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나도 할 수 없어요

첨부 1




 어느 현인이 이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긍휼은 슬럼가를 탐방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깨어진 가정을 방문하여 일회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친구의 상한 영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까? 호되고 모진 고통의 늪에 빠진 영혼의 흐느낌을 느껴보았습니까? 그의 짓밟힌 영혼의 아픔을 당신 영혼의 아픔으로 여겨보았습니까? 그러고 나서, 그와 함께 앉아서 조용히 함께 울어보았습니까? 이것이 긍휼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일은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환호와 갈채를 받지 못합니다. “호되고 모진 고통의 늪”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짓된 영광을 얻기 위한 소일거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가장 자비로운 행동들은 결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이 그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되고자 할 뿐이기 때문에 돈다발은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마더 테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이 유일한 사례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행동들은 돈을 기대하지 않고 은밀하게 행해집니다.
 한 종군기자가 부상당한 병사의 다리에서 붕대를 풀고 있는 수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병사의 다리는 심하게 부패해 있었습니다. 피와 고름이 뒤범벅되어 나는 악취가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에 그 종군기자는 고개를 돌려 깊은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난 수억 달러를 준다 해도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수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도 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까? 이 일이 할 만한 일입니까? 루스 함스 콜킨(Ruth Hams Calkin)은 우리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을 잘 지적했습니다.

 주님, 당신은 제가 얼마나 불붙는 열정으로 주목을 받으며
 당신을 섬기는지 아십니다.
 당신은 제가 여성모임에서 당신에 대해 얼마나 열렬히 이야기하는지 아십니다.
 당신은 제가 친교모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십니다.
 당신은 제가 성경공부에 얼마나 진실한 열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대야에 물을 담아 매일 매일, 수개월 동안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에서 허리가 굽고 주름이 잡힌 노인들의 거친 발을 씻어줄 것을 요구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긍휼은 통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행동에 자신을 겸손하게 내어주기를 기뻐하는 열심을 요구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돌아가고,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그러한 일 앞에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 주세요”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보다 더 기본적인 것은 없으며, 이것보다 더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긍휼이어야만 합니다. 나는 위대한 설교자였던 고(故) 존 헨리 조웹(John Henry Jowett)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그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긍휼과 위로를 제일로 꼽겠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