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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화평(和平)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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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아 립브만(Joshua Liebman)의 베스트셀러인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사람이 젊은이에게 "그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첫째는 건강, 둘째는 사랑, 셋째는 재물, 넷째는 아름다움, 다섯째는 재능, 여섯째는 권력, 일곱째는 명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그는 "친구여, 마음의 평화가 없이는 이 모든 것들을 즐길 수가 없다네"라는 말로 충고했다고 합니다.

화평, 평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많은 재물이 있고 건강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하여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어느 마을에 가서도 축제처럼 즐겁게 살 수 있지만 마음에 불화가 있으면 아무리 풍요로운 곳에서도 불평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불리한 평화도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낫다.”고 했으며 콜리지는 “평화는 세상의 모든 축복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인류의 귀중한 가치이며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가 깨어지면 건강도, 사랑도, 재물도, 아름다움도, 재능도, 권력도, 명예도 담을 그릇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84세로 죽기 직전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했답니다. 그는 건강의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항상 “적당한 운동, 적당한 음식, 신선한 공기 그리고 마음의 평화인데 그 중에 제일은 마음의 평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장수 마을 훈자 사람들은 120세 이상을 산다고 합니다. 그들의 장수 비결은 마음의 평안에 있다고 합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이고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우리말로는 평화, 화평, 평안, 평강으로 번역되어집니다. 이 평화는 인류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정복자들은 물리적인 힘이 없으면 평화를 확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1.6%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얻은 것은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살상의 악순환만 이루어졌습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사는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양식있는 사람들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적 힘으로 평안을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의 덕을 잘 지키면, 무신론 실존주의자 까뮈는 인간이 서로 성실하게 산다면, 석가모니는 모든 마음의 욕심을 버리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적 힘으로 어느 정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아무리 비워도 비울 수 없고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평안도 없어집니다. 마음의 평안이란 단순히 감정 조절이나 적극적인 사고 훈련이나 명상, 마인드 컨트롤, 요가, 최면요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안을 누릴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48:22)"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하여도 죄를 짓고 감옥에 가있다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힘에 의해 평화, 평안은 확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 화목 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외쳤습니다. 방탕한 인생을 살다가 이 진리를
깨닫고 주님 품으로 돌아온 어거스틴은, "제가 주님 안에 안식하기 전에는 참된 평안이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물리적 힘이나 정신적 힘에 의한 화평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깨어지고 맙니다. 죄 용서함으로 오는 영적 평안은 감정의 문제로부터 오는 불안과 공포를 잠재워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란 평화로운 자이며, 평화를 만드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Broadus는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 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가 아니라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신앙인입니다. 평화의 위대한 힘을 알았던 성 프란치스코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섬기는 언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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