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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치유자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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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을 치유하는 일은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종교는 병을 치유하는 것은 종교적인 일이 아니라고 제쳐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치유를 하는 일은 점집에서 무당의 굿으로나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적 집집마다 굿을 하는 광경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굿하는 소리가 동네에서 들리면 주변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병을 치유하는 것은 병원에서만 하도록 되어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병원 이외에서 치유하는 일은 미신으로 내몰리거나 믿지 못할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 몸에 생긴 병을 치유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는 병들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병을 치유해 내는 일로 얼마나 큰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도 그 경험을 얻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에는 물론 신앙과 이런 신뢰의 권위는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병원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하나의 신앙화로 자리 잡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몸에 일어난 병의 일부를, 그것도 지극히 작은 일부를 고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인간의 몸을 하나의 생화학적 물체 정도로 여기고, 이론과 화학 반응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에 서 있는 것 같기만 합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병원에 갑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이 감기를 고칠 수 있다고 합니까? 고칠 수 없다고 발뺌을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감기라는 증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작 인플루엔자라든가 다른 병균의 침입을 막아주는 처방을 통해서 감기의 증상을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현대의학이 감기라는 것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몸에 병이 생기면 우선 병원을 찾습니다. 병원에 앉아 있는 의사가 우리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굳센 믿음으로 말입니다. 병원에 대한 이런 정도의 신뢰는 광신狂信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몸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설령 병들었다 해도 우리 몸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몸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찾아드는 그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방법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유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치유가 현대의학에서 가능할까요?
 치유란 곧 사람의 치유이고 그 몸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치유가 하나님 앞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병원 시스템에 끌려 다니며 광신하지 말고, 하나님의 치유의 한 부분으로서 병원이 존재함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과 묵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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