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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못난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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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시장통 한길에서 사십대 젊은 사내가 탄 오토바이가 갑자기
수박 가게를 뒤엎고 자빠졌다. 앞뒤도 모를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시장 사람들은 저마다 욕을 해댔다. “저런 미친 놈, 어디서 초저녁부터 술을
처먹고…”, “저런 놈은 죽어도 싸다, 싸”, “귀신도 눈이 멀었지. 저런 놈
안 잡아가고.” 사람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나는 그 사내가 불쌍했다.
자빠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친 데가 없는지 살펴보는 내게, 오히려
욕을 하고 발로 차도 밉지가 않았다. ‘돈 많은 사람이었더라면 고급 양주 마시고
자가용 기사 불러서 타고 갔겠지. 오토바이 타고 다니겠나.’ 저렇게 되기까지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태 아침신문 조금 늦게
들어오거나 빠지는 날이면 먼저 짜증부터 내던 내가, ‘배달하는 학생이 몸이
아픈가? 혹시 사고라도? 아니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겠지’ 하며 먼저
걱정부터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걸기 싫던 내가 그 사람이 밤새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까닭은 무엇일까? 누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괜히 혼자 실망하던 내가
인정해주지 않을수록 마음이 가볍고, 칭찬해주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던
내가 핀잔하는 소리에 더 귀가 솔깃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마다 안타깝고 정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58년 개띠, 내 나이 마흔 다섯 살 즈음에….
-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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