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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왕 칼을 지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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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16일에 우리 남한에는 군사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그 우두머리되는 사람은 1979년 10월 26일에 부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일부, 개정개역판)라는 내용의 성경 말씀을 기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력을 힘입어 자신의 무엇을 얻으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무력 때문에 망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겨레가 어려움을 당하게 된 데 있습니다.
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꾀가 많은 사람은 제 꾀에 넘어간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칼이든 꾀이든 사람이 오로지 그런 것으로써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면, 마침내는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다른 경우를 좀 더 생각해 보십시다. 돈이 많아서 돈에 기대고 사는 사람은 그 돈 때문에 자신을 망칠 수 있습니다. 건강하다고 해서 자기의 건강에 너무 자신만만하다가 바로 그 건강함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출신 가문이 든든하다고 해서 으시대다가 바로 그 가문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력과 경력이 남달리 좋은 사람은 그것 믿고 설치다가 다치기도 합니다.
기독교계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해 보는 놀라운 신비 경험을 자주 한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들먹이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수가 있습니다. 신학을 깊고 넓게 연구했다는 사람들은 바로 그 신학의 올무에 얽혀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수십 년의 목회 경력, 부흥사 경력을 무기로 휘두르다가 어려움을 겪는 교역자들도 더러 있지 않습니까?
이런 여러 경우에도 문제는 제 혼자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까지 망치고, 우리 사회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칼'이 있습니까? 그 '칼'을 이왕 지녔으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겨레를 살리고 세상을 살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쪽으로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런 '칼'이 없는 사람들은 그 '칼' 자신 사람이 그 칼을 잘 쓰도록 가르치고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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