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는 일과 소수지만 내 일을 감당해야 될 사람들을 본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누가 그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신 것입니다. 2,000년 동안 수많은 인류가 살다가 죽었는데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할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같이 하는 것입니다. 동역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솔로형은 자기가 대장이 되고 모든 것을 지배해야 살맛이 납니다. 또한 협력형은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주고, 디딤돌이 되어주고, 2인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기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집스러워서 항상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리더십은 지배력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었는데, 어부들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였습니다. 물때가 언젠지,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 언제 그물을 던져야 고기가 잘 잡히는지, 평생 그물을 던졌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어부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의 모습과 같습니다. 성공을 위해 나갔지만 얻어지는 것은 결국 실패뿐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망하려고 사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믿고 시작하지만, 막상 하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아 허무함과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 중 시몬의 배에 올라타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곤 배 위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은 배 두 척을 발견하고 시몬의 배에 올라가셔서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 앉아서 군중들을 향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집니까. 교회에 교인들이 많이 왔는데 설교자가 교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강대상을 만들고, 강대상에서 청중들을 향해 설교하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무리 속에서 설교했다면 모두에게 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리를 조금 두고 다 들을 수 있도록 설교한 것입니다.

설교 후 예수님의 관심은 베드로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께서 시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물이 깊은 곳으로 나가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아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는 방법이었습니다. 제자가 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을 전했고, 두 번째로 엉뚱한 질문을 하십니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다시 던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리한 부탁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전공은 고기 잡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전공은 목수였습니다. 목수가 어부에게 고기 잡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전공을 건드리면 가장 기분 나빠 합니다. 밤새도록 해도 실패했는데 예수님이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시험에 들고 당황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순간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생각을 빨리 바꿨습니다.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종의 태도

 

5절을 읽겠습니다.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려보겠습니다.’”

시몬은 우리도 안 해본 것이 아닙니다. 밤새도록 했습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이 중요합니다. “말씀대로라는 말은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순종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어도 순종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순종이란 감정이 아니고 의지입니다. 분위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감정과 분위기가 자신의 생각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냥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랑도 의지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로 결정하지 않고 결혼하니까 자꾸 이혼할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죽어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순종이란 우연이 아닙니다. 선택입니다. 우연히 어떤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그런 상황이 됐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것입니다. 또한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순종이란 기다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이라는 것은 과거의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의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입니다. 도전의식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과거의 경험을 보고 판단합니다. 과거는 상처뿐입니다. 우리는 늘 과거를 만지작거립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또 끌어다 생각하고 묵상합니다. 그래서 현재가 괴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의 좋고 나쁜 사건을 모두 끊어버리십시오. 그것이 내 인생의 미래를 만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결단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길이 열리고 복이 옵니다.

 

말씀에 순종하라

 

6~7절을 읽겠습니다. “어부들이 그 말씀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들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들이 와서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채우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불가능이 가능해졌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돈을 따라다니면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돈이 여러분을 따라오게 하십시오. 복이 여러분을 따라오게 하십시오. 비굴하게 살지 마십시오. 넉넉하게 사십시오. 은혜롭게 사십시오. 직업이 없다고 말하지만 기도가 없기 때문에 직업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안 보이는 직업이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게 됩니다.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기회입니다. 지금이 돈을 벌 때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때입니다. 순종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적이 일어나느냐 하면, 물고기가 엄청 많아서 옆에 있던 배를 불러서 그 배에 물고기를 실었는데도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됩니다. 여러분, 이런 복을 받으십시오. 내 잔이 간신히 차는 게 아니라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어려운 때에 모든 성도들이 부요해지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물이 잔에서 넘쳐흐르듯이 복이 여러분에게 강물처럼 쏟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북한도 넉넉하게 돕고 열방을 위한 선교도 넉넉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제게서 떠나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자 배가 차고 넘칠 만큼 물고기가 잡히는 기적이 일어나는데, 이 기적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이 광경을 보고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을 때는 안 됐지만, 안 될 것 같은데도 주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무섭습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기 실존의 모습에 이제야 눈을 뜬 것입니다. 어느 날 감겼던 눈이 떠지고, 듣지 못했던 귀가 들리고, 차디찬 가슴이 뜨거워지고 두근거리게 됩니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소경입니다. 세상 소리는 잘 들어도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막혔던 귀가 열리는 순간 충격을 받게 됩니다.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주여,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첫 번째 말씀을 듣는 단계, 두 번째 순종하는 단계, 세 번째 기적을 경험하는 단계, 네 번째 두려움을 느끼는 단계에 이릅니다. 자기가 죽는 경험을 하는 단계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부활의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8:34).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캄캄한 밤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새벽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절망은 끝이 아닙니다. 새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포기가 있을 때 나타나는 구원

 

9절을 읽겠습니다. “베드로와 그 모든 동료는 자기들이 잡은 고기를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나를 보고 내가 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엉터리로 살았는데 어느 날 예수님을 믿고 나자 스스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살지 못합니다. 예전 같으면 조금만 화가 나도 분노를 표출하는데 어느 날 평강이 찾아오고 은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기만 놀란 것이 아니라 동료들도 놀랍니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놀라고 가족이 놀랍니다. 삶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거듭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 나갔을 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이며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절망이 있을 때 사명이 있습니다. 자기 포기가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입니다. 절망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인생의 목적이 달라졌다.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은 단순히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잡은 물고기를 먹으면 또 잡으러 가야 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우리의 직업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목을 매고 돈벌이에 목을 맵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아서 돈벌이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하는 것, 직업을 갖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늘의 양식으로 산다는 말씀은 빵을 먹지 말고 말씀만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빵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빵도 먹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직업이 중요하지 않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차고 넘치도록 잡아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먹을 것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지만 거기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통 때는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시간이 되면 돈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1~3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굶기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선교단체는 선교사들에게 돈을 주지 않고 그냥 아프리카 한복판에 내려놓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은 하나님은 이틀 이상 굶기지 않는다고 간증합니다. 반드시 살 길을 주시고, 사람을 보내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넉넉히 사역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이나 직장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먼저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두 가지가 나타났을 때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할 것입니까. 여러분은 손해를 볼지라도, 직업을 잃어버릴지라도 사람 살리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인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갈 때 수단과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직업은 수단입니다. 돈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구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사는 데 부족함 없이 넘치게 채워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복이 차고 넘쳐서 옆에 있는 배까지 불러다 가라앉힐 만큼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올해도 이런 복을 받으면서 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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