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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벽 복구 후 말씀 부흥 (느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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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복구 후 말씀 부흥(8:1-18)

 

말씀과 찬양이 함께하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예배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부흥이고 개혁입니다.

 

말씀 묵상

 

성벽 재건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도비야, 산발랏 그리고 여러 족속들이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말씀의 중심에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적들은 물러갔습니다. 그때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니까 뭔가 허전했습니다. 만족스럽지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진이 빠지도록 성벽을 재건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적들이 물러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 문앞 광장에 일제히 모였습니다(1).

그들은 왜 허전했을까요.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는데도 마음이 허전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없어서 허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져서 광장 앞에 모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학사 에스라가 내가 말씀을 읽어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성들 스스로 요청했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느헤미야나 레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때나 말씀할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어느 때나 전도할 준비가 돼있고, 어느 때나 말씀을 가르칠 준비가 돼있는 사람입니다. 전기불이 있고 성경 읽을 만한 환경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데 만약 전기불도 없고 사방이 캄캄하고 막힌 곳에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외우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언제 어느 때나 말씀이 생각나면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말씀에 대한 목마름

 

1, 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곱째 달이 됐고 그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백성들이 물 문앞 광장에 일제히 모였습니다. 그러고는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일곱째 달 1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남녀 회중과 알아들을 만한 모든 백성들 앞에 율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성벽 재건 때문에 해가 뜰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일했기 때문에 말씀을 듣거나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52일 동안 쌓이다 보니 백성들의 마음속에 말씀에 대한 욕구가 샘물처럼 솟아오른 것입니다. 말씀은 아무나 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서 전문가인 학사 에스라에게 읽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언제 어느 때나 성경 말씀뿐 아니라 설교를 DVDCD로 들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홍수가 났기 때문에 그야말로 먹을 물은 없습니다. 홍수로 인해 모두 흙탕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흙탕물을 오래 먹다 보면 사람들 마음속에 생수가 그리워집니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 몸이 힘들어지고 영혼도 피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기쁨이 있는 예배

 

3절을 읽겠습니다. “그리고는 물 문앞 광장에서 남녀와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율법을 큰 소리로 낭독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영적인 샘물을 찾은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갈증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어달라는 백성들의 요청에 학사 에스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준비된 책을 가지고 와서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 가봤습니다. 예배드리는 형식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제사장 옷을 입고 말씀을 읽을 때는 큰 두루마리를 두 사람이 들고 있었습니다. 제 키 정도 되는 두루마리였는데, 말씀을 양피지에다가 직접 손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경건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에스라는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었습니다. 설교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읽은 것입니다. 이른 아침이면 오전 6시 정도입니다. 정오까지 읽었으면 6시간 동안 서서 말씀을 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 목사님의 설교가 30분만 넘어가면 몸을 비틀고 시계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고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말씀을 읽자마자 일제히 일어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동독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동베를린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데 무려 3시간 동안 드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유한 환경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성전이 아름답다고 해서 예배가 잘 드려집니까. 의자가 좋다고 예배가 잘 드려집니까.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흙탕물이 아닌 영적인 샘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

 

4, 5절을 읽겠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그 행사를 위해 특별히 만든 높은 나무 강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맛디댜, 스마, 아나야, 우리야, 힐기야, 마아세야가 서고 그 왼쪽에는 브다야, 미사엘, 말기야, 하숨, 하스밧다나, 스가랴, 므술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백성들 위에 서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책을 펼쳤습니다. 그가 책을 펴자 백성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에스라의 오른쪽과 왼쪽에 있던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 당시 말씀을 듣는 광경이었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거기에 모인 청중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서서 찬양하다가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모두 앉습니다. 그들은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만큼 갈급했고, 그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님에게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입니다. 또한 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아멘하고 대답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납작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6).

말씀을 보면 그냥 율법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온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또한 얼굴을 땅에 대고 납작 엎드려 경배했다는 것은 진정한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내가 예배드릴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과 찬양이 함께하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예배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점점 부패해진 이유는 예배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설교가 아닌 만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웃고 박수치며 좋아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의 쇼가 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말씀은 듣지만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날

 

7, 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아, 바니, 세레뱌, 야민, 악굽, 사브대, 호디야, 마아세야, 그리다, 아사랴, 요사밧, 하난,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거기 서 있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 책, 곧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그 읽는 것을 백성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었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줬지만 그것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레위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온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날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순간 그 말씀이 가슴을 치고 영혼을 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에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했던 것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와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들에게 이 날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춤추고 찬양하고 박수치면서 슬픈 얼굴이 변해서 기쁜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제가 예배드리다가 가장 감동받은 때는 성가대에 서 있던 사람 중에서 한 성도가 울면서 찬양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입니다. 손을 들고 눈물만 뚝뚝 흘립니다. 또 챔버 중 첼로를 연주하는 한 자매가 연주를 하지 못하고 활을 들고 찬양하는 것을 볼 때 큰 감동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예배자들로 인해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이 부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드웨어이고, 진짜 부흥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말씀의 부흥입니다. 그리고 춤추며 찬양하고 기뻐하며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라

 

