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지리산 편지] 사랑의 수명(壽命)

첨부 1



2005-04-28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모르고 있는 말이 ‘사랑’일 것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온통 ‘사랑’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유행가 가락에도, 영화 제목으로도, 책 제목으로도 ‘사랑’ 일색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랑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말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두들 사랑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 첨단 심리학자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우리 마음에는 사랑의 그릇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 그릇에 사랑이 가득 채워져 있을 때는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비어 있을 때는 갈급함이 생겨나고 고통이 따른다고 지적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 배고픔 혹은 사랑 외침’이란 것이다. 숱한 부부들이 온갖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부들의 문제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뿌리는 한가지임을 알게 된다. 바로 사랑의 그릇이 비어 있는 탓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다툼이 부부싸움이다.

미국 코넬대학의 한 연구팀이 세계 37개 문화집단의 회원 5천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하여 조사한 바로는 남녀간의 사랑에는 수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수명이 18개월에서 길어야 30개월 정도라 한다. 그런데 남녀가 만나 몇 십년을 함께 살아야 하니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사랑의 근원(根源)

결혼 초 허니문 기간에는 부부간에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고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1년 반에서 2년 반이 지나는 사이에 사랑의 그릇에 사랑의 에너지가 비어가게 되면서 문제가 일어난다.

상대의 좋은 점 보다는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그렇게 사랑스럽기만 하던 상대가 꼴 보기 싫은 존재로 변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렇게 변해 가는지를 모른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사랑의 그릇이 비어가기에 그렇게 되는 줄을 모른 체 상대의 탓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성경은 이런 현상에 대한 바른 지적과 함께 바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7,8절)

이 말씀의 요점은 사랑은 그 근원이 우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얻으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인데 왜 사람에게서 사랑을 얻으려는 것이냐고 묻는다.  

‘사랑하라’는 명령(命令)

사람은 사랑의 그릇이 텅텅 비게 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된다. 사랑의 그릇이 비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되고 삶의 의미가 없게 되니 행복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빈자리를 채움 받게 되기를 원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이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것들로 그 자리를 채우려든다. 명예, 권력, 술, 여자, 마약 등등으로 온갖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은 “헛되고 헛되니 모두가 헛되도다”는 탄식에 이르게 된다.

성경은 분명히 말해 준다. ‘사랑을 사람으로부터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거늘 어찌 사람에게서 얻어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랑을 얻으려는 표적을 사람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기라고 성경은 말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장34절)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 방법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냥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그대로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명령하시는 것이다. 무슨 조건이나 계산 없이 마냥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 드릴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순종이다.

부부간에 사랑의 그릇이 비어져 사랑에 배고파졌을 때에 상대에게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외치게 된다. 그런 외침이 바로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이럴 때에 지혜롭지 못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간에 대응하는 차이가 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왜 나한테 화내고 그래? 내가 뭘 잘못한거야?”하고 맞대응을 하는 순간 상대방 마음의 그릇마저도 깨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르다. 그는 영적인 세계에 눈이 열린 사람이기에 상대방이 왜 지금 화를 내고 있는지를 안다.
“아, 지금 저 사람의 마음 그릇에 사랑이 텅텅 비어 있구나!”
“지금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그에게로 다가가 보듬어 안아주면서 “지금 당신이 사랑 고프구나! 그래, 내가 당신의 사랑 그릇을 채워 줄께!” 하고 행동한다. 성경은 그것이 바로 올바른 사랑의 원리임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나 자신도 사랑 그릇이 비어져 있기에 그렇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말한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사랑은 순종이다. 사랑은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상대를 사랑하고픈 마음이 없을찌라도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마음으로 자신의 싫은 마음을 죽이고 상대에게로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순종하면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어느샌가 상대를 진짜로 사랑하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을 먼저 하면 그 행동에 감정도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 상담학에서는 말하기를 행동요법(Behavior Therapy)이라 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