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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이한규의 사랑칼럼) 고통이 말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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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30 (제 47호)  고통이 말하는 소리

   고통은 ‘딱딱한 밭을 가는 쟁기’입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잡초의 온상이 됩니다. 그때 고통의 ‘쟁기’가 없으면 잡초가 핀 마음으로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살다가 영원히 진리와 멀어지게 됩니다. 고통이 있기에 진리도 부각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의 ‘쟁기’로 마음의 밭을 갈아 위대한 인격의 싹을 피우십시오.

  고통은 ‘해변을 쓸고 지나가는 폭풍’입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에는 더러운 오물이 묻게 됩니다. 그때 고통의 ‘폭풍’이 없으면 거짓, 위선, 음행 등이 난무하는 더러운 돼지우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고통이 있기에 깨끗함도 실현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 고통의 ‘폭풍’으로 마음의 오물을 씻고 은혜의 바다를 맞아들이십시오.

  고통은 ‘잡철을 정련하는 대장장이의 망치’입니다. 때로 우리는 정련되지 못한 잡철과 같은 모습을 많이 노출시킵니다. 그때 고통의 ‘망치’가 없으면 아무 데도 쓸모없는 잡철의 근성을 벗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이 있기에 겸손함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의 ‘망치’로 겸손을 배워 쓸모 있는 인생으로 준비되십시오.

  고통은 ‘소리를 증폭시키는 확성기’입니다. 때로 우리는 진리와 양심의 소리에 둔감하게 됩니다. 그때 고통의 ‘확성기’가 없으면 진리와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불신과 미신의 늪에 빠질 것입니다. 고통이 있기에 양심과 진리가 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의 ‘확성기’로 양심과 진리의 세미한 소리를 들으십시오.

  고통은 ‘문장에 있는 각종 부호’입니다. 인생에서 때로는 ‘쉼표(,)’를 만나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있고, ‘콜론(:)’을 만나 회의를 품을 때가 있고, ‘세미콜론(;)’을 만나 일의 진로가 급격히 바뀔 때가 있고, ‘따옴표("")’를 만나 원치 않는 일에 매일 때가 있고, ‘괄호(())’를 만나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겪을 때도 있고, ‘마침표(.)’를 만나 최후의 순간을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장에 고통의 ‘부호’가 있을 때 오히려 문장의 의미가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의 ‘부호’를 이용해 보다 깊고, 보다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되 결코 ‘의문부호(?)’로 끝나는 인생은 되지 마십시오.

  고통은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입니다. 좋은 교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에 고통의 ‘교사’는 최후의 순간까지 묵묵히 우리들을 지도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의 ‘교사’를 통해 수많은 삶의 덕목을 배우고 익히십시오.

  고통이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고통은 ‘나쁜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고통에는 인생의 보람이 내포되어 있고, 내일의 승리가 예견되어 있고, 최후 승리를 위한 몸부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멸시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고통이 말하는 소리에...

ⓒ 이한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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