레위 사람들도 온 백성들을 진정시키며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1). 또한 느헤미야는 이날은 우리 주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다라고 말합니다(10).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가서 먹고 마시고 먹을 것을 나눠 주며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자기들이 들은 말씀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을 보면 지옥 가기 딱 알맞다고 생각하는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되면 눈물을 흘리다가 그 눈물이 변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 내가 구원받았구나. 이게 웬 은혜인가. 웬 사랑인가. 나 같은 죄인을 주님이 살리셨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사인 에스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것은 지도자는 언제 어느 때나 말씀을 전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백성들 스스로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했고, 학사 에스라는 그 요청에 즉각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교인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서 주일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설교를 준비할 때 반복해서 읽으면서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빨리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주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야생활

 

13절부터 15절까지 읽겠습니다. “그 이튿날 온 백성들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모여 율법의 말씀을 들으려고 학사 에스라를 둘러쌌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것으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절기 동안에 초막에서 살라는 것과 산간 지대로 나가서 올리브 나무와 야생 올리브 나뭇가지, 은매화 나뭇가지, 야자 나뭇가지와 또 다른 활엽수 가지를 가져와 기록된 대로 초막을 지으라하는 말씀을 그들이 사는 여러 마을과 예루살렘에 선포하고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쨋날에는 중간 지도자들이 모여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초막절 얘기를 듣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갔을 때 초막생활을 했습니다. 40년 동안 텐트를 치고 험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전쟁을 하다 보니까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를 키워주신다는 약속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안심하고 삽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에스라가 초막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일곱째 달 절기 동안에 초막에서 살라는 것과 산간 지대로 나가서 올리브 나무와 야생 올리브 나뭇가지, 은매화 나뭇가지, 야자 나뭇가지와 또 다른 활엽수 가지를 가져와 초막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잠자리가 불편했습니다. 좋은 침대에서 자다가 땅바닥에서 자라고 하면 매우 피곤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룩이 없는 쓴 나물을 먹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생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7일 동안 말씀만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8일째가 되면 성전에 모여서 잔치를 하는 것이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이래로 초막절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지켰지만 적당히 지킨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지키라고 하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나오고, 무교병과 쓴 나물만 먹으라고 하면 형식적으로 먹고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힘들었던 광야생활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과 역경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감이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과거의 고생을 모두 잊어버렸을까요.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레위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 우리가 예배를 무시했구나. 절기를 무시했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각자 마을로 돌아가 곳곳에서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진짜 영적인 회복은 전통적인 신앙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신앙에 묶여 있으면 새롭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전통과 형식을 깨고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입니다. 오늘날은 부흥과 개혁이 절실한 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도 설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습니다. 지난주에 들은 설교나 오늘 들을 설교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희망이 없습니다.

초막절에 대한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밖으로 나가 가지를 주워 와서 초막을 지었는데 각자 지붕 위에, 뜰 안에, 하나님의 집 뜰 안에, ‘물 문앞 광장에,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지었습니다(16).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법대로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광경을 상상해보십시오. 예루살렘 광장이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이게 부흥입니다. 19세기의 위대한 평신도 부흥 설교자 무디(Moody)가 부흥회를 할 때도 그랬을 것입니다. 미국에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지고 예언하고 귀신이 나가는 광경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이란 말씀의 부흥을 의미하고 개혁이란 전통과 형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본질로 돌아가라

 

제가 온누리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주변에 있는 몇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우리가 진짜 교회 한번 만들어봅시다라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건물도 없어 지하실을 빌려 사용할 때입니다.

그래서 남녀 성도 할 것 없이 밥도 지어먹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교회가 하고 있는 전통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낼 때는 헌금 바구니를 돌리지 않고 맨 뒤에 헌금함을 놔뒀습니다. 예배시간에도 누가 어떤 헌금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헌금은 각자 은혜받은 대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형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 개척을 준비하는 동안에 호칭을 좀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에 형제, 자매로 불렀습니다. 1년 동안 골프와 TV 시청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가운도 안 입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회를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게 25년 전입니다. 전통과 생각을 모두 바꾼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아주 좋은 나무로 만든 장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자를 본당에 놓아두니까 전도집회나 축제를 열 때 힘들었습니다. 미국 윌로우크릭교회에 가봤더니 모두 개별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 교회의 의자를 모두 바꿔버렸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던 장의자는 시골에 있는 교회 중 원하는 교회에 모두 나눠 줬습니다. 그리고 교인들한테 교회를 10년 안에 망가뜨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회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의자를 교체하고 천갈이도 수없이 했습니다. 카펫이나 대리석이 모두 닳을 만큼 교회를 사용해야 합니다.

전통을 모두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이고 개혁이기 때문입니다.

 

목숨 걸고 땅 끝까지 복음 전해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샘물 같은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사모하면 샘물 같은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영적으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단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믿는 자들을 집어 삼키려고 합니다. 이단들은 예수 믿는 사람만 전도합니다. 어느 이단에서는 아예 온누리교회를 첫 번째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교회 성도들을 데려가려고 합니다.

예전에 대전 온누리교회에 피아노를 잘 치는 자매가 들어와서 2년 동안 엄청나게 봉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그 자매를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이단본부의 문서를 보게 됐는데 거기에 그 자매의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단에서 온누리교회로 파송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계속 빼내 가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형식에 매이지 말고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처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거십시오. 이것이 부흥이고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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